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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애국심의 무대가 된 '제2수에즈운하' 개통식

ⓒAP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180㎞ 떨어진 운하 도시 이스마일리아.

6일 오후 3시께 이 운하도시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사막에서 제2수에즈운하의 역사적 개통식이 진행됐다.

수에즈운하의 시작점과 맞닿은 임시 캠프 위로 이집트 공군 헬기와 소형 비행기, 전투기 편대가 5~6차례 72km 길이의 새 운하 위를 비행하며 굉음을 뿜었다.

헬기들은 빨간색과 검은색, 흰색의 이집트 국기를 내걸었고 전투기들은 이집트를 상징하는 3색 연기로 하늘을 수놓았다.

이집트 국가에 이어 새 운하의 공사 장면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다큐멘터리 방영 중간마다 민족주의적 성향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개통 행사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어린이 합창단 200여명이 단상에 나와 이집트의 미래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이어 이집트 아이돌 남녀가수 3명이 가세해 이집트 국기를 흔들며 노래했다.

공연이 끝나고 검은색 정장 차림의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이 각국 외교사절단이 모여앉은 중앙 무대에 서서 개회사를 했다.

엘시시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갈 무렵 그의 뒤편에서는 컨테이너가 가득 실린 대형 화물선이 새 운하에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이 화물선이 잇따라 고동을 울리자 갑자기 사방에서 '와'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엘시시 대통령 연설 시점에 맞춰 화물선이 새 운하에 들어서도록 연출한 것이다.

세계 각국의 취재진 200여명이 모인 임시 건물 형태의 미디어센터에는 갑자기 '타흐이야 마스르'(이집트 만세)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타흐이야 마스르'는 엘시시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때부터 지금까지 자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내건 표어이다.

이집트 수에즈운하청 직원은 물론 이집트인 기자들, 자원봉사자들은 휘파람을 불고 기립 손뼉을 쳤다. 일부는 "우리는 이집트인이다. 우리는 이집트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환호했다.

바로 그때 프랑스제 라팔 최신형 전투기 3대가 수에즈 운하 위를 빠른 속도로 지나갔고 또 다른 전투기 9대가 편대 비행을 하며 3색 연기를 또다시 뿜었다.

애국심의 물결이 제2의 수에즈운하 주변을 다시 한번 뒤흔든 순간이었다.

미디어센터에서 만난 '타히야 이집트방송 알나하르 TV네트워크의 아자 오스만(42) 컨설턴트는 "이집트 국민들은 1년만에 새 운하 개통이라는 큰 업적에 매우 기뻐하고 있다"며 "우리는 새 운하에서 수십만개의 직업을 창출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 취재진의 안내와 통역을 돕는 자원봉사자 말리스(21.여)는 "오늘처럼 역사적인 행사에 이집트를 위해 자원봉사를 할 수 있게 돼 영광"이라며 "이집트가 앞으로 더 번성하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애국 현장의 분위기는 다른 곳에서도 쉽게 목격됐다.

이스마일리아 행사장 주변 곳곳에 배치된 군용 트럭과 장갑차, 소형 군용 차량에는 다양한 크기의 이집트 국기들이 내걸렸다.

수도 카이로는 물론 이스마일리아 시내에는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의 대형 사진이나 포스터가 곳곳이 걸려 있었다. 이집트의 사회민족주의 지도자로 유명한 가말 압델 나세르 전 대통령의 사진도 눈에 띄었다.

나세르 전 대통령과 엘시시 현 대통령을 오버랩하며 이 사업을 엘시시의 큰 업적으로 홍보하는 느낌을 자아냈다. 나세르 전 대통령은 1956년 영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하는 데 성공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지도자이다.

이번 행사를 지켜본 중화권의 한 국제부 기자는 "오늘 개통식은 경제적 관점의 국제 행사가 아닌 엘시시 대통령의 애국심을 보여주고 민족주의를 고취하기 위한 일종의 쇼가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수에즈운하가 현재 치안이 불안한 시나이반도와 맞닿아 있는 까닭에 행사장 주변 경비는 매우 삼엄했다.

카이로에서 차량으로 3시간 넘게 걸려 행사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군인의 검문과 함께 2차례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취재진 탑승자들에 대한 신원 확인도 수차례 진행됐다. 취재 허가증을 보여줘야지만 행사장 이동이 가능했고 각국 정상급 지도자들이 모인 장소는 접근이 아예 차단됐다.

현장에서 경비를 선 한 군복 차림의 간부는 "세계에서 다수의 지도자가 참가한 데다 혹시 모를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보안 검색이 평소보다 엄격해 졌다"고 설명했다.

이집트 당국은 이날 수에즈운하와 맞닿은 이스마일리아와 수에즈, 포트사이드 일대에 군인과 경찰력 등 25만명을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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