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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남북관계, 노력해볼 여지는 아직 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안보의 의미가 강조되더라도 화해 기조를 광복절에 대통령의 얘기 속에 담게 되면 북에 최소한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과 후 대화'가 아니라 '대화 속 사과'다. 지금은 작은 디테일에서라도 회복의 기회를 만드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 정현곤
  • 입력 2015.08.13 11:07
  • 수정 2016.08.13 14:12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8월 4일 파주 일원 DMZ 남측 추진 철책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우리 병사 2명의 발목이 절단되는 심각한 부상사고를 놓고, 10일 국방부가 이를 북한 소행으로 조사·발표하면서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국방부 전비태세검열단은 이 지뢰가 북이 제작한 목함지뢰로, 7월 23일 이후 8월 4일 사이 북 전문 병력이 군사분계선을 440m 넘어와 설치한 것이라 발표했다. 사고 당시 수색작전을 지휘한 병사들은 11일 언론 인터뷰에서 첫 폭발 직후 이 폭발을 '적 포탄 공격'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는데, 이는 "통문은 수없이 다닌 코스인데 이유 없이 폭발이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는 말에 비추어 정황이 맞아떨어진다.

사실 이 사건을 대하는 국민 모두는 너무나 혼란스럽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지나치게 널뛰기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8월 5일에 이희호 여사의 방북이 있었다. 이들 방북단은 8일에 귀국했는데, 당시 언론과 국민의 관심은 이희호 여사가 김정은 제1위원장을 만났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만큼 남북관계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과는 이희호 여사가 귀경 인사에서 "어떠한 공식 업무도 부여받지 않"았다고 에둘러 말했던 대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여사가 방북하던 그날 정부가 통일부장관 명의의 대북 전통문을 북에 보내려 했고 북이 이를 수령 거부한 일이 밝혀지면서 정부의 태도에 비난이 쏟아졌다.

당국의 널뛰기 행보 와중에 발생한 사고

정부의 공식 문서가 수령 거부된 이 창피스러운 일을 당사자인 통일부가 공개하게 된 데는 이희호 여사의 방북기간에 북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가 이 사실을 이여사 측에 알려주었고 그것이 점차 사람들에게 회자된 때문이었다. 통일부로서도 공개적 설명이 필요했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이희호 여사의 방북에 대해 부득불 '개인자격'임을 강조하고 심지어 공개적으로 '이여사를 통해 전할 정부의 대북 메시지는 없다'고 못 박은 정부가 딱하게도 하필 이희호 여사가 방북한 날에 대북제안을 하려 했고 이것이 무시당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지뢰사고가 난 8월 4일과 대북제안을 시도한 8월 5일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통일부가 낸 서신은 '추석(9월 27일) 계기 이산가족 상봉, 광복 70주년 공동 기념행사 개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북한의 관심사항도 함께 포괄적으로 논의하자'는 다소 적극적인 것인데다가 '회담 형식, 대표단, 일자, 장소 등은 상호 협의로 정해나가고, 필요시 사전접촉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담고 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10일 브리핑에서 "북한은 오늘(10일) 아침까지도 서한을 수령하지 않았다"며 "남북관계에 대한 초보적인 예의조차 없는 것으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는데, 북에 의한 지뢰폭발 사고를 이미 알고 있는 통일부가, 북이 이 제안을 받았다면 회담을 할 생각이 있었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의 경우는 대체로 격앙되어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7월 19일에 발표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보도문에서 북은 "북남관계 개선의 기회들을 다 차버리고 동족을 헐뜯는 악담질과 대결전쟁 소동으로 북남대화를 파탄시킨 주범들이 그 무슨 '대화' 타령으로 시꺼먼 속심을 가리워보려고 제아무리 발악해도 이 세상에 그 누구도 그에 귀를 기울일 사람은 없다"고 주장했다. 박근혜정부의 그 어떤 대화 제의도 '정치적 흥정물'이기에 상종조차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인데, 북의 이 악담은 악몽의 기억 속에서 재생되는 측면이 있다.

북이 가진 대남관계 악몽의 가장 가까운 사례는 지난해에 있었다. 2014년 10월 4일 아시아경기대회 마지막 날에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북의 핵심 3인방의 깜짝 방남이 있었다. 국무총리가 나서서 이들을 만났고 남북고위급회담 개최가 합의됐다. 그러나 탈북자들에 의한 대북 삐라 살포 문제를 풀지 못하면서 남북은 그 어떤 유의미한 회담조차 열지 못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두달 후인 12월 29일에 한·미·일 국방차관 사이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 체결이 있었다. 이 약정은 '미국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 정보를 공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 대남교류파의 좌절이자 남북 공히 화해파의 좌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북에서 강경파가 득세하는 계기가 그때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화해와 사과, 아직 방법은 있다

남북관계가,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 제약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화해와 협력 정책에 대한 의지나 시도는 계속되지만 남북 공히 군사, 안보적 사고가 주도하면서 화해 시도들이 좌초되고 오해가 쌓여간다. 이번 지뢰폭발 사고는, 그것을 시도한 북의 군부나 이를 기회로 삼는 우리 측의 강경세력에 힘을 싣는 결과를 낳고 남북대화는 멀어지는 효과를 낼 것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뢰폭발 사고 당시 수색대의 맨 앞에 나섰고 뒤를 따르던 동료 병사가 폭발 사고를 당하자 그를 부축해 후송하다 자신도 발목 하나를 잃은 병사의 말이다.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직접적으로 강경하게 하는 것은 북한의 의도에 넘어가는 것 아닌가 한다"라고. 지금으로서는 8월 5일에 정부가 내놓은 대북제안을 철회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안보의 의미가 강조되더라도 화해 기조를 광복절에 대통령의 얘기 속에 담게 되면 북에 최소한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과 후 대화'가 아니라 '대화 속 사과'다. 지금은 작은 디테일에서라도 회복의 기회를 만드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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