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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읽어도 모르겠는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문, 4가지 질문

  • 허완
  • 입력 2015.08.20 13:04
  • 수정 2015.08.20 13:14

[이상헌의 理想한 경제학]

얼마 전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대국민 담화가 나왔다. 비루하게 쇠약해가는 몸은 낯선 땅에 있으나, 나는 엄연히 투표권을 가진 국민이다. 물론 표가 필요할 때만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처지가 섭섭하긴 하다. 그래서인지 대국민 담화는 반갑다. 정부의 최종 책임자가 내게 말을 걸고 소통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얼마나 복잡한 일인지 익히 알고 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사무총장이 큰 연설을 앞두고 있으면 난리법석이다. 메시지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어떤 논리로 설득할 것인지, 어조는 어찌할지 등등 고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머리 좀 쓴다는 이들이 수십 명 동원되고, 사실관계도 치밀하게 따지고, 통계 수치도 꼼꼼하게 살핀다. 수치 하나 잘못 인용하고 사실관계가 흐트러지면, 수백만 명의 마음을 움직일 메시지도 물거품이 된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담화문 전문을 무려 다섯 번이나 읽었다. 공들여 만든 문서는 최소한 두 번은 읽어주어야 한다는 개인적 신념도 있었고, 고도의 정치적 문서에 ‘숨겨진 코드’는 별도의 독해가 필요하다는 ‘경험적 지혜’도 있었다. 그렇게 서너 번 읽다보니, 사실관계가 다시 궁금했다.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이런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더러 있고, 꼼꼼히 보니 인용된 수치나 사례에는 오해의 소지가 적지 않았다.

읽고 또 읽어도 풀리지 않는 의문

그래서 나는 ‘국민이 궁금해서 드리는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어찌 보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시시콜콜한 디테일을 따지자는 어리석은 일이겠으나, 본디 내 본성이 어리석기도 하거니와, 몇몇 얘기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논의되는 것들이라 ‘현장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무엇보다도 담화문은 “국민 여러분의 동의”와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하고자 한 것이라 하니, 나 또한 동참의 목소리를 보태고자 한다. 국민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니 오해가 없길 바란다.

담화문의 요지는 간단하다. 앞으로 3~4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인데, 이에 정부는 경제 재도약을 위해 “공공·노동·교육·금융의 4대 구조 개혁”을 하고자 하며, 이렇게 “힘든 길”에 국민들의 고통 분담과 협조를 부탁했다. “우리와 후손들을 위해서 반드시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개혁을 하자는 대전제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크게 네 가지 의문이 있다. 4대 의문이라고 해도 좋다.

우선 구조 개혁 근거의 불명확성이다. “경제 전반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하다면서 4개 분야를 뽑았는데, 피가 철철 흐를 수술을 택한 데는 절박한 이유가 있겠다. 고통이 적은 레이저 수술을 제쳐두고 굳히 고통스러운 수술을 선택할 때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힘겨운 토론과 합의가 있었을 것이다. 즉 우리가 굳이 “힘든 길”을 가야 한다면,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내용이 필시 담화문에 담겨 있으리라. 다시 읽어볼 수밖에 없었다.

쉽지 않았다. 내가 찾아낸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G20(주요 20개국) 국가성장전략 중 1위로 평가받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따라 4대 구조 개혁을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중국·독일·일본 등 힘센 나라들이 몽땅 포함되어 있는 G20에서 최고로 꼽힌 성장전략이라고 하니, 덧붙여 설명할 이유도 없겠다.

