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젭 부시 '앵커베이비' 발언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화났다

  • 허완
  • 입력 2015.08.26 06:02
  • 수정 2015.08.26 06:06
Republican presidential candidate, former Florida Gov. Jeb Bush listens during a town hall meeting on Monday, Aug. 17, 2015, in Columbia, S.C. (AP Photo/Rainier Ehrhardt)
Republican presidential candidate, former Florida Gov. Jeb Bush listens during a town hall meeting on Monday, Aug. 17, 2015, in Columbia, S.C. (AP Photo/Rainier Ehrhardt) ⓒASSOCIATED PRESS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앵커 베이비'(anchor baby·원정출산) 발언이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기에게 미국 국적을 주는 제도를 "아시아인들이 조직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그의 24일(현지시간) 발언에 미국 내 아시아계 전체가 들고 일어선 양상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밀집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마이크 혼다(민주) 연방 하원의원은 25일(현지시간) 논평을 내고 "부시 후보의 발언은 모든 이민자들에 대한 모욕이며 우리의 문화에서 설 땅이 없는 주장"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혼다 의원은 이어 "미국은 다양한 문화와 배경 위에 건국됐다"며 "그 같은 편협한 발언은 미국 민주주의 근본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혼다 의원은 "미국 헌법 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모든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며 "우리는 누구도 그 같은 권한이 약화되도록 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우리는 실질적이고 포괄적인 이민개혁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다원화된 지역의 하나인 실리콘 밸리의 경우 우리는 모든 배경에서 나온 시민들과 그들이 우리나라에 기여한 것을 축하하고 있다"며 "미국 내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다수를 점한 유일한 지역구의 의원으로 나는 부시 후보의 발언을 강력하게 비판한다"고 지적했다.

사상 첫 중국계 미국인 하원의원인 주디 추(민주·캘리포니아) 의원도 논평을 내고 "부시 후보의 발언은 이민자들을 고립화시키려는 '외국인 공포증'을 보여준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추 의원은 "현 미국의 이민 시스템은 태어날 때부터 시민권을 부여받는게 문제가 아니라 가족끼리 떨어져 살게 하거나 공포 속에 살아가도록 강제하고 있고 있는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워싱턴DC에 소재한 전미아시아태평양계미국인협의회(NAPALC)는 논평에서 "부시 후보가 경멸적인 용어를 사용했다"며 "1882년 중국인의 미국 시민권 획득과 이민을 20년간 금지했던 '중국인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에서부터 중국계 시민권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주는 대법원 판례(United States v. Wong Kim Ark)를 뒤집으려는 입법적 움직임, 그리고 이번 '앵커 베이비' 발언에 이르기까지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들은 지속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계 미국인 조직인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권익옹호협회도 이날 성명을 통해 부시 후보가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이민 시스템을 악용하는 그룹으로 규정함으로써 '원초적인 둔감'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비난했다.

마이클 콴 회장은 "부시 후보의 잘못된 언사로 수백만의 합법적인 미국인들이 반(反) 이민적이고 외국인을 증오하는 움직임의 표적이 되고 있다"며 "이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백인들보다 못하다는 믿음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트위터 등에 글을 올려 부시 후보의 발언에 대한 격한 감정을 토로하고 있다고 NBC 방송 등 미국 언론이 전했다.

에린 퀼이라는 트위터 사용자는 "친척이 공화당에 표를 던지는 것을 싫어하는 아시아계 미국인을 대신해 이들의 등을 돌리게 한 부시 전 주지사에게 감사함을 표한다"고 비꼬았다. 부시 전 주지사가 아시아계 표심을 잃었다는 뜻이다.

'화난 아시아인'이라는 이는 "미국의 대선 주자가 자신의 욕심을 위해 아시아계 미국인을 어떻게 희생양으로 삼는지를 보여준다"며 부시 전 주지사에게 실망감을 나타냈다.

같은 당의 대선경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도 이 같은 비판대열에 가세했다. 트럼프는 이날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젭의 발언으로 아시아인들이 매우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면서 "자신은 절대 쓰지 않겠다고 약속한 단어 '앵커 베이비'라는 말을 썼다가 난처한 상황에 빠진 부시가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려고 아시아인들을 비난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부시 후보는 24일 텍사스 주의 멕시코 국경에서 기자들을 만나 "텍사스 주와 멕시코 국경에서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기에게 미국 국적을 주는 제도를 아시아인들이 악용하고 있다며 "'앵커 베이비'는 중남미인들보다 출생 국적이라는 고귀한 개념을 조직적으로 악용하는 아시아인들이 더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앵커 베이비'를 거론했다가 중남미 이민자 계층을 옹호해온 이민자 시민권 운동가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뒤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앵커 베이비는 미등록 이주민이 미국에서 출산해 미국 국적을 얻은 아기를 뜻한다. 바다에 닻(anchor)을 내리듯 부모가 아이를 미국인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정착을 돕는다는 가치 평가를 담은 용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중남미에서 건너온 미등록 이민자 계층을 전체적으로 비방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고 한국에서 논란이 되는 미국 원정출산과도 연결되고 있다.

NBC 방송은 아시아인들의 미국 원정 출산을 비판한 부시 후보의 이 발언이 가뜩이나 대선 선거판에서 미미한 존재인 아시안계를 더욱 소외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자신이 처음 꺼낸 '앵커 베이비' 발언이 자신의 주된 지지기반인 히스패닉계로부터 비판을 받자 아시안계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고 이 방송은 지적했다. 멕시코 태생의 아내를 둔 부시 전 주지사는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 중에서 히스패닉 유권자의 표심을 가장 자극할 인물로 꼽힌다.

논란이 커지자 부시 후보는 이날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나는 임신한 여성들을 미국에 보내 아이를 낳고 시민권을 얻는 매우 제한적인 사기 시스템(very narrowcasted system of fraud)을 언급했던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아시아계 미국인의 인구 증가 속도는 미국 내 여러 인종 중에서도 가장 빨라 2040년께 등록유권자 수는 1천220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현재 아시아계 미국인 등록 유권자 수는 590만명으로 이민자 62%, 미국 태생 38%로 구분된다. 2040년이 되면 이들의 분포도는 53%와 47%로 달라진다.

부시 후보가 언급한 아시아 여성들이 원정출산을 하는 사례가 과연 어느 정도에 달하는지는 불투명해보인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아시아 여성이 미국으로 원정출산을 와서 낳은 아이는 매년 4만명에서 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대만과 한국, 터키 여성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중국 여성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출간되는 중국어 신문인 '월드 저널'은 중국 관영언론인 환구시보의 비공식 통계를 인용해 원정출산을 가는 중국 여성이 2007년 600명에서 2012년 1만명을 넘어섰고 올해에는 5만명에서 6만명에 사이에 이른다는 추정치를 제시했다고 미국 언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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