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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사태 1주기] "제발 우리를 그만 죽여라" (화보, 동영상)

  • 허완
  • 입력 2015.08.10 05:58
  • 수정 2015.08.10 05:59

백인 경관의 총에 맞아 숨진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의 부친인 마이클 브라운 시니어가 9일 열린 1주기 추도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AP

9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시 외곽에 있는 소도시 퍼거슨 시에 다시 인형과 꽃다발 더미가 등장했다.

바로 1년 전,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관 대런 윌슨의 무차별 총격에 목숨을 잃은 그 자리에 인형과 꽃다발이 놓였다.

브라운이 피를 흘리고 절명한 도로 한복판에는 새로운 아스팔트가 깔렸다.

퍼거슨 시가 따로 조성될 브라운의 추모 기념관에 옮기겠다며 브라운의 사망 장소에 쌓인 곰 인형과 꽃 등을 지난해 말 모두 수거한 바람에 한동안 휑한 상태였지만, 이날 전국에서 모인 시위대가 다시 그 자리를 성조기와 다양한 인형으로 채웠다.

미국 '흑백 차별의 진앙'인 이곳에서 브라운의 사망을 추모하고 퍼거슨 사태 1주기를 기리는 추도식이 열렸다.

전국에서 집결한 시위인원 약 1천 명은 브라운이 사망한 오전 11시 55분에 맞춰 4분 30초 동안 침묵하는 것으로 추도식을 시작했다. 흑인은 물론 백인과 아이를 유모차에 실은 엄마 부대도 추모식에 대거 참석했다고 미국 언론은 덧붙였다.

땡볕이 내리쬐던 당시, 브라운의 시신이 4시간 30분 동안이나 거리에 방치된 것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그의 아버지인 브라운 시니어가 시위대에 요청한 것이다.

같은 시간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서도 시위대 100명이 도로를 점거하고 4분 30초간 브라운처럼 거리에 눕는 시위를 벌였다. 뉴욕 시위대는 무대를 맨해튼 중심가로 옮겨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소개했다.

시위대는 브라운뿐만 아니라 경찰의 잘못된 공권력에 희생된 모든 이들을 기리며 추모 예배가 열린 그레이터 세인트 마크 교회까지 침묵 행진했다.

그러나 갑자기 도로 인근에서 울린 총성 탓에 평화 행진은 잠시 긴장된 순간을 맞기도 했다.

퍼거슨 경찰은 "움직이던 차에서 몇 발을 발포한 것으로 보인다"며 "1명이 총에 맞아 다쳤다"고 전했다.

경찰은 발포자의 신원과 시위 연관성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퍼거슨 사태 1주기를 맞아 시위대는 지난 7일부터 퍼거슨에 다시 모였다.

이들은 '제발 우리를 그만 죽여라', '손들었으니 쏘지 마'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퍼거슨을 뜨겁게 달군 1년 전 상황을 재연했다.

브라운 시니어는 '변화를 위한 선택'이라는 글이 박힌 티셔츠를 입고 대열의 맨 앞에서 행진을 이끌었다.

일부 시위대는 8일 밤 퍼거슨 경찰서 앞에 모여 브라운을 죽인 윌슨의 이름이 적힌 구운 돼지고기를 먹고 경찰을 조롱하기도 했다.

What's changed in Ferguson since Michael Brown - CNN

Ferguson, one year later - Al Jazeera English

퍼거슨을 필두로 뉴욕,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도 비무장 흑인이 백인 경관에 살해당하는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미국 전역에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그러나 브라운 사망 1주기를 이틀 앞둔 7일, 텍사스 주 알링턴에서 자동차 판매점에 무단으로 침입한 비무장 흑인 청년 크리스천 테일러(19)가 백인 수습 경관의 총에 맞아 숨진 것에서 보듯 지난 1년 사이에도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노스 찰스턴 등에서 비무장 흑인이 백인 경관의 총격에 목숨을 빼앗기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시위대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경찰의 잘못된 공권력 사용에 항의하고 인종 차별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브라운 시니어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퍼거슨 사태 이후 경찰의 총격에 대한 시각이 많이 바뀌고, 경찰의 일방적인 발포 주장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늘 때마다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시위대는 10일에도 그림 전시회, 랩 공연 등 문화제 성격의 행사를 통해 퍼거슨 사태 1주기를 조명하고 경찰과 사법시스템 개혁을 촉구할 예정이다.

퍼거슨 경찰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경찰, 미주리 주 고속도로 순찰대 소속 경찰은 퍼거슨 시내 주요 상점 등에 포진해 방화·약탈 등 극단적인 폭력 시위를 대비했다.

백인 주민인 제리 제스퍼(64)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1년 내내 충돌한 경찰과 시위대를 비난하며 "모두가 퍼거슨을 두려워한다"면서 "모든 게 바뀌어 빨리 평화가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퍼거슨 시는 브라운의 사망, 시위대의 폭력에 따른 경찰의 강압 진압, 윌슨 경관에 대한 대배심의 불기소 결정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지난 연말 폭발 직전에 다다랐다.

그러다가 미국 법무부가 올해 3월 진상 보사 보고서를 통해 퍼거슨 시 정부, 법원, 경찰이 흑인만을 집중적으로 겨냥해 세금을 징수하는 등 불합리한 차별을 일삼아 왔다고 고발하면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다.

퍼거슨 시는 법원의 판사, 경찰서장, 시티매니저(시 행정관) 등 백인이 차지하던 시의 요직을 모두 흑인으로 교체하고 흑백 차별의 뿌리부터 잘라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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