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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인터뷰] 김풍, '절름발이 수컷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 박세회
  • 입력 2015.08.16 09:58
  • 수정 2015.08.23 10:25

1세대 웹툰 작가로 출발 '폐인 가족'으로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던 남자, 해당 만화의 캐릭터 사업으로 수십억 매출의 회사를 경영하기도 했던 남자, 한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극단에도 들어갔던 남자. 그리고 이제는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준셰프'로 포지셔닝한 김풍을 만났다. 역시나 예상대로 김풍은 전혀 허술한 사람이 아니었다.

김풍이 속한 프로덕션 와이랩의 카페에서.

요새 한창 대중의 호감을 끌고 있어요. 바쁘죠?

=아녜요. '냉장고를 부탁해'하고 이번 주에 첫 방송을 한 '비법'이라는 프로그램 말고 고정으로 하는 건 없어요.

어제 방송에서는 시부스트 크림을 만들더군요. 자취 요리라더니 고급스러운 조리법도 잘 알고 해외 음식재료에 대한 이해도 바삭해요. 여행을 자주 다니나요?

=아뇨.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외국에 나가는 게 무서워요. 오로지 인터넷 디깅을 통해 학습할 뿐입니다.(웃음) 알고 싶은 게 있으면 블로그와 유튜브를 샅샅이 뒤져서 제 나름의 레서피로 만들어서 보관해요. 그러다 해외에 한번 나가면 잔뜩 배워서 오기도 하죠.

검색의 노하우가 있나요?

=이제 인터넷에서 고급 정보를 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저작권에 대한 규제도 강화됐고, 정보 제공자들이 자신의 정보를 현물화 시키는 다양한 경로가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자기만의 비법을 막 풀지 않아요. 그래도 아직 (요리에 관한 한) 고급정보가 남아있는 곳이 있습니다. 유튜브예요. 특히나 만들고 싶은 요리의 '현지어'를 사용해서 유튜브로 검색하면 고급 정보를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구글 번역기를 써서 말이죠.

'냉장고를 부탁해'로 수면 아래 있다가 한방에 스타가 됐어요. 어떻게 연줄이 닿았는지가 궁금해요.

=그전부터 '올리브 TV'에서 여러 요리프로그램에 출연했어요. JTBC에서 '냉장고를 부탁해'를 기획할 때 필요했던 포지션이 '셰프가 아닌 사람'이었는데 제가 물망에 올랐던 거죠.

오늘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당~

풍김(@kim_poong)님이 게시한 사진님,

이제는 지디, 태양과 셀카를 찍는 남자.

찌질의 역사'의 제작사인 Y-LAB에서 연결해준 게 아닌가요?

=아녜요. 전혀 아니에요.(웃음) Y-LAB은 그런 걸 해주는 곳이 아녜요. 웹툰 프로듀싱을 해주는 곳이죠.

웹툰 프로듀싱이요?

=일본이나 미국에는 정착화되어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생소한 시스템이에요. 마블을 생각해보세요. 한 명의 작가가 그리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게 미국식 모델이죠. 일본은 좀 달라요. 일본에는 몇몇 굵직한 만화 프로듀서들이 있어서 재능 있는 작가들이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요. 시나리오와 콘티에서부터 시작해서 작화에 이르기까지 조언자가 되는 거죠. 만화 작가가 드라이버라면 프로듀서는 길 전체를 읽어주는 내비게이터 격입니다.

전통적으로는 '주간 소년점프'를 내는 슈에이샤 등의 만화출판사 편집자들이 그런 역할을 하지 않나요?

=그렇죠. 그런데 현재 포털 업체들이 작가들의 작품들 하나 하나 일일이 그런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이 안 되죠. 일단 관리하는 작가가 너무 많아요. 시간도 없고요. 개개의 만화가 나아갈 길을 말해주기에는 힘겨운 상황이죠. 그래서 프로듀싱 시스템, 제작사가 필요한 거예요. Y-LAB이 바로 그런 프로듀싱 환경을 제공해주는 제작사죠. 제 최근의 웹툰 '찌질의 역사' 같은 경우도 인완이 형(윤인완, '신암행어사'의 작가)이 프로듀싱을 해준 거예요.

