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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나 말아먹든가

새로 리부트된 <판타스틱 4>가 올해 최악의 망작이라는 소문이 돌자, 갑자기 이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가 커졌다. 진짜로 재미없는 건 적당히 무난한 영화들이다. 원작을 적당히 따라하기만 해도 중박은 치는 슈퍼 히어로물인데도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이 십자포화를 퍼부을 정도라면 최소한 무난한 영화는 아닐 것이다. 소문처럼 작정하고 망가진 영화라면 적어도 박살난 졸작의 재미는 있을 것이다. 기대는 실망으로 끝났다.

  • 듀나
  • 입력 2015.08.26 06:01
  • 수정 2016.08.26 14:12

듀나의 영화 불평

새로 리부트된 <판타스틱 4>가 올해 최악의 망작이라는 소문이 돌자, 갑자기 이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가 커졌다. 진짜로 재미없는 건 적당히 무난한 영화들이다. 원작을 적당히 따라하기만 해도 중박은 치는 슈퍼 히어로물인데도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이 십자포화를 퍼부을 정도라면 최소한 무난한 영화는 아닐 것이다. 소문처럼 작정하고 망가진 영화라면 적어도 박살난 졸작의 재미는 있을 것이다.

기대는 실망으로 끝났다. <판타스틱 4>는 악명만큼 심하게 망가진 영화는 아니었다. 아니, 많이 망가지긴 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재미있게 망가진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는 의외로 진지했다. 코믹북 원작의 소스를 가지고 현실적이고 무게있으며 복잡한 심리묘사를 갖춘 영화를 만들려는 의도가 보였다. 소외된 틴에이저들을 다룬 도입부는 감독 조쉬 트랭크의 전작 <크로니클>을 연상케 했다. 에스에프(SF)를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영화의 각본이 정통 에스에프의 논리와 슈퍼히어로 에스에프의 논리 사이에서 휘청거리는 걸 꽤 재미있게 구경했다. 아마 그는 슈퍼히어로가 등장하지 않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애당초부터 슈퍼히어로 영화 자체가 싫었는지도 모른다. 주어진 기회와 취향 속에서 갈등하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

물론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건 그것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어쩌다가 그가 영화를 말아먹었는가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돌고 있어서 오히려 확인하기가 어렵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판타스틱 4>가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의욕없이 주저 앉아 그리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텔레비전 파일럿 에피소드 비슷한 작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조쉬 트랭크는 아직도 그의 영화를 변호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슈퍼히어로 영화 관객들이 이 영화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의 부재,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이 장르에서 기대하는 액션과 스펙터클의 부재이다. 아마 그는 이런 기대를 가소롭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소로운 관객들과 맞서려면 일단 그 기대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여기서부터 장르에 대한 존중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모든 장르에는 기대치가 있고 맞추어야 할 기준이 있다. 특히 할리우드에서처럼 많은 돈과 사람들이 개입하는 곳에선 이런 장르에 자신을 맞추어 작업하는 과정은 마치 공장을 돌리는 것과 같다. 할리우드의 돈에 이끌려 이 세계에 뛰어들었다가 주저앉은 수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물러나는 이유도 이 공장생산 과정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만큼이나 이 과정을 혐오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포크너가 할리우드에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할리우드가 세상에 남긴 업적은 만만치 않다. 그들이 만든 모든 영화들이 걸작이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포크너나 챈들러가 투덜거렸던 수많은 영화들은 걸작이 되어 지금도 존중받고 있다. 그 조건과 기준을 받아들이고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그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슈퍼히어로 무비에 대한 경멸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서 오로지 자기 일에 대한 경멸만 품고 있다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조쉬 트랭크는 '망가져서 재미있는 졸작'을 만드는 데에도 실패했다. 걸작도 졸작도 되지 못한 밍밍한 영화로 진부한 장르를 비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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