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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 후에야 'CJ 회장' 된 이맹희

  • 김병철
  • 입력 2015.08.18 17:10
  • 수정 2016.03.14 12:47
ⓒ연합뉴스

"세상을 뜬 뒤에야 CJ 회장이 됐네요"

재계 한 관계자는 지난 14일 지병인 암으로 별세한 이맹희(84) CJ그룹 명예회장에 대해 이 처럼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고 이맹희 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3남 5녀 중 장남으로, 1931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1962년 삼성화재의 전신인 안국화재에 입사한 뒤 1970년대 중반까지는 삼성의 모태인 제일제당 대표이사, 삼성물산 부사장, 중앙일보 부사장, 삼성전자 부사장 등 초기 삼성그룹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삼성가의 장남'으로서 나름대로 제 대접을 받았다.

특히 1966년 터진 이른바 '한비 사건(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 당시에는 2선으로 물러난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을 대신해 10여개 부사장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영 방식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이병철 창업주와 대립하고, 한비 사건 관련 '청와대 투서' 사건의 장본인으로까지 의심받으면서 그는 점차 삼성그룹 핵심에서 밀려났다. 결국 1976년 이병철 회장은 3남 이건희 현 삼성그룹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했다.

이후 이맹희 명예회장은 개인적으로 제일비료를 설립했다가 실패를 맛 봤고, 1980년대부터는 외국에 머물며 사실상 '낭인' 생활을 해왔다.

1987년 11월23일,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례식에 참석한 장남 이맹희, 3남 이건희, 차남 이창희 형제(앞줄 오른쪽부터)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1994년 부인 손복남 안국화재 상무(현 CJ제일제당 경영고문)가 안국화재 지분을 이건희 회장의 제일제당 주식과 맞교환하면서 제일제당이 삼성에서 분리됐지만, 이맹희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 참여하지 않았다.

장남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의 사이도 그다지 살가운 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맹희 명예회장은 이미 2012년부터 암 투병생활을 시작했지만, 아들이 사는 서울이 아닌 베이징 거주를 고집해왔다. CJ관계자는 "고인이 생전에 베이징이 편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인의 별세 소식이 서울에 전해지자, 언론은 마땅한 호칭을 찾지 못해 '전 제일비료 회장'이라는 생전 가장 높은 공식 직함을 사용했다. 이에 대해 CJ그룹은 각 언론사에 "고인을 CJ그룹 명예회장으로 표기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CJ그룹은 고인의 생전에 이 같은 호칭을 정식 절차를 거쳐 부여하거나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한마디로 고인 사후에야 '급조'한 직함인 셈이다.

이에 대해 CJ 관계자는 "공식 직함은 아니지만 과거 제일제당 대표를 지낸 경력 등을 감안해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전 제일비료 회장이라는 직함이 안타까웠다면 오래 전 아버지에게 공식적으로 명예회장 타이틀을 부여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을텐데 이해하기 힘들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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