하지만 G20에서 공식적으로 한국의 성장전략을 1위로 평가했다는 근거는 분명치 않다. G20은 누가 더 잘했는지 평가할 만큼 맷집이 좋지는 않다. 등수를 매기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그룹이다. 아마도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G20 성장전략의 국내총생산(GDP) 상승 효과를 분석한 것을 말하는 듯하다. 지난해 국내 언론에서도 그리 보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분석에서 4.4% 추가 성장이라는 단연 일등의 결과가 나온 것은 구조 개혁 때문이 아니다. 사회간접자본 투자의 대대적 확충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려 4.4%라는 수치의 신뢰성은 논란거리다. 이런 결과에 분석 당사자인 IMF와 OECD도 놀랐고, 한국의 정책 관계자도 놀랐다고 들었다. 여하튼 이런 분석에 기초해서 각국의 성장전략에 등수를 매긴 적은 없다. 게다가 이것이 유일한 근거이고, 그것마저 ‘외부’에서 수입한 것이라면, “국민 여러분”은 섭섭하지 않을 수 없다.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는 개혁안 ‘1등상’

박근혜 대통령이 6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둘째는 개혁 내용의 비대칭성이다. 4대 구조 개혁 분야를 뽑았는데, 개혁의 내용과 구체성이 제각각이다. “노동 개혁은 일자리”라고 선언한 뒤 담화문은 노동시장 구조 개혁에 대해서 구구절절하고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하지만 다른 개혁은 그렇지 않다.

공공부문 개혁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보다는 ‘이미 잘하고 있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공무원연금 개혁도 하고 있고,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 재정 정보도 공개한다고 했다. 교육 개혁은 추상적인 문구로 가득하다. “학생의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이나 “학벌 아닌 능력 중심의 사회 구현” 등등 구호성 문구가 넘치지만, 자유학기제 등과 같은 구체적인 정책은 “대수술”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사소하다. 금융 개혁 분야에는 “보신주의 관행과 현실에 안주한 금융회사의 영업 행태”를 바꾸겠다는 선언 이외에는 없다. 여기에 서비스산업 육성이 덧붙여졌는데, 그 내용은 서비스기본법 통과로 요약된다.

이렇다보니 구조 개혁의 “힘든 길”은 오로지 노동시장으로만 연결되어 있다. 나머지 개혁은 들러리라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4대 개혁이 아니라 “노동 개혁”만을 정조준했다는 ‘오해’를 자초했다.

셋째는 사실관계의 부정확성 또는 모호성이다. 모름지기 주요 경제정책은 타당하고 객관적인 통계나 분석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제 “대수술”도 수술이라면, 환자의 각종 수치를 제대로 알아내야 한다. 특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경우에는 어느 한편에서 나온 통계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수치로 수술하면 환자가 위험해질 수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불문율이자 철칙이다.

그런데 담화문은 이런 원칙을 간단히 무시했다. 우선 정년이 60살로 연장되면서 기업의 추가 부담이 115억원이 되므로 임금피크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할 때, 115억원이라는 무시무시한 수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제시한 것이다. 그 방법도 단순했다. ‘기업 정년 연장 실태조사’라는 기업 설문조사를 통해 정년 연장 혜택을 받을 노동자의 수와 평균급여를 추정한 뒤 그냥 곱한 숫자다. 이들의 실제 정년퇴직 여부와 급여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를 흔히 “편지봉투 뒤에 끄적인 계산”(back-of-the-envelope calculation)이라 한다. 온 국민을 위해 일하는 일국의 지도자가 인용할 만한 수치는 아니다.

서비스기본법과 관련해서는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서비스 기업들은 투자 규모를 34% 이상 늘린다”고 했다. 이 수치는 대한상공회의소가 400여 개 기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나온 것이다. 이해당사자가 행한 조사인데다, 인용도 정확하지 않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34%의 기업이 서비스기본법 개정시에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답했다. 서비스 기업들이 전체적으로 34% 이상 투자를 늘리겠다는 얘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기업의 62%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답했다. 즉, 대다수의 의견은 미지수다. 실수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실수라면 대국민 담화문에서는 있어선 안 될 실수이고, 실수가 아니라면 더 큰 문제다.

