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미코노스의 고양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 인간의 연민과 친절은 잔인함을 이길 수 있다

고양이는 살아남았고 우리는 황홀해 했다. 우리는 10시에 고양이를 재웠는데, 다음 날 아침에는 고양이가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줄리엔은 고양이에게 오디세우스라는 이름을 붙였고, 우리는 며칠 안에 오디세우스가 계속 살 수 있을 거란 소식을 듣기를 바라고 있다.

ⓒLawrence Y

학대당해 죽을뻔 한 고양이 오디세우스는 그리스에서 자신을 입양해 줄 반려인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친구들과 아리아나의 새 책 '제 3의 성공'과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서구 사회가 변곡점에 와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즉 우리는 우리 인생의 더 깊은 의미와 우리의 단체들의 물질적 성공 이외의 사회적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요구를 집단적으로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대화와 같은 맥락상의 특별한 일을 며칠 전 내 친구 줄리엔과 내가 경험했다. 우리는 우리가 빌린 미코노스의 작은 집 앞 길거리에서 괴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한 여성이 피가 고인 웅덩이 속에 뻗은 회색과 흰색이 섞인 길고양이 앞에서 흐느끼며 이탈리아어로 외치고 있었다. 고양이는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온갖 언어도 떠들어대며 고양이를 살릴 방법을 찾았다. 우리는 도와줄 수 있는 이 섬 토박이 그리스인을 찾는데 주력했다.

바로 그 순간, 친절한 상인이 나타나 오늘이 예수 승천일이라 문 연 병원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웃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방법이 다 실패하자, 그 상인이 전화를 돌려 병원을 열어주겠다는 수의사를 하나 찾아냈다.

길을 아는 동네 웨이트리스가 오토바이로 앞장섰고, 우리는 지프에 고양이를 태우고 - 모여든 사람들이 상자 속에 넣었다 - 병원으로 달렸다. 우리는 고양이를 달래며 살아남으라고 격려했다. 고양이는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답했다.

병원은 언덕이 내려다 보이는 꼭대기에서 빛을 발하는 듯했다. 수의사 코스타스는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코스타스는 작은 고양이가 칼에 찔려 깊은 상처를 입었고, 아직도 피가 나고 있다고 했다(나중에 동네 고양이들을 괴롭히는 사춘기 소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직원이 아무도 없어서, 1시간 동안 내부 근육을 꿰매고 겉가죽을 꿰매는 동안 내가 보조했다.

고양이는 살아남았고 우리는 황홀해 했다. 우리는 10시에 고양이를 재웠는데, 다음 날 아침에는 고양이가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줄리엔은 고양이에게 오디세우스라는 이름을 붙였고, 우리는 며칠 안에 오디세우스가 계속 살 수 있을 거란 소식을 듣기를 바라고 있다.

이 사건 일주일 후에 우리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나는 이 모든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 가지 메시지는 명확하다. 잔인함의 최종 단계가 팽배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집단 연민과 지성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잔인한 행동 하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친절함이 모여야 하고, 친절함이 잔인함을 이길 수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오디세우스가 겪었던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여든 이웃들을 두려워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그는 인간들 사이에서 친절함이 만연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이 글을 쓴 로렌스와 살아남은 고양이 오디세우스

허핑턴포스트US의 Lessons from a Mykonian Cat: Collective Compassion and Street Smarts, Can Alter the Cours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페이스북에서 허핑턴포스트 팔로우하기 |

트위터에서 허핑턴포스트 팔로우하기 |

허핑턴포스트에 문의하기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고양이 #오디세이 #집단 연민 #친절함 #동물 #동물학대 #지성 #인간 #휴머니즘 #사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