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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하는 고스톱!

막상 화투를 꺼내고 보니 룰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스마트폰 검색을 보고도 정확한 방법을 모르겠다는 친구들에게 내가 나서서 몇 가지 방법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한참 설명대로 이런저런 게임들을 즐기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 의아했는지 나에게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느냐고 물어왔다.

  • 안승준
  • 입력 2015.08.18 13:52
  • 수정 2016.08.18 14:12
ⓒ한겨레

친구들 몇명이서 함께 가까운 근교로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펜션 구석에 놓여진 화투를 본 어느 녀석이 우리도 한번 해 보자는 제안을 했다.

그런데 막상 화투를 꺼내고 보니 룰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스마트폰 검색을 보고도 정확한 방법을 모르겠다는 친구들에게 내가 나서서 몇 가지 방법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한참 설명대로 이런저런 게임들을 즐기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 의아했는지 나에게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느냐고 물어왔다.

화려한 화투장의 그림들과 시각장애인은 뭔가 어울리는 구석을 찾기 힘들었나 보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타자들처럼 시각장애인들은 손이 예민해서 뒷면만 만져도 패를 모두 알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뻥들을 늘어놨지만 이미 룰을 아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던 친구들은 한참 동안이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헷갈려 했다.

시각장애인들도 화투도 치고 카드놀이도 한다.

놀고 싶은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데 한 번 앉으면 밤새는 줄 모르고 한다는 게임들을 시각장애인들이라고 싫어할 리 없다.  

방법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일반적인 카드나 화투에 점자를 찍거나 붙이기만 하면 만져가면서 얼마든지 게임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패를 내면서 무엇을 내는지 말하기만 하면 상대가 무엇을 내고 무엇을 받아가는지까지도 쉽게 알 수 있다.

바닥에 깔린 패나 여러 장 들고 있는 그것들을 한눈에 볼 수 없어서 매번 더듬다 보면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기는 하는데 그것 또한 여러 번 하다 보면 그냥 외워버리면 된다.

그걸 어떻게 다 외우나 신기해하고 놀라워하기도 하겠지만 놀고 싶은 욕구는 생각 외로 많은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웬만한 보드게임은 약간의 수정으로 함께하는 것은 물론이고 윷놀이나 장기 정도는 판과 말을 외워서 대화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판이 필요없다.

바둑 좋아하시는 몇몇 분들은 말바둑까지 두시는데 대단하다고 감탄하는 사람들에게 그분들은 어차피 바둑 기사분들도 중간에 판이 엎어지면 똑같이 다시 놓을 수 있다고 별것 아닌 듯 이야기를 하신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정말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카드나 화투의 현란한 그림들은 간단한 숫자나 알파벳을 표현해 놓은 것이니 손으로 만질 수 있게 점자로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복잡한 판들을 외우는 것도 하고 싶은데 방법이 그것밖에 없으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갑자기 정전이 되고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되더라면 어쩔 수 없이 기억과 촉감을 동원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조금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욕구들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노는 것도 그렇지만 배우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미래를 꿈꾸고 사랑을 나누는 것마저도 공통의 욕구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약간의 불편함은 같은 상황에서는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낙오자들을 생산하기도 한다.

그럴 때 화투장에 점자를 넣듯 조금의 생각을 바꾸면 더 많은 이들의 꿈들을 이루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약간의 도움은 예상치 못한 큰 능력을 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둑판이나 장기판을 외우는 것을 상상도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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