멋대로 풀이한 통계, 차라리 실수이길

또한 대수술이 성공하려면 수술 이후 환자의 피가 몸 구석구석으로 잘 흐를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심장에서 신선한 피를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혈관이 막혀 흐르지 않는다면 비싸고 고통스러운 수술은 환자의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겠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담화문은 기이하다. 살점을 들어내고 피를 내자고 하지만, 정작 혈관에 대해서는 퉁명스럽다.

예를 들어 정년 연장으로 늘어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자 임금피크제를 “강제적”으로 도입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렇게 생긴 ‘여윳돈’이 피처럼 환류해서 청년 고용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혈관이 없다. 임금피크제를 강제하듯이 이런 환류를 강제하지는 않는다. “기업들이… 그만큼 앞장서주셔서” 해줄 것을 부탁할 뿐이다. “청년들의 실업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미래에 큰 문제로 남게 될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결단을 내릴 때”라고 준엄한 경고를 던지는 담화문이 그 해법에 이르러서는 기업에 대한 호소문만 내놓은 셈이다.

그래서 마지막은 고통 분담의 편향성이다. 담화문은 “우린 모두가 한배를 타고 있는 운명공동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고통을 나누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운명공동체의 배’가 항해를 시작하기도 힘들 정도로 고통 분담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기울어진 배가 먼 길을 순항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 한국노총 천막 농성장에서 조합원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금피크제와 관련해서는 노동이 분담하는 몫은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데 비해, 기업의 분담은 간접적이고 자발적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정책이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대기업 편향이라고 할 법도 하다. ‘프로이트의 말실수’ (Freudian Slip)라는 말이 있다. 무의식이 의식에 개입해서 본의 아니게 속마음을 드러내는 말실수다.

또한 임금피크제를 공공기관에 도입하는 “솔선수범”을 보이겠다고 하지만, 정작 공무원에게 이를 도입하겠다는 얘기는 없다. 다만 “공무원 임금체계도 능력과 성과에 따라 결정되도록 개편”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팍팍한 정부 살림은 허리띠를 졸라매서 해결하겠다고 하는데, 정작 살림살이를 고달프게 만든 조세제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쓰임새를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금을 받아야 할 곳에서 제대로 징수하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균형이고 분담이겠다.

고통 분담이 공평하지 못하면 개혁에 대해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 때문인지 담화문은 노·사·정 대타협과 양보를 강조한다. 하지만 대수술의 방향이나 내용은 다 정해두고 수술 대상자에게 대타협을 호소하는 것은 결국 일방적인 수술동의서에 서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화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담화문에는 ‘대화’라는 단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독일의 사례를 꼽았다. ‘양보’와 ‘희생’으로 노동시장 개혁을 이루고 유럽 경제강국으로 다시 부상했다는 ‘아름다운 동화’다.

하지만 독일 전문가들은 독일의 사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크리스천 더스트먼과 동료들은 2014년 논문에서 독일 노동시장 개혁의 성공 이유를 대화와 협의를 중시하는 독일 노사관계 모델의 유연성에서 찾았다. 독일과 같은 포용적 노사 구조를 도입할 정치적 의사가 없다면 독일의 노동시장 개혁 모델은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공평한 고통 분담과 진솔한 사회적 대화 없이는 독일식 기적도 없다는 얘기다.

정부 투명성이 ‘꼴찌’란 말입니다

국민 담화문은 노동 개혁과 “고통 분담”을 역설하면서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지표를 언급했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26위권인데, 노동시장 효율성이 86위, 특히 그 하위 지수인 노사 간 협력지수가 132위이었기 때문에 국가 순위를 까먹었다고 한다. 노동 개혁만 하면 당장 10위권으로도 돌입할 것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이 지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겠다. 다만 인용할 때 공정했으면 한다. 한국의 순위를 까먹은 분야는 노동시장만이 아니다. 제도 부분과 금융부분도 모두 80위권이다. 특히 노사 간 협력지수가 132위라고 적시했는데, 사실 한국의 꼴찌 지표는 이게 아니다. 133위로 기록된 부분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니라 ‘정부 정책 결정의 투명성’이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ILO의 견해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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