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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 앞 무릎 꿇은 하토야마 전 총리

  • 원성윤
  • 입력 2015.08.13 05:54
  • 수정 2015.08.13 06:02

김현국… 오의선… 유관순….

숱한 독립운동가들이 스러져간 서울 서대문형무소. 이곳에서 숨진 순국선열 165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 앞에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2009~2010년)가 무릎을 꿇었다. 구두를 벗고 추모비 앞 제단에 국화를 올린 그는 무릎을 꿇은 채 10여초간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두 차례 절을 올리고서야 무릎을 뗐다. 그는 “진심으로 죄송하다.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잔혹했던 일제 식민지배를 사죄했다.

광복 70돌을 사흘 앞둔 12일 오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은 하토야마 전 총리의 표정은 내내 굳어 있었다. 2001년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가 현직 총리 신분으로 이곳을 찾았지만 공식적인 사죄·사과 표현은 없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광복 70주년을 앞둔 12일 오후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서울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내 8호 감방 앞에서 헌화하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 민주당 소속으로 ‘지한파’로 꼽힌다. 54년간 이어진 자민당 집권을 끝낸 그는 9개월 만에 총리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이후로도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경계하고 과거사를 반성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13일 열리는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했고, 조직위원회가 마련한 특별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부영 동북아평화연대 명예이사장, 이혜훈 유관순기념사업회 회장, 문석진 서대문구청장과 함께 형무소를 둘러봤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여자옥사 8호방’이다. 문 구청장은 “하토야마 전 총리 스스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꼽은 장소”라고 했다. 백합 30송이를 8호방 앞에 헌화한 하토야마 전 총리는 열사의 사진 앞에서 양손을 마주 잡은 채 한참 고개를 숙였다. 1919년 3·1운동으로 투옥된 유관순 열사는 10㎡ 남짓한 이 방에서 7명과 함께 수감됐다가 모진 고문 끝에 옥사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많은 분이 형무소에 들어온 이후에도 만세를 외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뜨거운 열의가 떠올라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고 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됐던 옥사를 둘러보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후 기자회견에서 ‘전 총리 자격’으로 과거사를 사과했다. 그는 “일본 전 총리로서,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서 이 자리를 찾았다. 고문으로 목숨까지 빼앗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 마음으로부터 사죄드리며 굉장히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다”고 했다. 14일 발표될 아베 신조 총리의 종전 70주년 담화에 대해서는 “일본이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가 담겨야 한다. 역사적 사실과 반성, 사죄의 내용이 아베 총리의 진심으로부터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방명록에 ‘만세운동에 힘을 다한 모든 혼령의 편안함을 바란다. 독립, 평화, 인권, 우애를 위해’라고 적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13일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함께 ‘동아시아평화선언’을 발표한 뒤 일본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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