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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천재 조치훈과 광복 70돌

그가 사는 곳은 일본의 지바현인데, 바둑만 두면 될 줄 안 그가 최근에 경색된 한-일 관계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적을 바꾸지 않아 문패가 한국 이름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알아본 우익이 집에 돌을 던진 일도 있다고 합니다.

  • 김창금
  • 입력 2015.08.13 10:03
  • 수정 2016.08.13 14:12
ⓒ월간바둑

조치훈(59) 9단은 한국 바둑의 천재입니다. 전통과 모양, 형식을 중시하는 일본 바둑계에서 통산 74번 타이틀을 따냈습니다. 최다 타이틀 쟁취 기록입니다. 지난달 26일에는 모처럼 서울에 와 조훈현 9단과 '전설의 대결'을 펼쳤습니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시니어 기사의 대국은 조치훈 9단의 시간패로 끝났습니다. 바둑은 실리와 세력으로 상대를 윽박질러 반집이라도 앞서면 이깁니다. 그런데 조치훈 9단은 계시원이 불러주는 제한 시간 안에 바둑돌을 놓지 못해 실격했습니다. 267수까진 둔 상태였는데, 조치훈 9단이 유리했던 바둑이어서 바둑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습니다. 당시 텔레비전 중계화면에 비친 조치훈 9단의 모습에서는 바둑 외길을 걸어온 사람에게서 풍기는 면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꺼운 뿔테 안경 너머의 잔잔한 눈과 무성한 수염, 자유분방하게 뻗친 머리까지 자유인의 이미지가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조훈현 9단이 "바둑은 이기고 승부는 져주는 조치훈 9단이 대가다. 많은 공부를 했다"고 덕담을 하자, "내가 멋을 내다가 망했다. 실력이 없어졌다"고 말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한국말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소탈하고 풍부한 그의 감성은 온전히 전달됐습니다.

1980년 일본 명인에 오른 뒤 금의환향한 조치훈 부부 한국기원 제공

그날 저녁 조치훈 9단은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 근처의 식당에서 모처럼 만난 한국의 선후배 기사들과 즐거운 저녁 모임을 했습니다. 소주도 3병이나 마셨다고 합니다. 이날 행사에 이창호 9단은 나타나지 않았는데, 공항에서 대국장인 한국기원까지 오는 차 안에서 이창호 9단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고 합니다. 요즘 이창호 9단은 중요한 순간에 덜컥수를 두는 일이 있습니다. 그를 아끼는 조치훈 9단으로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낸 것은 당연하겠죠. "슬프다"라는 말을 들은 이창호 9단이 더 분발하면 좋겠네요.

좌우간 말보따리를 풀어놓은 조치훈 9단은 자신의 최근 일본 생활도 전했다고 합니다. 그가 사는 곳은 일본의 지바현인데, 바둑만 두면 될 줄 안 그가 최근에 경색된 한-일 관계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적을 바꾸지 않아 문패가 한국 이름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알아본 우익이 집에 돌을 던진 일도 있다고 합니다. 조치훈 9단의 부인은 일본 사람인데, 일본에서는 여성이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른다고 합니다. 한국인 이름의 명패가 곤경을 당한 것이지요.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일에 조치훈 9단도 놀랐다고 합니다.

조치훈 9단은 골프도 좋아하지만 취미가 극장가서 한국 영화를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한국어 공부도 되구요. 그런데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서 이제는 한국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을 찾기가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인터넷으로 다운로드받아서 보면 되는데, 그것은 잘 모르는 모양입니다.(하하~). 동네 편의점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막걸리나 소주도 이제는 찾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일상의 변화 속에서 느끼는 까칠해진 한-일 관계가 바둑밖에 모르는 조치훈 9단한테도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1980년 일본 명인에 오른 뒤 금의환향한 조치훈 부부 한국기원 제공

사실 바둑인들한테 국경은 정치인들의 국경과는 다릅니다.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바둑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80년대 이전에는 일본 바둑을 많이 배웠고, 조치훈 9단처럼 일본에서 대성한 사람들도 나왔습니다. 일본에서 활약하는 한국 기사들은 한-일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일본 바둑은 예법도 중요시하는데, 상대의 실력에 대해서는 정중한 예의를 갖춰 인정을 해줍니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장인에 대해서는 극한의 공경을 표시합니다. 그건 국적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은 세계 바둑의 중심이 한국으로 치우친 감이 있지만, 한국기원은 여전히 일본기원과 교류를 확대하고 싶어합니다. 바둑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문화, 예술, 스포츠, 교역 등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모든 교류는 양국의 이해를 돕습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차범근 선수가 한국과 독일 두 나라 사이의 이해를 넓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마 이런 민간 외교가 정부의 공식 외교보다 나라 간 친선이나 이해를 높이는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조치훈 9단도 한-일간의 이해를 넓힌 인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 조치훈 9단이 7일 평생의 반려자인 부인 교코(65) 여사를 잃었습니다. 지난달 귀국 때도 부인이 아프다고는 했기에 위중한 상황은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췌장암이 무섭긴 무서운가 봅니다. 교코 여사는 여섯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기원에서 활약하던 조치훈 9단의 외로움을 달래준 친구였습니다.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일본의 프로무대에서 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마음의 상처도 많았을 조치훈 9단한테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조치훈 9단은 부인의 사망 소식을 세상에 알리지 않고 지난 10일 가까운 친척끼리 가족장을 치렀다고 합니다. 장례를 모두 치른 다음 날인 11일에야 일본기원에 이 같은 사실을 통지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조치훈 9단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온몸이 망가져도 휠체어를 타고 대국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조치훈 9단이 개인적인 여러 어려움을 딛고 고유의 색깔로 일본 바둑계에서도 쭉 영향력 있는 기사로 남기를 바랍니다.

사족으로, 광복 70돌이라고는 하지만 한-일 관계는 막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과거는 망각하지 않아야 하지만, 미래를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조치훈 9단이 일본에서 겪는 혐한 바람에 불편해하듯,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 사람들도 요즘 주변의 시선 때문에 불편해한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의 인격이나 성격, 기질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어는 나라 출신이다'라는 내셔널리티의 백그라운드로 보는 것은 참 나쁜 일입니다. 사람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막기 때문이죠. 주변의 일본 사람들은 일본 정부도 아니고 우리의 이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더 잘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을 잡을 때, 그들이 일본에 돌아가 두 나라 관계의 발전을 위해 건전한 여론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일 민간 차원의 교류나 이해의 확대는 정부가 하는 일보다 100배나 두 나라 사이를 가깝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조치훈 9단을 보면서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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