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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 성 대결이 아니라 가부장주의 타파로 해결해야 한다

8월 4일 방영된 MBC 'PD수첩'은 '메르스 갤러리'를 포함, 남성연대, 김치녀 페이지 운영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여성혐오는 무엇인지, 그리고 남성들과 여성들은 각각 어떻게 느꼈는지 등을 방영하였다. 시작은 여성혐오였으나, 보도 방향은 여성혐오를 '왜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 방송은 여성혐오라는 사회문제에 대해서, '가해자들도 피해를 받고 있으므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양보해야 한다'는 매우 모호한 양비론으로 결론을 냈다.

  • 진달래
  • 입력 2015.08.08 05:21
  • 수정 2016.08.08 14:12

여성들이 봉기하고 있다. 지난 5월 말부터 '디시인사이드'라는 사이트의 '메르스 갤러리'라는 게시판을 통해서다. 이 게시판에서 여성들은 그동안 일상적인 관계와 미디어 속에서 느낀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적인 시선, 실제로 겪었던 성폭력 및 성희롱을 폭로하였다. 이 운동이 특이한 점은, 여성혐오에 대한 단지 이성적인 비판을 넘어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이행하거나 방조한 가부장적 남성 집단에 대한 감정이 섞인 모욕과 조롱을 수반하였다는 점이다.

'메르스 갤러리'가 보여준 폭발적인 조롱과 모욕의 언어들을 보고 혹자는 "여자 일베"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여성혐오성 조롱처럼 '약자를 향한 강자의 조롱'이 아닌 '강자를 향한 약자의 풍자'의 양상을 띠고 있다. 많은 이용자들이 사용함에도 결코 뭉치지 않는 일베와는 다르게, 이들은 SNS를 통한 홍보전을 효과적으로 펼치며 풍자와 해학을 통한 성토, 그리고 몰카 없애기 및 맨스플레인 하지 않기 운동 등, 21세기에 맞는 여성 인권운동을 펼치고 있다. 아마도 이 '메르스 갤러리'에서 일어난 일들은, 지난 2007년 정권교체 및 금융위기 이후 날로 심해지는 양극화 및 사회적 보수화에 맞선 가장 충격적인 여성운동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8월 4일 방영된 MBC 'PD수첩'은 '메르스 갤러리'를 포함, 남성연대, 김치녀 페이지 운영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여성혐오는 무엇인지, 그리고 남성들과 여성들은 각각 어떻게 느꼈는지 등을 방영하였다. PD수첩은 가부장주의를 체화한 남성들이 여러모로 여성보다 더 우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가부장적 환상을 실현할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겪는 갈등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려 노력했다.

시작은 여성혐오였으나, 보도 방향은 여성혐오를 '왜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 방송은 여성혐오라는 사회문제에 대해서, '가해자들도 피해를 받고 있으므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양보해야 한다'는 매우 모호한 양비론으로 결론을 냈다. 일견 맞는 말이다. 많은 현대 한국의 남성들이 군대 문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은 사회적으로 공론화시켜 남녀 할 것 없이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내가 겪는 어려움을 넌 겪지 않는다니 억울하다"면서 여성 일반에게 전가시켜야 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터뷰로 출연한 중앙대 이나영 교수가 "혐오는 국가나 자본 등 강자가 아니라 성소수자, 여성 등의 약자에게 전가된다"고 지적한 부분과 맞닿아 있다. 사회경제적 변화와 성 역할의 변화 속에서 겪는 갈등을 타자에게 전가할 뿐이라는 것이다.

방송에서 평범한 남성들은 '내 여자가 아니면 돈을 쓰는 것이 아깝지만, 내 여자는 먹여살리고 싶다'고 갈등한다. 여자는 자기 먹을 것을 어떻게든 찾아 먹을 수 있는 인간이지, 먹여 살려야 하는 아기도, 남자의 등골을 빨아먹는 괴물도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할 때, 그는 거의 언제나 반대급부로 다른 형태의 노동을 받아내고 있게 마련이다. 등가교환을 하고 있으면서도 물질적인 것을 더 높게 치는 전형적인 착각이다. 이득과 손해로 계산되는 세속화된 이성 관계 속에서 정복자로서의 남성성, 성욕을 채워주고 아이를 낳아주는 성적 객체로서의 여성성 도식 속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야 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남성들이 가부장제 속에서 겪는 딜레마를 마치 여성에 전가되는 폭력과 동등한 위계로 대응시킨 부분이다. 가부장주의가 자신을 괴롭힌다면 개인적, 사회적 거부로 신념체계에서 빼낼 수 있다. 하지만 여성혐오는 약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향한 비겁한 폭력이며, 그 행위에 이유가 있다면 반드시 혐오가 아닌 다른 해결책이 존재한다.

여성을 혐오하는 일은 남성들의 인권을 상승시키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의 양성평등에 대한 논의를 만들어낸 것은 남성들이 아니라 여성혐오를 성토하고 반격하기 시작한 여성들이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여성혐오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면, 정당화가 아니라 사과와 화해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서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나서 발전적인 논의를 할 수 있길 기대한다.

* 이 글은 필자가 소속된 언론 <인천in>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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