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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의 팔을 꺾었다는 시비, 6년간 3건의 재판, 부부의 꿈은 풍비박산이 났다

  • 원성윤
  • 입력 2015.08.25 06:17
  • 수정 2015.08.25 06:54
ⓒ연합뉴스

남편은 음주 단속하는 경찰관의 팔을 비튼 혐의로 기소된다. 극구 부인하는 남편을 위해 아내가 법원에서 남편의 결백을 증언했지만 오히려 위증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다. 그러자 남편이 아내의 재판에서 자신의 폭행을 재차 부인했다가 본인도 위증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다.

결국 수년간 이어진 재판에서 부부에게 모두 유죄가 선고되고, 이들의 삶은 처참히 깨진다.

그런데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남편이 마지막 재판이랄 수 있는 자신의 위증 재판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번에는 경찰관의 '할리우드 액션'을 의심하는 내용의 판결문을 내놓는다.

경찰관의 팔을 비틀었느냐 아니냐는 하나의 사안이 3개의 재판으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 치열한 진실게임이 벌어진 법정 스릴러 영화 같은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다.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200만원 확정판결을 박은 박모(53)씨를 사건 당일인 2009년 6월 찍은 영상 캡처. 왼쪽은 박씨가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가 인정되는 증거로 사용된 원본 영상이고, 오른쪽은 박씨가 1차 판결 이후 위증죄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증거로 사용된 영상이다. 오른쪽 영상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화질 개선으로 당시 상황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개선된 영상을 근거로 "경찰의 팔을 잡아 비틀거나 한 일이 없음에도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인가 박 경사가 그와 같은 폭행을 당한 것인 양 행동한 것으로 볼 여지가 높다"며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충북 충주에 거주하는 박모(53)씨는 2009년 6월 27일 오후 11시께 술에 취한 채 아내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가다 음주단속을 받게 됐다.

술김에 경찰관 박모 경사와 시비가 붙은 박씨는 차에서 내려 박 경사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박 경사가 팔이 뒤로 꺾이며 쓰러질 뻔한 자세가 되더니 비명을 여러 번 질렀다.

이 장면은 동료 경찰관의 캠코더에 찍혔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당시 박씨와 박 경사 사이에 박씨 아들이 서 있어서 박씨의 얼굴만 흐릿하게 나올 뿐이었다.

박 경사는 박씨가 팔을 비틀었다고 주장했고, 박씨는 "오히려 박 경사가 내 손을 잡고 있다가 갑자기 넘어지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라고 부인했다.

검찰과 법원은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은 박씨에게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물렸고, 박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지만 2011년 대법원에서도 유죄를 선고받고 벌금 200만원이 확정됐다.

이 과정에서 아내 최모씨가 남편의 재판에 나가 "남편이 경찰관 손을 비튼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증언했다가 위증 혐의로 기소돼 2012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형이 확정됐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박씨가 아내의 재판에서 자신의 폭행 혐의를 재차 부인했다가 역시 위증 혐의로 기소돼 2012년 4월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앞선 재판부는 동영상과 박 경사 등의 진술 등을 토대로 박씨의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인정되고, 이를 부인하는 법정 진술은 위증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박씨의 위증 재판 항소심에서 변호인이 사건 동영상의 화질 개선을 요청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 변호인은 2007년 발생한 이른바 '석궁테러' 사건 변론으로 유명한 박훈 변호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동영상의 화면을 밝게 하자 그동안 잘 보이지 않았던 '디테일'이 드러났다.

박 경사가 팔이 꺾여 쓰러질 듯 상체를 숙이는 장면에서 박씨는 꼿꼿하게 허리를 편 채 박 경사가 아닌 다른 경찰을 보는 자세였다. 도저히 건장한 경찰관의 팔을 꺾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청주지법 제1형사부(구창모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박 경사의 팔을 잡아 비틀거나 한 일이 없음에도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인가 박 경사가 그와 같은 폭행을 당한 것인 양 행동한 것으로 볼 여지가 높다"고 판시하고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경사의 진술도 모순이 많다고 판단했다. 박 경사는 당시 팔이 꺾여 넘어졌다고 했다가 이후 넘어지지는 않았다고 하는가 하면 당시 팔을 긁혔다며 사진까지 찍었지만 이후 '다치지는 않았다'고 말을 수시로 바꿨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박훈 변호사는 "검찰의 끝날 줄 모르는 보복 기소로 하나의 쟁점이 3개의 사건으로 변한 사법사상 초유의 듣도 보도 못한 사건"이라며 "6년 전 작은 사건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 한 가정은 풍비박산 날 수밖에 없었다"고 개탄했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큰 가구점을 운영하던 박씨 부부는 귀농하러 충주로 내려온 지 1년 만에 이 사건을 겪고 귀농의 꿈을 접었다. 현재 남편은 공사장 막노동을 하고 있고, 교사였던 아내는 화장품 뚜껑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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