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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들에게 과세하라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는 게 시민의 의무다. 누구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과세의 근간이 흔들린다. 과세의 기준으로 봤을 때 종교인들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득을 얻는 사업자에 해당한다. 냉정하게 말해 종교의례를 주관하고, 말씀을 설파하는 일이 회사에서 각종 사무를 처리하는 일이나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일이나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일과 달리 취급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 이태경
  • 입력 2015.08.12 19:23
  • 수정 2016.08.12 14:12
ⓒgettyimagesbank

대한민국은 정말 이상한 나라다. 멀쩡한 직장과 소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득세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버젓이 존재하니 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종교인들이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는다. 이건 '비정상'이며 박근혜 대통령이 천명한 대로 '비정상'은 '정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가 이제라도 종교인에게 과세를 하겠다고 나선 건 잘한 결정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살펴보면 후한 평가를 하기가 어렵다. 관련 기사는 아래와 같다.

정부는 6일 2015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종교소득'을 법률로 규정해 과세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종교인 과세 체계의 기반은 법률이 아니라 국회 동의가 필요없는 시행령이다.

정부가 종교인 소득에 과세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률이 통과하지 않자 정부는 2013년 11월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종교인 과세의 근거 규정을 마련했다. 이는 애초 올해 1월 1일부터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작년 말 시행이 1년 미뤄져 내년 1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종교인 과세 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한 소득세법 개정을 다시 추진하고, 소득이 많은 종교인에게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한 '차등 경비율'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대다수 종교계가 종교소득을 시행령보다는 법률로 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해 이를 반영했다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현행법상 종교인 과세 방식은 종교인의 소득에서 일괄적으로 필요경비를 80% 빼고 나서 소득의 나머지 20%에만 세금을 매긴다.

소득이 5천만원이라면 경비 4천만원(80%)을 뺀 1천만원(20%)에만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인의 소득이 천차만별인데 과세 체계가 일률적이라는 지적에 따라 소득이 높을수록 경비로 인정해 주는 부분을 줄이기로 했다.

소득이 4천만원 미만이라면 필요경비가 80%, 4천만∼8천만원이면 60%가 인정된다. 8천만원∼1억5천만원은 40%, 1억5천만원 초과는 20%다.

또 소득에서 의무적으로 원천징수하는 방식을 바꾸어 종교단체가 1년에 한 차례 소득을 자진신고해 세금을 내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정부가 과세 체계를 정비했다고 해도 관련 소득세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종교인 과세가 실제 이런 방식으로 이뤄질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종교인 과세는 1968년 국세청이 종교인에게 근로소득세를 부과하기로 했다가 무산되고서 47년 동안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세법개정> 종교인 과세 재시동...'종교소득' 법률로 규정 - 연합뉴스 2015. 8. 6

기사를 보면 금방 알겠지만, 박근혜 정부가 마련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표현처럼 문제가 많다. 공제율이 높아 근로소득자에 비해 실효세율이 현저히 낮다는 점, 탈세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원천징수방식이 아니라 사실상 검증이 어려운 신고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근로소득자에 비해 종교인들에게 이런 특혜를 주어야 하는 까닭이 무언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납세자연맹이 4인 가족을 기준으로 4대 보험료 외에 다른 공제가 없다고 가정하고 세제개편안에 따른 종교인과 일반 직장인의 세금을 비교해 본 결과 소득이 똑같이 4천만원일 때 근로소득자는 85만원의 근로소득세를 내야하지만 종교인은 한푼도 내지 않고, 연봉 8천만원으로 비교하면 일반 직장인은 717만원의 근로소득세를 내야 하는 반면 종교인은 고작 125만원의 종교소득세를 내야 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납세자연맹 "종교인 과세, 실효성·형평성 보강해야" - 연합뉴스 2015. 8. 6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는 게 시민의 의무다. 누구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과세의 근간이 흔들린다. 과세의 기준으로 봤을 때 종교인들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득을 얻는 사업자에 해당한다. 냉정하게 말해 종교의례를 주관하고, 말씀을 설파하는 일이 회사에서 각종 사무를 처리하는 일이나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일이나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일과 달리 취급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누더기 법안이나마 종교인들이 반발하지 않고 수용하면 다행이련만 그게 그리 녹록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개신교의 태도가 문제다. 천주교는 1994년부터 이미 소득세를 자진납부하고 있으며 불교계도 납세를 준비해왔다. 따라서 개신교 목사들만 소득세 납부에 동의하면 종교인 과세의 걸림돌이 없어지는 것이다.

과세에 반대하는 일부 개신교 목사들은 지금이라도 구차한 변명이나 어처구니없는 궤변을 늘어놔 시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지 말고 기꺼이 세금을 내기 바란다. 그 동안 소득세를 내지 않고 누리기만 한 편익이 얼마나 큰가? 과세에 반대하는 일부 개신교 목사들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부터 갖추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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