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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읽는 컴퓨터, 표정 잃은 사람들

표정 인식을 통한 감정 탐지 기술과 로봇의 감정 표현 기능이 결합하면, 감정은 인간 고유의 영역일 것이라는 기대도 허망한 것이 될 수 있다. 또한 공감과 소통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거나 할 줄 모르는 사람들도 늘어간다. 미모를 가꾸려는 성형수술로 섬세한 표정 연기력을 잃어버린 연기자들의 사례도 비슷하다.

  • 구본권
  • 입력 2015.08.11 12:19
  • 수정 2016.08.11 14:12

"그 사람, 로봇 같아."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정해진 대로 또는 이성에 따라 냉정하게 사람을 대하거나 매사를 처리하는 사람을 이렇게 말하곤 한다. 로봇과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동화 기술이 일자리 대부분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기계에 위협받지 않을 일자리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래서 미래에 유망한 일자리는 감정적 소통이 중요한 직무라고 예측된다. 감정적 소통과 공감은 로봇이 침범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컴퓨터의 표정 인식 알고리즘 기술과 감정읽는 로봇의 등장은 사람과 로봇의 영역 구분이 선명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표정 연구의 대가인 심리학자 폴 에크먼(Paul Ekman) 박사가 정립한 인간 표정 인식기술(FACS: Facial Action Coding System)을 활용해 이모션트, 어펙티바, 아이리스 등의 업체는 상품이나 광고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파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아이리스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심문과정에서 활용할 목적으로 미 연방수사기관에 판매되었다.

프랑스 알데바란사가 개발해 시판에 나선, 최초의 감정인식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

일본에서는 지난 6월 세계 최초 감정인식 인간형 로봇 페퍼가 시판되기 시작했다. 소프트뱅크가 2012년 인수한 프랑스 알데바란이 개발한 페퍼에 대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집어넣은 로봇"이라며 "앞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사람과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오사카대 연구진이 공개한 인간형 로봇 '에리카'는 23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상담과 안내 업무에 투입될 예정이다. 에리카는 눈, 입 주변, 목 등 19곳을 공기압으로 움직여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

표정 인식을 통한 감정 탐지 기술과 로봇의 감정 표현 기능이 결합하면, 감정은 인간 고유의 영역일 것이라는 기대도 허망한 것이 될 수 있다. 또한 공감과 소통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거나 할 줄 모르는 사람들도 늘어간다. 미모를 가꾸려는 성형수술로 섬세한 표정 연기력을 잃어버린 연기자들의 사례도 비슷하다.

국내 케이블방송으로도 방영된 미국 브라보TV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베벌리 힐스의 주부들(The Real housewives of Beverly Hills)>에 나오는 여자들은 빈번하게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두세 명의 주부들이 함께 식사를 하다가 오해가 생기는데, 이 오해는 문자와 페이스북을 통해 부풀려지다가 결국 한판 제대로 붙는 싸움으로 확대된다. 등장하는 주부들은 각자 개성이 강하지만 공통점은 성형수술로 팽팽해진 얼굴이다. 보톡스 주사로 이마와 눈가의 피부는 당겨져 주름이 사라졌고, 입술엔 콜라겐이 주입돼 웃음소리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미국의 리얼리티 방송프로그램 '베벌리힐스의 주부들'

미국의 미디어비평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현재의 충격>에서 이 리얼리티쇼의 주부들을 가리켜 "항상 누가 어떤 말을 하든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라리고 있는 표정밖에 지을 수 없다"며, 이들이 인간 표정을 읽어낼 수 없는 게 잦은 오해와 충돌의 배경이라고 지적한다. 메라비언의 법칙은 인간 의사소통에서 말의 내용은 7%만 담당하고 나머지 93%가 눈빛·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수단을 통해 이뤄진다고 알려준다. 성형수술로 얻은 팽팽한 얼굴로 인해 입가의 떨림, 눈가와 이마의 주름, 눈썹의 움직임 등으로 감정을 전하는 기능이 사라지면, 상대의 말에 제대로 반응해줄 수 없으며 소통과 공감의 실패로 이어지게 된다.

표정인식 기술과 감정표현 로봇이 결합해 사람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미래가 오더라도, 소통하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은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 될 것이다. 기계가 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새로이 얻으려 애쓰는 것에 앞서 내가 지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도,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한 생존법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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