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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고 있는 '평양속도'

2014년 평양의 한 아파트가 부실 공사로 인해 갑자기 붕괴된 일이 있었습니다.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고는 안정성을 무시한 평양 속도가 원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했습니다. NK News의 지난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건물 공사 대부분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대식 건설 장비와 건설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NK News
  • 입력 2015.09.07 12:45
  • 수정 2016.09.07 14:12

북한의 건설, 속도에서 안전으로

지난 7월 26일 북한 국영 조선중앙방송은 평양의 미래과학자거리에 건설되고 있는 새로운 아파트를 소개했습니다. '천리마 속도', '평양 속도'와 같은 정치 선동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생산 과정의 속도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될 평양의 아파트는 '평양 속도'의 기치 아래 지어졌음에도 '정확한 공법'과 '높은 질적 수준'을 강조하는 등 기존의 속도 중심주의적 모습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날 조선중앙방송에 따르면 평양 아파트의 외관 공사는 약 300일 정도 걸렸습니다.

북한은 빠른 속도로 공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평양 속도'라는 어구는 한국전쟁 이후 1958년 평양의 빠른 재건 속도를 기념하기 위해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평양의 아파트에서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에 이르기까지, 최단 기간 내에 최대의 성과를 얻고자 독려하기 위한 구호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의 경제 발전욕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평양 속도'의 현장은 평양의 미래과학자거리가 아닐까 합니다.

평양역 역세권에 위치한 미래과학자거리는 평양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거주 구역입니다. 이 거리는 2014년 9월 조선중앙방송의 보도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북한의 계획에 의하면 이 거리에는 500여 세대의 고층, 초고층 살림집들과 탁아소, 유치원, 편의 봉사망을 비롯한 현대적인 공공 및 봉사건물들이 최상의 수준에서 훌륭하게 건설됩니다.

지난 2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비행기를 타고 평양 시내를 돌아보며 이 거리의 발전에 대해 집중적으로 강조하는 사진이 노동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7월 26일 방영된 조선중앙방송 뉴스는 미래과학자거리에 지어지고 있는 고층 아파트의 내부 공사현장을 담았습니다. NK News는 구글 어스의 위성사진과 뉴스 영상을 분석해 새로운 고층 아파트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7월 26일 공개된 '주황색 건물' 조선중앙방송 뉴스 갈무리

7월 26일 공개된 '파란색 건물' 조선중앙방송 뉴스 갈무리

2015년 5월 21일자 구글 어스 위성 사진

이 뉴스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주황색 건물'(주황색 원 안)과 '파란색 건물'(파란색 원 안)에 근접한 곳에 건설 중입니다. 미래과학자거리에서 '주황색 건물'과 '파란색 건물' 옆의 공사 현장은 빨간 동그라미 안에 있는 현장뿐입니다.

구글 어스 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빨간 원 안의 공사 현장은 2014년 9월 22일에서 10월 27일 사이에 시공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첫 번째 위성사진이 찍힌 2014년 9월 22에 공사가 시작되었다고 가정하면, 뉴스에서 소개한 이 아파트는 단 307일 만에 외관이 완공되어 '평양 속도'의 사례로 전국에 소개 된 셈입니다.

2014년 9월 22일 찍힌 위성사진.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기 전 임시 구조물이 모여 있는 것이 보입니다. 사진 중앙에 있는 '파란색 건물'은 아직 공사 중입니다. 출처: 구글 어스

2014년 10월 27일 찍힌 위성사진. 공사 현장이 약간 파헤쳐져 있고 임시 구조물이 옆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파란색 건물'은 반 정도 지어졌습니다. 출처: 구글 어스

7월 26일 방영된 빨간 원 속의 공사 현장. 최소 28층에서 30층 이상으로 높은 건물입니다. 출처: 조선중앙방송 뉴스

'평양 속도' 과연 안전할까?

2014년 평양의 한 아파트가 부실 공사로 인해 갑자기 붕괴된 일이 있었습니다.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고는 안정성을 무시한 평양 속도가 원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했습니다. NK News의 지난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건물 공사 대부분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대식 건설 장비와 건설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의 한 건축학과 교수는 "평양 속도가 불안정성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건물의 안정성은 건설 속도뿐만이 아니라 건설 노동자의 실력, 건설 감독의 실력, 사용한 재료의 질, 정부의 지원 그리고 건설에 투자하는 자금과 같이 다양한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며 '평양 속도'가 부실 공사와 직결된다고 판단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조건들이 맞아 떨어진다면 300일 내에 안정적인 아파트를 짓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한국의 건설업계 기준으로 보아도 300일 안에 3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를 건설하는 것 역시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미래과학자지구가 대동강에서 채 100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 있지만 기반 공사를 튼튼히 했다면 건물의 안정성에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014년에 비해 2015년의 건설 현장은 더 많은 발전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NK News가 공개한 2014년 평양의 한 공사 현장 사진

2015년 7월 26일 공개된 미래과학자거리의 아파트 사진. 2014년에 비해 건물이 더 가지런히 시공되었다. 출처: 조선중앙방송 뉴스

2015년 7월 26일 공개된 평양 력포 지구의 아파트 단지. 출처: 조선중앙방송 뉴스

조선중앙방송은 "살림집 건조 공사를 빠른 기간 안에 끝낸 이곳 부대에서는 단숨에 공격 정신으로 내부 미장공사를 불이 번쩍나게 해 제끼면서도 건설 공법의 여부를 철저히 치킴으로써 맡은 살림집 건설을 높은 질적 수준에서 빠른 속도로 진척시키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이는 북한이 늘 외치던 정치적인 선동 문구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사 속도와 더불어 정확한 공법과 높은 질적 수준을 언급한 것은 북한의 건설 현장이 일정 부분 변화를 맞이했음을 시사합니다.

북한개발연구소의 김병욱 연구원은 "북한이 생산 속도와 성과주의를 넘어선 다른 요소를 강조한 것은 처음 본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한 "그 건설물이 오락 시설이었다면 속도만을 강조했겠지만, 2014년 아파트 붕괴로 수백 명의 목숨을 잃은 김정은이 북한이 지향하는 최우선적 가치를 수정할 필요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산업은행의 이유진 연구위원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비쳤습니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의 경제 부분에서도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 2014년 이전에 북한은 오직 빠른 경제 발전만을 강조했으나, 최근에는 속도만을 위해 안정성과 절차를 훼손시키는 행위가 북한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또 "북한은 절박하게 해외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상황이라 국제표준을 따르고 있다는 점을 외부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평가하며"북한 건설 현장을 포함해 북한의 국정운영 방식에 전반적인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이 매우 놀랍다"고 말했습니다.

글쓴이 안재혁은 주한미군사에서 통번역병으로 복무했으며 현재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메인 이미지의 출처는 우리민족끼리입니다. 영문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NK News 한국어판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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