'신암행어사'의 작가인 윤인완(글), 양경일(그림) 씨는 일본에서는 엄청난 대작가님 대우를 받는다면서요?

=어마어마하죠. '신암행어사'가 일본에 진출해서 제대로 성공한 거의 첫 한국만화잖아요.

그리고 윤인완 씨가 Y-LAB을 차렸고, 동료인 양경일씨와 1세대 웹툰 작가인 김풍, 요새 한창 핫한 '무적핑크' 등을 데리고 있는 거군요. 만화계의 SM을 꿈꾸는 건가요?

=(웃음) 아마 인완이 형은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SM을 보면 느끼는 거지만, 그런 프로듀싱 시스템이 아이돌 가수를 공장화한 것 처럼 웹툰도 그렇게 될 위험은 없나요?

=웹툰과 대중음악을 그렇게 단적으로 비교하기는 힘들어요. 작품 전체에서 작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르기 때문이죠. 프로듀싱 시스템이 도입된다고 해도 아무래도 작가의 창작물이기 때문에 '대체 가능할 정도'로 역할이 작아지진 않을 거예요.

그렇겠네요. 아무래도 아이돌 멤버에 비교하면 웹툰 작가의 대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되겠죠.

=요새 그 대체 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대체 가능성이 작을수록 더 높은 가치를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것, 멋진 게 무조건 잘 팔리던 시대는 지났어요. 아프리카 TV에서 우리가 상상도 못 하던 스타들이 탄생했어요. 일 년에 몇억씩 법니다. 누군가 이들을 본다는 건 그 사람들에게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저도 전혀 팔릴 거로 생각하지 않았던 제 자신이 방송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정보제공자, 인포메이션 프로바이더(이하 'IP')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어요.

어떤 결론을 내렸나요?

=지금은 아직 플랫폼의 시대에요. 메인 포털에 연재하느냐 마느냐, TV에 나오느냐 마느냐가 모든 걸 결정하고 있죠. 그러나 앞으로는 IP의 시대가 올 거로 생각해요. 인터넷과 모바일이 더 발전하다 보면 획일화된 플랫폼은 갈리게 되어있고 오히려 1차 정보제공자가 플랫폼을 선택하는 시대가 올 거예요.

동그란 안경은 왠지 어색. #엘르9월호

풍김(@kim_poong)님이 게시한 사진님,

자세히 보면 멀쩡한 미남.

역시 제 예상이 맞았군요. 전 김풍이 실은 천재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거든요. 요새는 강연도 다닌다면서요. 어떤 얘기를 해요?

=일단, 사람들이 나를 왜 원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았던 강연이 어떤 강연이었나를 생각하게 되었죠. 강연이 좋은 경우는 대부분 이미 내 마음속에 뭔가가 있었는데 거기에 시동을 걸어주는 강연이었어요. 내가 항상 속으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조리 있는 말로 풀어내지 못했던 걸 강연자가 대변해서 말해주면 카타르시스를 느끼죠. '그래,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어.'라는 생각. 그럴 때 힘을 얻게 된다고 생각해요. 주커버그가 빌 게이츠의 강연을 듣고 '페이스북'을 만들게 됐다고 해요. 그런데 빌 게이츠가 강연에서 '페이스북을 만드세요'라고 한 게 아니거든요. 주커버그의 마음속에 페이스북이 있었는데 거기에 빌 게이츠가 시동을 걸어준 거죠.

그런데 요새 젊은이들의 상황이 김풍 씨의 20대와는 너무 달라서 조언하기 힘든 것도 있겠어요.

=정말 힘들어요. '희망을 품으세요'라는 무책임한 말은 하기 힘들죠. 제 친구들만 생각해봐도 정말 좋아하던 걸 계속하던 애들이 결국 잘됐어요. 정말 '이 새끼들 나중에 커서 뭐하지'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지금 디자이너가 됐고, 유명 예능프로그램의 메인 작가가 됐지요. 우리 때는 IMF가 있었음에도 미래 걱정을 안 했어요. '그래도 졸업하면 취직해서 살 수 있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IMF 이후에 벤처 붐이 일고 IT업계가 늘어나면서 별걱정이 없었어요. (90년대 최대의 호황기에 맷집을 불려놨던) 아버지 세대의 비호도 있었고요. 보릿고개에 애들만 배 터진다는 말이 있잖아요?(웃음) 열차의 마지막 칸이었다는 느낌이에요.

