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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해방 기념을 하지 말자고?

온 국민이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가운데 왜 이런 황당한 주장을 펼칠까? 논거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가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을 맞기는 했으나 세계를 향해 독립을 선포한 것은 1948년 8월 15일이다. 1949년 9월 이승만 정부는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여 그 날을 광복절로 지키기로 하고, 1950년, 51년 8월 15일을 각각 제2회, 제3회 광복절로 경축했다. 그런데 1951년 한 언론의 실수로 제3회가 제6회로 기록되면서 혼란이 시작되었다.

  • 전강수
  • 입력 2015.08.15 11:56
  • 수정 2016.08.15 14:12
ⓒgettyimageskorea

거짓말도 자꾸 하면 는다더니 곡학아세하는 글쓰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뉴라이트 인사들의 온갖 역사 왜곡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광복 70주년을 맞아서 늘어놓는 궤변은 왜곡의 절정이라 할만하다. 지난 8월 13일 이인호 KBS 이사장은 '광복절은 대한민국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다'라는 제하의 중앙일보 칼럼에서 이번 8월 15일을 '광복 70년'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고 강변했고,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는 8월 12일자 문화일보 칼럼에서 광복절의 주년(週年)을 바로잡자고 주장하면서 "올해는 광복 67주년이 되는 해"라고 선언했다.

온 국민이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가운데 왜 이런 황당한 주장을 펼칠까? 논거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가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을 맞기는 했으나 세계를 향해 독립을 선포한 것은 1948년 8월 15일이다. 1949년 9월 이승만 정부는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여 그 날을 광복절로 지키기로 하고, 1950년, 51년 8월 15일을 각각 제2회, 제3회 광복절로 경축했다. 그런데 1951년 한 언론의 실수로 제3회가 제6회로 기록되면서 혼란이 시작되었다. 한 언론의 실수가 전체 언론계에 파급되었고 정부도 슬그머니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주년이 오기되고 경축 대상도 정부 수립(건국)이 아닌 해방으로 바뀌었다. 요컨대 애초에 광복절은 건국을 경축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초기 2년 동안 그 정신에 입각하여 회수를 붙였으므로, 지난 수십 년 간의 잘못된 광복절 개념과 주년 부여를 정정해서 원래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해방과 광복이 다르다고?

희한하게도 이들은 해방과 독립을 구분한다. 광복은 해방이 아니라 독립을 의미하고, 독립은 바로 건국이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그 생각에 따르면, 1945년 8월 15일은 해방일이 되고 1948년 8월 15일은 독립=광복=건국이 이뤄진 날이 되는데, 광복절은 당연히 후자를 기념하는 날이 되고 만다. '8.15해방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었다'는 식의 말을 들은 적이 있어도, 독립이 해방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은 태어나서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게 상식이 되어 있는 개념은 해방은 독립이요, 광복이라는 것이다. 1945년 8월 15일에 수많은 군중이 거리로 뛰쳐나와 한 목소리로 외친 구호가 무엇이던가? '대한 독립 만세!' 아니었던가? 정부 수립 이전 제1회 해방 기념일에 백범 김구 선생이 연단에서 만세 삼창하며 외쳤던 말이 무엇이던가? '대한 독립 만세!' 아니었던가? 뉴라이트의 주장대로라면 김구 선생은 존재하지도 않는 대상을 놓고 만세를 외친 셈이다. 당시에 우리 국민 모두에게 독립은 곧 해방이었다.

독립 운동가들이 추구했던 광복 또한 해방이 아니라 독립, 즉 건국을 의미한다는 것이 이인호 이사장과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다. 인터넷 포털에서 광복으로 검색을 해 봤다. 도무지 광복을 건국으로 인식하는 글은 찾을 수 없었다. 이승만 정부가 공모 과정을 거쳐 채택한 광복절 기념가가 노래하는 대상도 건국이 아닌 해방의 기쁨이다. 이영훈 교수가 2006년에 처음 건국절 제정을 주창하며 쓴 동아일보 칼럼을 찾아보았다. 거기서는 이 교수 스스로도 분명 광복을 해방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에게 1945년의 광복과 1948년의 제헌, 둘 중에 어느 쪽이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이다." "1945년 8월의 광복에 나는 그리 흥분하지 않는다."

기본 개념을 이렇게 함부로 바꿔 사용해도 좋은지 의문이다. 아무튼 2006년 당시 이영훈 교수의 광복 개념이 해방 정국에 우리 국민이 갖고 있던 보편적 인식에 부합하며, 현재 우리 국민 대다수가 생각하는 개념과도 일치한다. 보편타당한 개념을 왜곡해서 스스로를 속이고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학자가 할 일이 아니다.

