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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안엔 없다, 웹툰 속엔 있다. 제대로 된 '잉여' 김풍

  • 남현지
  • 입력 2015.08.06 11:26
  • 수정 2015.08.06 11:27
ⓒ한겨레 박미향

[매거진 esc] 이우성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영화화 앞둔 웹툰 <찌질의 역사>의 김풍 요리사 아니 만화가…"아주 작은 힘으로도 시동이 걸릴 때가 있나봐"

김풍과 커피를 마셨다. 아니, 나는 치아시드가 들어간 요거트를 먹었고, 김풍은 골든키위 주스를 마셨다. 김풍이 계산했다. 그 전에 묵은지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그것도 김풍이 계산했다. ‘형, 돈 많이 벌었구나’라고 말하려다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 했다. 벌었겠지, 그럼 안 벌었겠어. 티브이에도 나오고, 광고도 찍었는데. 김풍이 커피 말고 골든키위 주스를 시켜서 기분이 좋았다. 아는 형이니까. 친한 형이라고 적고 싶지만 스타가 돼 버려서 그렇게 적는 게 싫다. 아는 형이 몇 달 새 바빠졌다. 살도 더 쪘고. 저 형은 당연히 부인이 없고, 현재는 애인도 없다. 혼자 산다. 건강해라, 통화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나는 말한다.

‘좋아서 하는 인터뷰’를 꾸준히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두 달 전에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박준우 셰프를 인터뷰했다. 그때 ‘김풍은 너무 바빠서 인터뷰하기 힘들다’고 적었다. 김풍이 그 기사를 읽고 메시지를 보냈다. ‘날 잡자.’ 그렇게 오랜만에 김풍을 만났다. 바빠도 너무 바쁜 풍이 형을.

김풍을 만났으니까 요리라든가,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면서 일어난 일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뻔하지만. 그런데 김풍은 웹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찌질의 역사> 시즌2 봤지? 나는 이 만화가 정말 좋아. 누구나 찌질했던 자신의 역사가 있잖아. 그걸 고백하고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저 쿨한 척, 나는 절대 그런 적이 없는 척 구는 사람도 있지.” 나는 이 웹툰을 보면서 내 찌질의 역사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도 그것이 나만의 역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받은 건가?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난 후자야. 쿨한 척, 나는 안 그런 척하는 사람이야.” 그래, 그러니까 형도 웹툰을 그렸겠지. 다행스런 일이잖아. 형이 고백하고 극복하는 사람이라면, 이 웹툰을 안 그렸을 거야. 사람들은 이 웹툰을 보지 못했겠지. 형, 우리 모두 다행이다. 이 글 읽고 있지?

나는 웹툰 작가 김풍을 좋아한다. 나는 그가 몇 년 동안 웹툰을 그리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웹툰 작가들끼리 모여서 술을 마시면 속이 확확 탔어. 나는 연재도 못하고 있는데, 다른 작가들이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 기분이 어땠겠냐? 나만 너무 초라하잖아. 그렇다고 내가 집에 돌아와서 열심히 작품을 그린 것도 아니야. 엄청난 웹툰을 그려서 내 가치를 증명하겠다는 포부도 없어. 그냥 부러워하고, 누워서 에스엔에스나 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간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는 김풍이 부러웠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은 한창 무엇인가 해야 하는 나이다. 대부분 그때 무엇이라도 한다. 아무것도 안 하면 실패한 것처럼 보이거든. 그리고 살아갈 수가 없거든.

웹툰 작가 김풍. 사진 박미향 기자

그러나 이 시기를 열심히 일만 하면서 지나온 나로서는, 갈수록 내 안이 점점 텅 빈다는 느낌이 든다. 고갈되는 것이다. 그때 김풍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 하고 있었을 것이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그는 요리를 한다기보다 ‘요리 쇼’를 한다.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김풍은 허술한 사람이 아니다. 김풍은 더 창피한 것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 과장도 아니고,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그는 다만 아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것이 아무것도 안 한 자의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김풍은 ‘찌질함’의 바닥을 보고 온 사람이다. 김풍은 그 바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거기 누워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어. 멍하니. 게을러서 그렇지, 뭐. 움직여 보려고, 일어나 보려고 아주 작은 시도들을 했을 거야. 하지만 시동이 걸릴 정도는 아니었지. 시동이 걸리려면 순간적으로 큰 힘이 필요하잖아. 그런데 아주 작은 힘으로도 어느 순간 시동이 걸릴 때가 있나봐.” 나는 이 말을 오래 생각했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 이 말을 떠올렸다. 무엇이었을까, 김풍을 일어서게 한 것은. 그리고 나는 혼자 결론 내렸다. 비로소 자기 안의 것들이 온전히 채워진 거라고. 아침이 와서 잠에서 깨는 게 아니라, 충분히 잠을 잤기 때문에 눈이 떠진 것이다. 지금 김풍은 충전돼 있다.

김풍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찌질의 역사>는 독자에게 ‘암 유발 웹툰’으로 불린다. 주인공이 찌질한 행동을 너무 절묘하게 잘해서 보는 사람들이 괴로워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해 옛 애인에게 전화를 건다. 울면서 현재 애인의 욕을 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찌질한데, 정신을 차리고 전화기를 확인해보니, 현재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아, 미치겠네’라는 말을 안 하고 이 웹툰을 보는 건 불가능하다. 독자들은 주인공을 훈계하는 댓글을 적는다. 하지만 독자들 역시 모두 우리 시대의 찌질한 친구들일 것이다. 그들도 아마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형, 독자들이 댓글을 달잖아. 주인공의 어떤 행동 때문에 암 걸리겠다고. 그러면 형은 그 댓글을 읽고, 독자들을 더 암 걸리게 만드는 설정을 일부러 더 해?”

“당연하지. 그게 내가 하는 역할이야. 이건 일종의 심리 싸움이야. 작가가 지면 안 돼. 이기려면 독자들의 감정을 가지고 놀 줄 알아야 한다고.”

김풍은 그의 웹툰 속에 있다. 그곳에서 김풍은 주인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안에는 김풍이 없다. 김풍은 셰프가 아닐 것이다. 그저 특이하고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오두방정 떨고, 엉뚱한 요리를 아무렇지 않게 만든다. 그는 요리로 자신을 증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그는 존재의 욕구를 웹툰으로 채운다.

“인터뷰할 때 나는 웹툰 얘기를 하고 싶어. 이게 나한테 가장 중요해. 특히 <찌질의 역사>는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거야.” 왜 아니겠는가. 그것은 김풍의 이야기다. 그리고 아이엠에프(IMF) 시기를 지나, 가까스로 현재를 살고 있는 어떤 시기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김풍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직장을 갖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으면 실패한 삶이라고 호통치던 시대를 ‘잉여’로 산, ‘잉여’를 온전히 체득한 저 제대로 된 ‘잉여’가 어디까지 어떻게 해나갈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찌질의 역사>는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김풍은 9월쯤 선보일 파일럿 예능 <주먹 쥐고 소림사>의 촬영을 마쳤다. 건강해라,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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