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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이희호 방북 당일 북에 별도 '전통문' 보냈다

ⓒ한겨레

정부가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방북한 지난 5일 북한에 전통문을 보냈다가 접수를 거부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이사장 방북 과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9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 이사장이 5일 평양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서 정부가 북쪽에 전통문을 보내겠다고 제안을 한 것으로 들었다. 북에서 분개해서 받지 않겠다고 답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북에서 이런 남쪽 당국의 처사는 자신들이 초청한 이 이사장에 대한 모욕이고 이는 곧 최고 존엄에 대한 무례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정부가 굉장히 서툴렀다”고 말했다. 동교동계 핵심 인사도 “정부가 전통문을 보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통문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산가족 상봉 회담 등 대북 대화 제의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광복절 전에 북쪽에 대화 제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앞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한국방송>(KBS) ‘일요진단’에 나와 “이번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나서 회포를 푸시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정부가 대화 제의가 아닌 통상적 차원의 전통문을 보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전통문 발송 사실을 부인하지 않은 채, “지금은 전통문을 보냈는지 여부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없으니 기다려달라”고만 했다.

정부가 이 이사장 방북 당일에 이 이사장을 메신저로 활용하지 않은 채 별도 대북 제안에 나선 것이라면, 이는 과거 정부를 상징하는 이 이사장에게 남북관계 개선의 공과 스포트라이트를 돌리지 않으려는 불필요한 경쟁심에서 비롯된 무리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북의 반발을 불러 남북관계 개선의 주요한 계기 하나를 날려버렸다는 비판도 가능한 대목이다.

이 이사장이 지난 8일 서울로 돌아와 한 발언이, 정부의 별도 전통문 발송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이사장은 이날 귀환 회견에서 “저는 이번 방북에서 어떠한 공식 업무도 부여받지 않았지만, 6·15 정신을 키우는 데 일조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정을 소화했다”고 말했다. 방북단의 한 인사는 “정부가 메시지 전달 등 임무를 부여했으면 수행할 생각이 있었다는 ‘뼈 있는 말’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무리수가 이 이사장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만남이 불발된 원인의 하나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통문 외에도 정부는 이 이사장 방북을 개인 차원으로 한정하는 등 이번 방북을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활용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과 박지원 의원 등 국민의 정부에서 남북관계를 이끈 경험이 있는 인사들도 방문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대거 배제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정부는 임 전 장관과 같은 전직 장관도 정치인으로 보고 있으며, 이번 방북은 인도적 지원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정치인이 방북단에 포함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 정부가 북쪽이 당국 간 대화에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쪽 주도로 남북대화가 이뤄지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이번 면담 불발엔 김 제1비서 또한 공동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 제1비서가 미국 농구선수인 데니스 로드먼은 환대하면서도 93살 고령의 이 이사장을 초청하고도 만나지 않은 것은 그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와 외교 능력을 의심하게 한다”고 말했다.

남북이 이 이사장의 방북을 관계 회복의 전기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올해 남북관계 개선은 더욱 어렵게 됐다. 8·15 남북 공동행사 개최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8월17일부터 2주간 한-미 연합 을지 프리덤가디언 훈련이 시작되는 등 남북간 갈등이 빚어질 공산이 커졌다”며 “유일한 전기는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 70주년 기념사에서 의미있는 대북 메시지를 발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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