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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맨'이 잘못 끼운 4개의 단추

  • 남현지
  • 입력 2015.08.22 16:29
  • 수정 2015.08.22 16:33

유재석과 유희열이 진행자로 나선 제이티비시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을 찾아서>(이하 <슈가맨>)가 지난 19일 첫방송 됐다. 2회 파일럿 프로그램이지만 유재석이 공중파가 아닌 종합편성 채널에서 처음 맡는 프로그램이고, 문화방송 <무한도전>에 함께 출연했던 유희열과 합을 맞춘다는 것만으로도 방송 전에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슈가맨을 찾아서>라는 제목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의 제목을 그대로 따온 만큼 영화가 줬던 감동을 조금이라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먼저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을 복기해보자. 이 영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더 유명한, 그러나 막상 앨범이 발매된 미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로드리게스라는 가수를 찾아가는 얘기다. 두장의 앨범을 내고 더이상 가수로 활동하지 않는 로드리게스는 남아공에서 자신을 찾는 전화를 받고 나서야 자신이 그곳에서 전설적인 가수라는 걸 알게 된다. 로드리게스는 초청을 받아 가족들과 남아공에 도착하고, 잊지 못할 콘서트를 열게 된다. 줄거리만 보면 이 영화는 기적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이 영화의 핵심은 로드리게스라는 사람의 삶에 있다. 로드리게스는 앨범을 내기 전에도, 앨범을 낸 다음에도, 가수로 활동하지 않는 동안에도, 그리고 남아공에서 슈퍼스타라는 걸 알게 된 다음에도 변하지 않는다. 디트로이트의 낡은 집에 40년 넘게 살며 건설현장에서 노동을 하고 노동에서 가치를 찾고 계급과 차별에 맞서 싸우며 자기만의 삶을 산다. 이 영화의 진짜 감동은 그를 둘러싼 환경이나 조건이 어떻게 변하든 매일 집에서 나와 일터로 걸어가는 로드리게스의 발걸음에 있다.

다시 예능프로그램 <슈가맨>으로 돌아와서, 이 프로그램의 누리집에 있는 ‘기획의도’를 읽어보자. ‘우리 곁에 잠시 머물다 사라져간 원 히트 원더. 한장의 앨범, 단 한번의 기회로 사라진 사람들 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제공한다.’ 그 아래에는 슈가맨의 정의가 있다. ‘슈가맨이란?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스타.’ 이 영화를 보고 제목을 가져온 게 맞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미국에서 대단한 인기와 명성, 부를 얻지 않았다고 로드리게스를 비운의 스타라고 부를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영화는 환경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자기만의 노래를 부르고 자기 삶을 사는 그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보여준다. 잘못 가져다 쓴 제목, <슈가맨>이 잘못 끼운 첫번째 단추다. 제목은, 그래 그럴 수 있다. <서칭 포 슈가맨>이 1천만 관객이 든 영화도 아니고 <슈가맨>은 예능프로그램이니까 어떻게든 끼워맞추겠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첫번째 단추를 잘못 끼웠을 때 그 옷이 어떻게 되는지 첫방송을 보면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원 히트 원더’, ‘사라진 사람들’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노래 한 소절만으로도 생생하게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노래와 그 노래 딱 한 곡만을 남기고 활동을 하지 않은 가수를 찾는다면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테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중국만큼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가 아니고, 가요계 역시 그다지 크지 않다는 데 있다. 한 곡으로 사랑받았던 가수라고 해도 머나먼 해외로 이민 가거나 의도적으로 사라진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한두 번쯤 아침방송이나 종편 프로그램에, 아니면 여성잡지에라도 얼굴을 내비쳤을 가능성이 높다. 또 1990년대 열풍이 시작된 2~3년 전부터는 많은 프로그램이 추억의 가수를 찾느라 여념이 없다. 문화방송 <복면가왕>에도 추억의 가수들이 가면을 쓰고 매주 나오고 있다. 심지어 그 가수들은 대부분의 경우 가요계 근처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다. 첫방송에 나온 ‘아라비안 나이트’의 김준선은 실용음악을 가르치고 있고, ‘눈감아봐도’의 박준희는 지난해 앨범을 내기도 했다. 그런 이들을 ‘사라진 사람’이라고 명명하고 찾으려다보니 첫방송에서 확인한 것 같은 억지스러운 화면이 등장하게 된다.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추적의 과정은 가수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티브이는 사랑을 싣고>나 <옛날 티브이> 같은 옛날 프로그램에 대한 추억에 젖게 했다. 이 프로그램이 잘못 끼운 두번째 단추다.

