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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박근혜 탓을 하지 않는다

작금의 전세난은 정부가 능히 예견할 수 있는 현상이었고 이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야 마땅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전세난에 대한 대비를 하기는 커녕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 LTV(담보인정비율) 및 DTI(총부채상환비율)을 완화하는가하면 저금리 기조를 계속 고수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임차인들이 집을 매수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적극 유도했다.

  • 이태경
  • 입력 2015.08.18 06:25
  • 수정 2016.08.18 14:12
ⓒgettyimagesbank

박근혜 대통령은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를 잘 둔 덕에 손에 물 한번 묻히지 않고 살았다. 박 대통령은 소녀 시절 청와대에 들어가 18년을 살았는데, 그녀가 청와대에 머물던 시절에는 대한민국에서 그녀 가족만 자유로웠다. 그녀가 국회의원과 정당의 대표를 거쳐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출생 덕택이었다. 단언컨대 그녀가 박정희의 딸이 아니었던들 대통령이 되는 건 고사하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교 신도들의 변함 없는 지지에 힘입어 30% 넘는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박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내는 콘크리트 지지자들의 정치적 의사결정의 유일한 기준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이다. 그 덕분에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청와대에서 독야청청하는 중이다.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이었을 때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들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 유동성 과잉 탓으로 버블 세븐 위주의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다. 하지만 이 당시는 전세가격이 크게 상승하지 않았기에 주거의 안정성이 위협받지는 않았다. 버블세븐과 인근 지역 이외의 주택 가격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버블세븐 지역과 그 인근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시민들중 상당수가 심리적 박탈감에 노무현을 미워했다. 버블세븐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은 종부세 때문에 노무현을 저주하고 증오했다. 노무현은 최선(과잉유동성이 부동산으로 흘러드는 걸 상당 부분 제어할 수 있는 LTV 및 DTI의 선제적 도입에 실기한 건 분명 실책이었다)을 다하고도 증오와 저주의 대상이 된 것이다.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된 부동산 버블 붕괴를 대한민국이 비켜간 데에는 노무현의 공이 절대적이었지만,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박근혜의 경우는 노무현과 정반대다.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이 사상 최초로 72%을 넘고,평균 전세가가 2억원을 넘어도(전국 아파트 전세가율 72% 넘어...평균 전세가 2억 120만원대,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710471), 전국 전세가격이 66주 연속 상승하고 아파트 매매가격이 59주 연속 상승해도(전국 아파트 매매가격 59주째 상승)이를 박근혜탓이라고 하는 언론이나 시민들을 찾기는 힘들다.

물론 지금의 극심한 전세난은 시장 참여자들의 집값 상승 기대감 상실, 저금리 기조, 무분별한 뉴타운 사업 등의 요인이 뒤섞여 전세공급에 비해 수요가 압도적으로 늘어난데서 기인하는 구조적 성격이 강하다. 쉽게 말해 집값이 상승할 가능성이 낮아지고 유례없는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다 보니 전세가 빠르게 월세로 전환되고, 반면 시장참여자들은 매매시장에 들어가기 보다는 전세시장에 머물려고 하다 보니 수급에 극단적인 불일치가 발생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살인적 전세난이 지속되는데에 정부가 기여(?)한 측면이 적지 않다는데 있다. 작금의 전세난은 정부가 능히 예견할 수 있는 현상이었고 이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야 마땅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전세난에 대한 대비를 하기는 커녕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 LTV(담보인정비율) 및 DTI(총부채상환비율)을 완화하는가하면 저금리 기조를 계속 고수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임차인들이 집을 매수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적극 유도했다.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유의미한 전세대책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결과 집값은 집값대로 들썩이고 전세가격도 하늘로 치솟는 파국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동산 부양을 경제정책의 전부로 아는 경제팀의 조언을 무시하고 집값에 대해서는 신경을 꺼야 했다. 그 대신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공공임대주택과 준공공임대주택을 확충했어야 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집값을 떠받치지 않았다면 집값은 차츰 하락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구매력 있는 임차인들이 매매시장에 들어와 매매가 형성됐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세수요가 준다. 거기에 더해 공공임대 물량과 준공공임대 물량이 임대차 시장에 공급되면 전세수급도 한결 완화됐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방점을 매매시장이 아닌 임대차 시장에 찍고, 집값 떠받히기가 아닌 주거 안정에 자원을 투입했다면 지금의 전세난이 이렇게 극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살인적 전세난과 주거난민 창궐의 책임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단지 언론 때문일까?

노무현이 대통령이었을 때는 모든 것이 노무현 때문이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자 박근혜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탓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에겐 크게 다행한 일이겠지만, 대한민국에는 이보다 더한 불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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