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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사태와 재벌의 승계 딜레마

롯데 사태는 승계 딜레마의 가장 전형적인 예다. 가능한 후계 구도 확정을 늦추려던 창업주의 정신이 온전치 못해지자, 두 형제는 모두 아버지의 뜻을 빌려 후계자를 자처했다. 롯데 사태 전개과정에서 더욱 나쁜 소식은, 형제간 분쟁에서 벌어진 분열 구도다. 헨리 포드 말년 분쟁 구도가 아버지 대 장남이었다면 롯데에서는 가족 대 가신이다. 가족 대부분은 장남 불균형 승계 구도를 원하는 반면 전문경영인 출신의 가신들은 차남 독식을 희망한다.

  • 김방희
  • 입력 2015.08.11 06:29
  • 수정 2016.08.11 14:12
ⓒgettyimagesbank

포드자동차 창업주 헨리 포드는 말년에 승계와 관련해 큰 고민에 휩싸였다. 그에게는 두 그룹이 있었다. 하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입사해 온갖 궂은일을 담당했던 외아들 에드셀 포드다. 그는 25세가 되던 1927년 이미 회사 사장직에 올랐다. 하지만 창업주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다. 포드사를 미국 최고의 자동차 회사로 만든 모델 T의 미래를 두고 둘이 벌인 분쟁의 후유증도 컸다. 아버지는 싼 값에 자동차를 대중에게 보급시킨 자동차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싶어 했다. 반면 아들은 GM처럼 다채로운 색을 가진 다양한 차를 만들고 싶어 했다. 둘은 경영 철학 자체가 크게 달랐다.  

창업주 주변에는 가신(家臣) 그룹도 있었다. 그 중심에 해군 권투선수 출신 베넷이 있었다. 그는 포드사에 경비원으로 취직해, 헨리 포드의 개인 해결사 노릇을 하면서 최측근 인사로 성장했다. 그는 인사권을 비롯해 경영 전권을 휘두르다시피 했다.  

외형적으로만 보자면, 헨리 포드는 1930년대에 이르러 아들에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영향력마저 내줄 생각은 없었다. 최종 결정은 가신그룹의 보고를 듣고 자신이 직접 내렸다. 일종의 섭정(攝政)이었다. 헨리 포드가 건강 때문에 두문불출 하자 베넷을 비롯한 가신들은 창업주를 만나지도 않은 채 그의 뜻이라며 전횡을 부렸다. 포드사는 점차 외양과 실질이 완전히 다른 회사가 돼 갔다. 회사 내 대부분의 보고는 가신 그룹이 독점했고 아들은 자신의 뜻을 전혀 펼칠 수 없었다.  

1943년 아들인 에드셀이 암으로 사망했다.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창업주인 아버지는 CEO로 재취임 했다. 하지만 여론이 워낙 나빴다. 창업주의 전력 가운데서도 나치를 후원한 일과 노동조합을 탄압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2년 후 다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렵 그는 자신의 장손인 헨리 포드 2세(애칭 해리)에게 회사를 물려줬다. 하지만 그조차도 독선적인 할아버지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창업주 헨리 포드가 영향력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승계 구도를 불확실하게 만들었던 그 시절 포드사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 경제를 대표하는 포드사의 몰락에 대비해 국유화 계획까지 짜야 했다. 한때 미국 자동차시장의 70%까지 장악했던 시장점유율은 1929년 경쟁업체 GM에 완전히 밀렸다. 그 후 50여년 간 대등한 경쟁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기업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끝까지 실권을 놓지 않으려 한 창업주 헨리 포드의 아집과 독선이 초래한 결과였다.  

승계는 미룰수록 좋다?  

우리 재벌들도 헨리 포드 말년의 포드사와 흡사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재벌 총수나 창업주는 자녀 승계를 가능한 늦추려 한다. 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자리를 아직 못 미더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없어서다. 때로는 경영 철학이나 경영관리 상 이해 때문에 자녀들과 충돌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무작정 그룹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하지만 후계 구도가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그들이 갑작스럽게 와병(臥病)하거나 총기가 흐려진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아버지의 판단이 무시되거나 형제간 분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다. 15년 전 현대나 최근의 삼성, 롯데 일가 문제 모두 비슷한 경우다. 외환위기 와중에 많은 재벌 그룹들 역시 외부 위기에 승계 문제가 겹친 내우외환 끝에 스러져 갔다.    

