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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 확성기 방송은 왜 11년 만에 다시 시작됐나

  • 허완
  • 입력 2015.08.21 11:53
  • 수정 2015.08.21 22:03

20일 서부전선 ‘포격도발’을 감행한 북한은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명의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앞으로 서한을 보냈다. 국방부 앞으로도 전통문을 보냈다. 요구사항은 간단했다. 이날 오후 5시부터 48시간 내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방송시설을 철거하라는 것이다. 북한은 국방부 앞으로 보낸 전통문에서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은 왜 ‘대북 확성기 방송’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또 남한은 오랫동안 중단됐던 대북 방송을 왜 다시 시작한 걸까?

11년 만에 다시 시작된 남북 ‘확성기 심리전’

우선 20일 포격도발 상황을 포함해 최근 며칠 간 벌어졌던 일들을 살펴보자.

한국군은 지난 10일 서부전선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DMZ 지뢰도발에 대한 보복 차원의 조치였다. 대북 심리전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확성기 방송을 군이 재개한 건 2004년 6월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어 13일에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이외에 추가적인 보복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2004년 6월16일 서부전선 무력부대 오두산전망대에서 군인들이 대북선전용 대형확성기를 철거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군도 대응에 나섰다. 첫 번째 반응은 15일에 나왔다. 북한 인민군 전선사령부는 “중단하지 않으면 무차별 타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이틀 뒤, 북한군이 동부전선에서 대남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는 소식이 한국군을 통해 전해졌다. 다시 이틀 뒤인 19일, 즉 이번 포격도발 하루 전에는 남측 확성기 타격을 노린 북한군의 훈련이 강화됐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이후 곧바로 군사적 긴장 상태가 벌어졌다.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군은 20일 오후 3시53분경 14.5mm 고사포를 한 발 쐈고, 19분 뒤인 4시12분에 다시 76.2mm 직사포로 비무장지대 안 군사분계선 남쪽 700m 지점에 여러 발을 쐈다.

한국군은 북한의 최초도발 시점으로부터 약 1시간10분 뒤인 5시4분경에 비무장지대 안 군사분계선 북쪽 500m 지점에 155mm 자주포로 수십발 대응사격을 했다. 남쪽의 인명피해나 재산피해는 없었으며, 북쪽의 추가 대응은 없었다.

북한이 ‘확성기 방송’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현재까지 드러난 상황을 보면, 이번 북한 포격도발의 직접적인 계기는 ‘확성기 방송’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포격도발 이후 ‘48시간’이라는 시한을 제시하며 요구한 것도 방송 중단 및 시설 철거다. 북한은 왜 이렇게까지 대북 확성기 방송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기본적으로 확성기 방송은 심리전의 수단 중 하나다. 보통 북한 정권과 체제의 치부를 드러내는 내용이 담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BS에 따르면, 고정식 확성기의 경우 출력을 최대로 했을 때 야간 24km, 주간 10km 거리까지 방송 내용이 전달된다. 휴전선 인근 북한군과 일부 주민들에게까지 방송 내용이 전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한국군은 이번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서 음향 출력이 훨씬 뛰어난 디지털 방식의 신형 이동식 확성기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가 13일 전한 바에 따르면, 이 신형 확성기는 20km 이상 떨어진 곳까지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전해진다. 또 차량에 싣고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군의 ‘조준사격’을 피할 수 있다.

관련기사 : 확성기 방송의 내용: 한국 VS 북한(동영상)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0일 밤 평양 노동당 청사에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또 이번에 재개된 대북 확성기 방송은 특히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기존 형식을 벗어나 북한 군부 인물 처형 등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 지구촌 소식, 날씨 정보, 음악 등 이전보다 다양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군 당국은 이런 심리전이 상당히 큰 효과를 발휘한다고 본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익명의 군 관계자는 “김정은 정권 입장에서 김씨 일가 3대 세습과 비리, 독재 권력 내부의 부도덕성을 고발하는 대북 확성기는 참을 수 없는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확성기 방송을 실질적인 위협이자 도발로 간주하고 있다는 얘기다.

확성기 방송은 왜 11년 만에 다시 시작됐나

남북 양측은 지난 2004년 6월 장성급군사회담에서 서로 확성기 방송 등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남북은 6·15 남북공동선언 채택 4주년을 앞두고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몇 가지 조치에 합의했다. 서해상에서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방안이 처음으로 합의됐고, 확성기방송을 비롯해 선전 전광판 같은 선전수단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에도 뜻을 모았다.

당시 합의 내용 중에는 ‘어떤 경우에도 선전수단들을 다시 설치하지 않으며 선전활동도 재개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었다. 중간에 잠시 중단됐던 때도 있었지만 1962년부터 42년 동안 이어져왔던 남북의 확성기 방송은 2004년 6월15일 중단됐으며, 당시 한국 정부는 이를 “역사적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국방부가 지난 11일 공개한 대북 확성기. ⓒ연합뉴스/국방부

그러나 당시의 합의는 남한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사실상 파기됐다. 방송 재개의 계기는 북한군의 DMZ 지뢰도발 사건이었다. 10일, 국방부와 유엔사령부로 구성된 한미 합동조사단은 DMZ 지뢰폭발 사건을 북한군의 명백한 도발로 규정했고, 국방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연일 강력 대응을 천명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강경대응’ 조치였다. 한국일보는 “천안함 피격 사건 발생 이후에도 확성기 방송을 부활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북한의 반발을 고려해 실제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부의 전격적인 대응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라고 전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에도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지는 않았다.

'이례적인 강경대응'은 왜 나왔나

북한의 지뢰도발에 대한 군 당국의 대응은 이례적인 구석이 있었다. 군 당국은 9일 DMZ 지뢰폭발 현장을 언론에 공개하는 한편, 관련 사진은 물론 하루 뒤에는 ‘대외비’로 분류되는 열상감시장비(TOD) 동영상까지 제공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군 당국이 DMZ 추진철책까지 언론에 공개한 건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북한이 전선일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가운데 21일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인근에서 주한미군 차량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국방부의 이례적 조치들이 ‘면피용’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여러 언론들은 지난해 말부터 ‘이상징후’가 있었음에도 군이 미온적으로 대응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했다.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DMZ 경계 부실을 질타했다. 국방부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경계실패’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군 당국이 북한의 지뢰도발을 그만큼 엄중한 사태로 인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10일 지뢰폭발 사건이 발생한 DMZ내 소초를 직접 방문해 “명백한 도발이며 정전협정과 남북간 불가침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일보에 의하면 DMZ에서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에 의한 폭발사건은 48년만에 처음 발생한 것이었다.

상황을 종합했을 때, 북측의 지뢰도발과 남측의 확성기 방송 재개로 촉발된 군사적 긴장상태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북한은 21일 포탄을 발사한 일이 없다고 주장하며 “응당한 징벌”을 언급했다.

관건은 남북 양측이 과연 이 대치 상황을 타개할 ‘해법’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다. 비공식 창구를 통한 물밑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북한은 줄곧 확성기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뚜렷한 명분도 없이 군 당국이 11년 만에 꺼낸 확성기를 그대로 집어넣을 가능성은 낮다.

추가적인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거론되는 가운데 자칫 사태가 치킨게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21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허가 받은 차량이 임진강을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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