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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모두를 베끼는 대복제 시대의 데칼코마니 예능

‘뭐지, 이 기시감은.’ 요즘 티브이를 보는 시청자들은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비슷한 포맷의 예능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기 때문이다. <꽃보다 할배>(티브이엔·2013년 7월)가 인기를 끌자 <한국방송>이 그해 9월 할머니들이 여행을 떠나는 <마마도>를 만들어 비판받은 전례가 있는데, 최근에는 따라 만들기 행태가 방송사를 가리지 않는 등 노골적이 되고 있다. 예능의 획일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동시 방송?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제이티비시)와 <힐링캠프 500인>(에스비에스)은 방송 화면을 섞어놓으면 구분이 잘 안될 정도로 포맷이 흡사하다. 둘 다 김제동이 진행을 맡아 게스트를 초대하고 관객 수백명과 대화를 나누는 ‘토크콘서트’ 형식이다. 김제동과 게스트가 관객의 사연을 듣고 위로의 말을 해주는 내용도 닮았다. ‘힐링송’을 부르는 것도 같다. <톡투유>는 연예인 외에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이 나와 관객의 고민에 대해 조언하는 게 다르다면 다를까. “일반인의 내 이야기 같은 고민이 위로가 된다”는 포맷 자체에 대한 시청자의 호평도 있지만, 일요일과 월요일 연이어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힐링캠프> 곽승영 피디는 “연예인들이 토크쇼에 나오기 전에 작가와 사전 인터뷰를 하는데, 녹화 때보다 더 재미있게 말한다. 처음 이야기할 때의 살아있는 느낌을 방송으로 전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토크콘서트로 포맷을 바꿨다”고 말했다. 곽 피디는 “<톡투유>도 우리도 김제동이 2009년 시작한 토크콘서트를 기반으로 한다. 방송에서 ‘토크콘서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안착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제동을 기용한 것에 대해서는 “관객을 대상으로 진행을 할 수 있는 방송인은 현재 김제동밖에 없다. 김제동의 장점이 빛나고, 제2의 김제동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김제동 소속사인 디컴퍼니 쪽은 “포맷이 비슷해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다”며 “힐링캠프 제작진과 여러차례 논의한 뒤 고심 끝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문화방송)의 ‘백종원 편’을 그대로 옮긴 듯한 (올리브·오른쪽 사진).

■ <마리텔> 따라 인터넷 차용…

스타의 냉장고도 바쁘다! 인터넷 개인 방송 포맷을 도입한 <마이 리틀 텔레비전>(문화방송)이 인기를 끌자 방송사들은 앞다투어 유사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7월16일 시작한 <주문을 걸어>(올리브)는 <마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백종원의 요리’ 편만 쏙 빼온 듯하다. 포털 ‘다음’에서 생중계하면서 실시간으로 시청자가 원하는 메뉴를 만들어 배달하는 식이다.

<에스비에스>가 8월11일과 18일 방송하는 2부작 맛보기(파일럿) 프로그램 <조회수 배틀 월드 리그 18초>도 연예인 8명이 개인 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고 조회수를 높이는 식으로 1인 방송 콘텐츠 제작 형식을 차용했다. <냉장고를 부탁해>(제이티비시)가 인기를 끌면서는 스타의 냉장고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티브이 조선>은 연예인 집에 찾아가 냉장고 속 재료를 살펴본 뒤 건강 상태에 맞는 요리를 해주는 <닥터의 냉장고>를 선보였고, <제이티비시>는 스타의 냉장고 속 음식을 통해 건강 상태를 고려한 요리를 알려주는 <힐링의 품격>을 7월 편성했다.

■ ‘따라하기’에 커지는 피로감

이런 따라하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빠 어디 가>(문화방송)가 인기를 끌자 <슈퍼맨이 돌아왔다>(한국방송2), <오 마이 베이비>(에스비에스), <아빠를 부탁해>(에스비에스)까지 쏟아졌다. 한 지상파 예능피디는 “그래도 예전에는 소재를 변형해 더 새롭게 만들려는 노력이라도 했는데 연예인 가족이 나오는 예능부터는 사람만 바꿔 거의 똑같이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예능 피디는 “전반적으로 시청률이 하향세이고 방송사도 적자라, 새 포맷을 선보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비에스>는 요즘 ‘대세’인 백종원과 일단 프로그램 출연 계약부터 해놓았다. 이미 여러 방송사에서 다양한 매력을 보여준 터라 내부에서도 “또 백종원이냐”는 비판도 나오지만, ‘검증된’ 인기에 편승하겠다는 방송사의 결심은 확고해 보인다. <에스비에스>는 이례적으로 프로그램 제목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16일 “백종원과 새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방송사의 무분별한 따라하기에 선뜻 이해하기 힘든 외주 계약도 이뤄진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아빠를 부탁해>는 외주제작사 코엔미디어에서 제작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인기를 끌자 <에스비에스>가 코엔 쪽과 손잡고 비슷한 포맷인 <아빠를 부탁해>를 만든 것이다. 두 프로그램은 일요일 같은 시간대에 맞붙는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방송사의 무분별한 따라하기 제작에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프로그램이 줄고 시청자의 피로감만 자극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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