이 점을 우려해 일찌감치 후계 구도를 확정지으면 다른 부작용이 생긴다. 그룹 내 주요 세력이 일제히 후계자를 향해 줄을 서려 든다. 과거나 현재보다는 미래를 위해 뛰는 것은 사내정치(office politics)의 본질이자 조직의 본능이다. 그 순간 오너나 창업주의 레임덕은 불가피하다. 거대 기업집단을 일군 이들에게 이는 견디기 힘든 치욕이다. 이것이 한 가문이 완벽하게 대기업 집단을 지배하는 우리 재벌이 처한 '승계의 딜레마'다.  

롯데 사태는 승계 딜레마의 가장 전형적인 예다. 가능한 후계 구도 확정을 늦추려던 창업주의 정신이 온전치 못해지자, 두 형제는 모두 아버지의 뜻을 빌려 후계자를 자처했다. 롯데 사태 전개과정에서 더욱 나쁜 소식은, 형제간 분쟁에서 벌어진 분열 구도다. 헨리 포드 말년 분쟁 구도가 아버지 대 장남이었다면 롯데에서는 가족 대 가신이다. 가족 대부분은 장남 불균형 승계 구도를 원하는 반면 전문경영인 출신의 가신들은 차남 독식을 희망한다. 이제 남은 것은 주주총회나 법적 소송에서 승자가 어느 그룹이 되느냐 뿐이다. 공멸의 위기감이 극적으로 고조되지 않는 한 중재와 타협의 여지도 없다. 이 분쟁 과정에서 차남이 창업주인 아버지를 내치는 모양새가 된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 형의 뜻에 반하고 조카를 쫓아냈던 조선 최초의 반정(反正) 군주 세조를 연상시킬 정도다.  

우리 재벌그룹의 지배구조가 독살설이 끊이지 않았던 조선시대 승계사와 다를 바 없이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도 나쁜 소식이다. 그룹 후계 구도를 놓고 형제가 목숨을 건 일전을 벌인 것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도대체 롯데는 누가 지배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더욱 증폭됐다. 더 나아가 한국 기업인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제기됐다.  

롯데 사태를 통해 좋은 소식을 아예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재벌의 승계 작업이 비록 더디지만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우리 기업들은 장자 불균형 승계라는 관행을 이어왔다. 장자가 독식에 가까운 승계를 하고 나머지를 다른 자녀들이 나눠가지는 방식이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이 관행이 무너지고 있다. 장자가 아니라도 불균형 승계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재벌그룹의 존속과 발전이라는 대명제를 위해 오너나 총수가 유교적 전통을 깨뜨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문경영인과 딸은 후계 구도에서 배제돼 있다. 재벌의 승계 딜레마라는 관점에서 이는 스스로 선택의 범위를 좁히는 실착이다. 여전히 재벌그룹은 자신의 것이고 일족(一族)의 것으로 대물림 돼야 한다는 전근대적 사고의 유산이기도 하다.  

창업주인 할아버지 사망 후 포드사의 최고경영자로 돌아온 해리는 1980년까지 포드를 GM에 뒤지지 않는 회사로 완전히 부활시켰다. 그리고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문경영인인 칼드웰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었다. 가족 중 누구도 대기업을 이끌어 갈 리더십이 없고, 할아버지가 일군 이 회사가 더 이상 가족의 것일 수만은 없다는 점을 확인한 후였다.  

우리 재벌의 승계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오너나 총수가 자녀뿐만 아니라 전문경영인까지를 포함한 후계자군(群)을 일찌감치 선정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력이 흐트러지기 전에 후계자를 확정해야 한다. 애플사가 좋은 예다. 1997년 애플사로 복귀한 잡스는 2005년경까지 세 명 정도로 압축되는 후계자군을 선정했다. 그의 수족 같았던 버트란드 셀렛, 그가 총애했던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 그리고 복귀 직후 컴팩에서 스카우트 했던 팀 쿡이었다. 2009년 췌장암 발병 소식이 알려지고 그가 병가를 내면서 그는 셋의 경쟁력을 재평가했다. 회사 안팎의 도전과 평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그의 최종 선택은 팀쿡이었다. 창업주 사망 후 혁신기업의 안정화라는 새로운 도전과 경영관리의 달인이라던 그의 평판을 감안한 선택이었다. 2011년 스티브 잡스는 사망했다. 애플사는 여전히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최대·최고 기업으로 남아있다.

* 이 글은 데일리한국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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