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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탁아소

학부모들이 자기는 100원도 아껴 쓰면서도 자식을 위해 천원, 만원을 가리지 않는 이유는 단지 '시낭송 대회'나 '노래 자랑'에 아이를 참여시키고 싶어서가 아니다. 탁아소에서도 우리말(한글)기초나 셈세기(숫자세기)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 외에도 아이들이 부모와 놀면서 어리광을 피우기보다는 자기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집단 활동도 배우고, 그 속에서 리더로서의 자질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 이제선
  • 입력 2015.08.17 07:44
  • 수정 2016.08.17 14:12
ⓒgettyimageskorea

저번 글에서 북한의 교육체제에 대한 전체적인 소개를 했다면 이번 편에서는 좀 더 깊이, 구체적인 일상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먼저 북한에서 태어나면 가장 먼저 가게 되는 곳이 탁아소다. 물론 누구나 똑같은 과정을 거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탁아소를 간다. 1980년대나 90년대에 탁아소의 기능은 출근하는 부모들을 대신해 아이들을 돌봐주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탁아소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다. 탁아소는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 아니라 일정의 교육기관이 되어버렸다. 왜냐면 많은 부모들이 그러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집집마다 자식들이 거의 2~5명은 되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 1명, 많아야 2명을 낳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자식에 대한 부모들의 기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님들의 마음이 다 그러하시듯 자식을 남보란 듯이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북한이라고 제외되지 않는다. 더욱이 하나뿐인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부모들의 기대치가 점점 커지면서 탁아소에서도 부모들의 입맛에 맞는 시스템들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가령 예를 들어 '시낭송 대회', '암기 대회'(숫자 외우기나 말꼬리 잇기), '노래 자랑'등이 포함되기 시작했다. 물론 과거에도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치열하지는 않았다. 많은 원생들 중에서 자기 자식을 중심에 세우기 위해서는 자식이 천재이거나 아니면 경제력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권력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래자랑을 할 때 독창을 시킨다거나, 시낭송 대회에 참가하려면 그만큼 탁아소와 선생님들에게 물질적 지원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탁아소나 선생님들이 물질에 눈이 어두워서는 아니다. 원래 탁아소는 정부 기업이기 때문에 운영하는데 필요한 모든 물질적 자원들을 정부가 지원해 주어야 하지만 정부 또한 경제사정이 어렵다보니 그럴 형편이 못된다. 대신 북한에서는 "자력갱생"이라는 혁신적인 구호를 만들어 냈는데 이는 탁아소라고 제외되지 않는다. 정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없다보니 탁아소에서는 기업장이 모든 문제를 자체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원장과 보육원들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학부모들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사회주의 사회라고 학부모들도 사람인 이상 아무런 대가 없이 탁아소를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렇게 부자가 아니지만, 그렇게 권력가가 아니지만 탁아소에 필요한 물질적 자원들을 스스로 가져다 바치는 것은 남들보다 자기 자식을 더 많이 신경 써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탁아소 선생님들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당연히 학부모가 열성이면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학부모는 더 잘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정부의 도움이 없이도 그렇게 탁아소는 유지될 수 있다. 탁아소는 보통 오전8시부터 오후6시까지 운영하는데 과거(1990년대)에는 점심, 간식, 옷, 신발에 이르기까지 전부 정부에서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90년대 말부터는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때문에 탁아소를 보내기 위해서는 점심 도시락을 사가야 하며, 옷이며 신발이며 전부 부모가 부담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서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가령 누가 더 예쁜 옷과 신발을 신었는지, 누구의 도시락에 맛있는 음식이 많이 들어 있는지 등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깟 일일지 모르지만 당사자들 마음은 그렇지 않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경쟁하지는 않는다. 경쟁에 참여할 만큼의 경제력을 가지지 못한 부모는 아예 포기한다. 그리고 아이를 탁아소에 보내지 않는다. 그 사람들을 제외한 부모들은 아이를 탁아소에 보내는 것과 동시에 경제력 경쟁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한계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 남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부류는 나누어지는데 상, 중, 하로 나뉜다. 상에 속하는 사람은 탁아소에 그렇게 많지 않다. 일반적(내가 살던 지방의 탁아소를 기준으로 봤을 때)으로 탁아소에는 어린이들이 많게는 20~30명, 적게는 10~20명 정도의 원아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상류층에 속하는 아이들은 기껏해야 2~3명이다. 중류층은 10명 정도, 나머지는 하류층에 속한다. 중류층에 속하는 학부모들은 절대로 상류층과 경쟁하지 않는다. 왜냐면 아무리 노력해 봤자 답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사회라 빈부차가 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이유 때문에 빈부차이가 더 심할 수 있다. 따라서 이성적인 학부모들은 무모한 도박을 하기보다는 자기가 속한 부류의 사람들과 경쟁을 한다.   

덕분에 그렇게 치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만만하지도 않다. 어쨌거나 학부모들이 자기는 100원도 아껴 쓰면서도 자식을 위해 천원, 만원을 가리지 않는 이유는 단지 '시낭송 대회'나 '노래 자랑'에 아이를 참여시키고 싶어서가 아니다. 탁아소에서도 우리말(한글)기초나 셈세기(숫자세기)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 외에도 아이들이 부모와 놀면서 어리광을 피우기보다는 자기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집단 활동도 배우고, 그 속에서 리더로서의 자질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도 탁아소를 다닌 어린이들과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은 유치원생활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탁아소를 다니지 않은 어린이들은 다닌 어린이들에 비해 유치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데도 어려움이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결과는 달라지겠지만 초기에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탁아소를 다닌 아이들은 좀 더 활동적이거나 성숙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난관에 부딪혔을 때 부모나 선생님을 찾기보다는 먼저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마도 이런 부분 때문에 탁아소를 보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아이들 역시 탁아소에서의 경쟁을 토대로 자신의 위치(부모의 경제력 혹은 권력 + 원아들 속에서의 자기 서열)를 파악하게 되는데 이는 탁아소에서뿐만 성장기간 내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은 보통 생들의 차별적인 대우를 통해 자기들의 위치를 알게 된다.

차별대우는 보통 탁아소 내에서 선생님들이 만들어 놓은 규정을 어기게 되었을 때 나타난다. 똑같이 규정을 어겼어도 누구는 욕을 먹거나 벌을 받지만 누구는 눈감아주는 등 선생들의 차별 행위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각자 자신의 성격에 따라 새로운 위치로 가게 된다. 가령 활동적이고 도전적인 아이들은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인지하고 부모로부터 더 이상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면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갈 길을 스스로 찾는다. 가령 잘사는 집 아이들만 노는 무리에 경제력으로 끼우기 어렵다면 힘으로 그들을 제압하든 아니면 리더십으로 포섭한다. 그러나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자기가 어울리는 무리거나 혹은 혼자만의 영역을 만들어 나간다.  

어른들(탁아소에 다니는 아이들과 관계없는)이 보기에는 탁아소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상 탁아소는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계급을 부여받고, 자신의 영역을 인지해가는 가장 중요한 단계일 수도 있다. 실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북한의 사막 같은 조직망에서 어떻게 그늘을 찾아다녔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탁아소는 기껏해야 4~7살 어린이들이 다니는 곳이라 그들을 대상으로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어려워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긴 했지만 다음 편에서부터는 목적에 충실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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