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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부활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지난 정부부터 시작해, 지난 5년여 정부와 지자체는 막걸리를 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해왔습니다. 두 주체가 그간 쏟아 부은 예산 총액을 짐작할 수는 없지만 어마어마한 금액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의 예상과 다릅니다. 막걸리 내수 판매는 2012년을 정점으로, 매년 10~15%씩 감소하고 있습니다.

  • 이여영
  • 입력 2015.08.17 10:13
  • 수정 2016.08.17 14:12
ⓒ한겨레

막걸리 부활을 위해 판매점을 살려야

- 제조시설 확대 정책으로는 한계

지난 정부부터 시작해, 지난 5년여 정부와 지자체는 막걸리를 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해왔습니다. 두 주체가 그간 쏟아 부은 예산 총액을 짐작할 수는 없지만 어마어마한 금액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의 예상과 다릅니다.

막걸리 내수 판매는 2012년을 정점으로, 매년 10~15%씩 감소하고 있습니다. 수출은 최근 통계를 구해볼 수 있는 2013년을 기준으로 해도 40%나 줄었습니다. 막걸리 열풍의 진원지였던 일본 내에서는 아예 한국 막걸리가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유행이란 그런 것입니다. 막걸리 유행 역시 여느 유행처럼 금방 가라앉았습니다. 정부나 미디어, 유명인의 관심도 유행에 편승해 일시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한두 번의 이벤트에 주력하고 말았습니다. 이 와중에 막걸리는 '마시면 다음 날 뒷골 당기는 싼 술'이라는 이미지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와인이나 사케처럼 비싼 돈을 주고도 마셔볼 만한 술로는 자리를 확고히 잡지는 못했습니다.

최근 정부의 막걸리 정책은, 막걸리 산업 부진의 원인이 지나치게 영세한 제조업체 때문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조업체 대부분의 판매 및 마케팅 역량이 크게 뒤처진다는 것이죠. 그렇기는 합니다. 현재 막걸리를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6백여 업체 가운데 매출액이 1억원 미만인 곳이 70% 이상이니까요. 사실 저희도 경험했지만, 막걸리 제조업체가 지역 틈새시장에 내다 파는 것만으로 생존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지자체가 지역 막걸리 제조업체에 많은 돈과 연구인력을 지원했습니다만, 대부분 문을 닫거나 가동률이 크게 떨어진 상태입니다.

이 문제를 돌파하는 방법으로 정부는 대기업과 중견 기업의 막걸리 시장 재진입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올 초 동반성장위에서 중기적합업종에 대해 재합의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막걸리 제조업에 진입해 대대적 투자를 감행한다고 해도, 제2의 막걸리 붐이 형성될지는 의문입니다. 실제로 전통주 시장의 한 거대기업은 엄청난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막걸리 매출이 매년 제자리거나 퇴행하고 있습니다.

막걸리 시장이 다시 살아나려면, 젊은 소비자를 다시 사로잡아야 합니다. 정책의 초점이 거기에 맞춰져 있지 않은 한 정책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면 그간 정부의 막걸리 제조 중시 정책에서 판매 중시 정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막걸리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많이 만들어도, 결국 제대로 팔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그간 정부와 지자체의 막걸리 육성 정책은 제조업체에 대한 지원에 그쳤습니다. 적지 않은 지역 양조장들이 적게는 몇천만 원에서, 많게는 몇억 원까지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새 양조장 터를 구하고 첨단시설들을 갖췄습니다. 올해 들어 매물로 나왔다는 막걸리 공장들을 견학해보면 감탄과 한숨이 동시에 터져 나옵니다. 그렇게 큰돈을 들여 멋진 공장을 지어놓고도, 막걸리를 제대로 팔지 못해 망했다는 생각에서요.

저희는 진작부터 막걸리 정책의 초점이 판매 쪽에 맞춰져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몇 가지 제안했습니다. 공식석상에도 발언했고, 관련 관료들과의 비공식 모임에서도 설득했습니다. 어느 자리에서 제출했던 자료의 일부입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그간 지역 막걸리 공장 설립에 투자한 예산의 일부만 판매와 마케팅에 지원했더라면, 막걸리 붐이 이렇게 허망하게 파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현재 전국의 젊은 소비자들이 막걸리를 사 마실 방법은 대형마트에서 몇몇 대기업 제품을 고르는 것 외에는 없다시피 합니다. 막걸리 붐에 편승해 우후죽순 생겨났던 막걸리 바 등 젊은 판매점들은 폐점하거나 일본식 선술집(이자카야)으로 간판을 바꿔달았습니다....잘 만든 막걸리를 제대로 팔아줄 판매 채널을 대규모로 늘려야 합니다. 그래야 막걸리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막걸리 산업이 제 2의 붐을 맞을 수 있습니다. 젊은 판매점들은 영세 제조업체들이 할 수 없는 판매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마케팅(유통, 패키징, 프로모션 등)을 할 수 있습니다. 막걸리에 스토리를 입혀 와인이나 사케처럼 이미지를 업그레이드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막걸리 업계 일각으로부터는 공적(公敵)으로 몰리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은 어떤 명분으로든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축소되는 것은 결사반대합니다. 이래가지고서야 제가 5년 이상 청춘을 바쳤던 막걸리 시장의 미래가 있는지 암담할 따름입니다.

최근 고위 관료 몇과 함께 제법 이름난 양조장 한 곳을 방문한 후 신사동의 막걸리 판매점을 찾았습니다. 5억 이상의 정부지원금을 받은 양조장이 1년 매출이 1억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 막걸리 육성 정책에 대한 제언을 부탁하더군요. 이제 같은 얘기를 하는 것도 신물이 날 지경이 됐습니다. 그저 건성으로 몇 마디 했습니다. 그분들은 제 얘기보다 그 점포에서 젊은 여성 여럿이 즐겁게 막걸리를 마시는 광경에 더 압도됐습니다. 한 분이 나지막이 얘기하시더군요. 그 얘기가 그간의 침울했던 기분을 한 번에 씻어주었습니다. "양조장에서 (막걸리 산업의) 절망을 봤다면, 이곳에서는 희망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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