파일럿 방송이니까, 그리고 첫방송이니까 매끄럽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지 정말 몰랐을 수 있다고 이해해보자. 사라진 가수를 찾아서 스튜디오에 데리고 온 다음부터는 국민 엠시 유재석과 뮤지션 유희열이 빛을 발할 차례다. 이들이라면 카메라 앞에 서 있지 않았던 시간에 대해, 또 음악에 대해 얘기하며 재미와 감동을 찾아낼 거라는 기대는 ‘자랑 배틀’이라는 코너에서 무너졌다. 1990년대에 활동했던 가수라면 누구의 이름을 넣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추억을 꺼내놓는 토크는 냉동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린 것처럼 밋밋한 맛이었다. 세번째 단추는 바로 이 지점이다. <슈가맨>을 포함해 1990년대를 소재로 활용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그 시절의 시간을 박제해서 그대로 가져오기 바쁘다. 그 시절 전체도 아닌 그들의 가장 빛났던 한순간만 끓이고 또 끓인다. 지난 16일 방송된 <런닝맨>에는 김건모, ‘쿨’의 이재훈, ‘디제이 디오시’의 이하늘 등 1990년대 가수들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들은 길거리에 나가 일반 시민들과 ‘잘못된 만남’ 등 추억의 노래 이어부르기 미션을 함께하고 1990년대 무대를 재현했다. 이날 방송분 역시 <슈가맨>의 토크와 비슷했다. 상자 속에서 꺼낸 옛날 테이프는 한두번은 듣기 좋을지 몰라도, 틀고 또 틀면 쉽게 늘어난다. 지금 예능프로그램이 1990년대를 가져오는 방식이 꼭 이렇다.

이제 마지막 단추를 확인할 차례다. <슈가맨>의 하이라이트는 출연자의 유일무이한 히트곡을 지금의 감각으로 편곡하고 요즘 잘나가는 가수들이 다시 부르는 ‘역주행송 2015’이다. 아이돌 그룹의 히트곡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서에 작사가, 아이돌 가수, 래퍼까지 팀을 꾸려 그 시절 히트곡을 지금의 감각에 맞춰 편곡한다. 마지막 단추는 바로 여기에서 어긋난다. ‘역주행송 2015’는 그 노래가 사랑받았던 그 시절의 흔적을 지우고 지금의 시간을 채워넣는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 스타일과 걸그룹 멤버의 섹시 댄스로 다시 태어난 곡은 차트를 역주행하는 노래가 아니라 상식을 역주행하는 노래가 되어버린다. 1980년대나 1990년대 유행가가 역주행하는 경우는 물론 있다. 그런 노래들은 어울리지 않는 ‘새 옷’을 입힌 곡이 아니라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감성으로 ‘다른 옷’을 입힌 노래들이다.

티브이가 먼지 쌓인 시간을 가져오는 방식의 ‘좋은 예’는 문화방송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 출연한 종이접기 연구가 김영만이다. 20~30대 시청자들이 그에게 환호한 것은 그가 어릴 때 했던 종이접기를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코딱지라고 불렀던 어린이 시청자들이 어느새 어른이 된 그 시간을 이해하고 읽어냈기 때문이다. 김영만에 대해 환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걱정도 있었고 논란도 있었다. 그가 처음 <마리텔>에 출연했을 때 “지금은 주목받아도 곧 잊혀질 텐데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댓글이 꽤 있었다. 실제 김영만 방송은 <마리텔> 출연이 많아질수록 시청률 순위가 낮아지고 있다. 그가 고급 승용차를 탄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꼈다는 게시물도 있었다. 이런 우려와 논란이 나오는 건 방송인이 티브이에 나오지 않으면 그 사람의 삶이 불행할 거라는 오류에 있다. 김영만은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왕성하게 활동할 때나 프로그램이 없어졌을 때, 그리고 최근 다시 주목을 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종이를 접고 있다. 화제성이 떨어져 더이상 출연할 프로그램이 없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종이접기로 아이들 교육을 하고 있을 거다. 카메라 앞에 서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 ‘비운의 스타’가 될 거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그런 착각은 그 사람 삶의 선택권을 그 자신이 아닌 대중과 티브이가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2회 파일럿 프로그램인 <슈가맨>을 두고 이렇게까지 핏대를 세울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잘못 끼운 네개의 단추는 <슈가맨>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 추억을 가져오려는 여러 예능프로그램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슈가맨>이 파일럿이라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첫번째 단추인 ‘슈가맨’의 정의부터 다시 하면 제법 괜찮은 옷이 나올지도 모른다. 어쨌든 유재석과 유희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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