한 인터뷰에서 '찌질의 시대'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얘기를 좀 하고 싶었다고 했더군요.

=제 얘기를 그렸다기보다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왜 절름발이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싶었어요. 원래 제목은 '보편적인 수컷들의 역사'였어요. 아버지가 너무 강성이면 아들이 조금 죽어 살기도 하고, 반대로 아버지가 좀 막 나가면 아들은 반대로 정신을 차리고 살기도 하죠. 그런 부자의 관계를 그리고 싶었어요. 억압됐던 아이들이 주입식 교육 안에서 연애도 제대로 못 해보고 미숙한 정신상태로 20대가 되면 절름거리게 되거든요. 그런 수컷들에 관해서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저도 스무 살 때를 생각해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창피해요. 대체 나는 무슨 생각으로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저도 그래요. 누구나 다 그럴 거예요. 그런데 그걸 직시해보자는 거죠. 우리의 찌질함에 대해서 생각 좀 해보자. 찌질의 '역사'잖아요. 역사는 과거를 알고 현재를 반추하고 미래를 설정하기 위해 있는 거잖아요. 일반화시킬 순 없지만, 우리의 아버지 세대는 사과를 하지 않아요. 미래만 보고 있죠.

요새 흥행하는 영화 '베테랑'에서도 재벌 3세가 사과 한 번 하면 될 걸 안 해서 그 사달이 나는 거죠.

=그러니까요. 찌질의 시대에도 나오는 데, 한 남자애가 사과를 끝까지 안 하다가 결국 하면서 많은 걸 느껴요. 사과는 정말 중요한 거예요. 사과할 때 우리는 그 행위에서 자신이 굉장히 보잘것없이 작아지고, 자연스레 고개가 숙어지는 느낌을 느끼게 됩니다. 그 느낌을 느껴봐야 '이러면 안 되는구나'라고 체득하고 같은 잘못을 안 하게 되는 거거든요. 사과라는 게 자기 자신의 바닥을 보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찌질의 역사'는 제 고해성사 같은 거예요.

김풍은 '김풍상회'라는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리고 소속 아티스트로 자신을 섭외했다.

주변에서 '김풍'하면 배려의 아이콘이라고 하더군요. 방송을 보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정말 잘 배려해요. 제 주변에 있는 김풍 씨의 지인들도 '처세'를 잘한다고 평하더군요.

=다른 사람을 챙기는 이유를 잘 분석해보면, 사실 저는 굉장히 분석적이고 이기적이에요. 공감능력이 강한 편이라 옆에 있는 사람이 불편해하면 금방 눈치를 채고 저도 안절부절못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그 사람을 어떻게 챙겨서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줄지를 생각해요. 제가 불편하기 싫어서죠. 이기적이기 때문에, 내 감정을 너무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내 기분이 상하기 싫어서 잘해주는 거죠.

솔직한 분석이긴 한데 대부분은 그냥 '착하다'고 남들이 말하는 걸 받아들이지 않나요?

=그런 걸 조심해야 해요. 이타적인 행동이라도 그 행동의 저변에 깔린 자기감정을 정말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지 않으면 위선자가 되기 쉬워요. 그런 위선은 쉽게 드러납니다.

전혀 허술하지 않네요.

=전 머리를 좀 굴리는 편이에요. 지금도 기자님과 얘기하면서 '내가 왜 팔짱을 끼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기자랑 거리를 좀 두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내가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도 왜 그런 건지 분석하는 사람이에요.

마지막으로, 만화를 그리는 이유가 있나요?

=사실 어떤 주제든지 단정적인 한 문장으로 결론을 내린다는 건 불가능해요. 만화는, 길고 긴 스토리 안에 자신이 했던 생각과 사고의 흐름을 녹이죠. 칼럼니스트는 다르죠. 단정적이고 선동적인 분명한 의견을 개진해야 해요. 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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