이승만의 인식과도 다른 뉴라이트의 생각

뉴라이트 인사들이 국부로 추앙하며 복권을 시도하고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인식은 어땠을까? 그는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기념식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8월 15일 오늘에 거행하는 식은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民國)이 새로 탄생한 것을 겸하여 경축하는 것입니다."

이때 이승만은 분명 8월 15일의 의미를 해방 기념을 겸한 정부 수립 경축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의 인식은 시간이 가도 바뀌지 않았다. 1949년 8월 15일 정부 수립 1주년 기념식에서 그는 "민국 건설 제1회 기념일인 오늘을 우리는 제4 해방일과 같이 경축하게 된 것입니다"라고 연설했고, 1950년 8월 15일 기념사에서는 "금년 8.15 경축일은 민국 독립 제2회 기념일로서 전 국민이 다 지켜야 할 이때에"라고 했지만 1951년 8월 15일 기념사에서는 다시 "이 8월 15일 해방 독립 기념이 주는 위대한 교훈은"이라고 말했다. '해방 건국 이중기념 축하 근역(槿域)에 미만(瀰滿)'('근역에 미만'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 가득차다'라는 의미)이라는 제목을 단 1949년 8월 16일자 경향신문 기사는 8.15를 해방 기념 및 정부 수립 경축으로 인식하고 있던 이승만의 태도를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다.

이승만은 1952년과 53년에는 아예 광복절 기념사 제목을 각각 '8.15 해방 독립 기념일에 제하여', '독립절 기념사'로 붙였다가, 1954년과 55년에는 광복절 주년을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변경하여 기념사를 발표했다(제9주년 광복절 기념사, 제10주년 광복절 기념사). 1955년 기념사에서 이승만은 "오늘은 우리가 소위 해방한 지 제10회 기념일을 축하하자는 것인데"라고 말해서 광복절을 해방 기념일로 규정했다. 요컨대 이승만은 해방 경축과 정부 수립 기념 사이에서 오락가락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그에게 광복절이란 해방 기념일이자 정부 수립 기념일이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닐까 짐작한다.

이영훈 교수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1951년 이후 광복절을 해방 기념일로 인식하게 되는 변화를 혼란과 무지의 결과로 인식하는데 이는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정부 내 혼선은 정부 수립 초기나 전쟁 시기에 생기기 쉽고 안정기에는 오히려 수습되는 법이 아닌가? 이승만이 해방 기념일과 정부 수립 기념일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1950년, 51년 기념사에 각각 제2회 광복절 기념사, 제3회 광복절 기념사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바로 혼란기에 생긴 일이다. 1950년대 중반 광복절 주년을 제9주년과 제10주년으로 붙인 것은 정부 안정기에 생긴 일이다. 혼선이 빚어지기 쉬운 정부 수립 초기에 정확한 행정처리가 이뤄지고, 혼선이 수습되기 쉬운 정부 안정기에 오히려 혼란과 무지의 결과가 뿌리내렸다고 보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이승만은 자신이 건국한다고 생각했을까?

지금까지의 논지를 벗어나기는 하지만, 여기서 잠깐 이승만이 건국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48년 8월 15일의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나라를 새로 세운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기념식 연설문 중의 "세계 정부 중에 우리 새 정부가 다시 나서게 됨으로"라는 말이나 연설문 말미의 날짜 표기("대한민국 30년 8월 15일")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1919년 3월 1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인식은 다음의 1951년 광복절 기념사에도 분명히 드러나 있다.

"1919년(기미년)에 우리 13도를 대표한 33인이 우리나라 운명을 개조하기 위하여 1776년에 미국 독립을 선언한 미국 창립자들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 한국을 독립 민주국으로 공포한 것입니다. 이 민주 정부가 서울서 건설되어 임시로 중국에 가있다가 3년 전 오늘에 우리 반도 남방에서 실현된 것입니다."

뉴라이트 인사들이 정부 수립의 공헌을 상찬하며 추앙하는 이승만 본인이 1948년의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승만은 '독립운동의 원훈(元勳)'이라는 명성을 배경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통치 권위의 상당 부분을 바로 거기서 확보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정부 수립을 해방에서 따로 분리하여 그 중요성을 별도로 강조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정부 수립 기념일을 8월 15일로 잡은 것도 자신의 정부를 감격스런 해방의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결합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내린 결정일 가능성이 크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든지, 광복절의 주년을 3년 줄이자든지, 광복절을 독립기념일로 변경하자는 뉴라이트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의 지지를 받을 수도 없고 그들이 존숭하는 이승만의 인식과 조화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이승만 복권? 친일파 복권?

*<오마이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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