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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째 영업 중인 서울 양천구 목2동 영진목욕탕이 남탕과 여탕에 목욕물 대신 미술품을 채웠다

  • 박수진
  • 입력 2015.08.02 18:19
  • 수정 2015.08.02 18:30

최석영 작가가 31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영진목욕탕에서 8월1~5일 이곳에서 열리는 ‘시티 게임’의 전시작 ‘바다’를 여탕 욕조 안에 설치하고 있다.

반듯한 길 옆으로 아파트가 숲처럼 빽빽이 들어선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목2동은 여전히 옛 마을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시장을 중심으로 낮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30년 넘게 살아온 토박이들의 대화도 심심찮게 엿들을 수 있다. 목2동시장 골목 한편에는 우물터였다고 전해지는 자리에 ‘영진목욕탕’이 34년째 영업을 하고 있다.

한때 네 곳이나 되던 이 동네 목욕탕들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홀로 남은 영진목욕탕은 1일부터 닷새간 ‘목욕물’을 받지 않는다. 그 대신 남탕·여탕에 미술품을 한가득 받아 갤러리로 변신한다. 5년 전부터 이 지역에 자리잡고 주민들과 축제, 전시 기획, 기록 남기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예술모임 ‘플러스마이너스1도씨’가 ‘목2동 주민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전시회를 열기 때문이다. 전시는 도저 킴(Doger Kim)과 최석영씨가 맡았다.

어린 시절 목2동에 살았던 최 작가는 1층 여탕을 예전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놀이터로 꾸몄다. 탈의실 체중계에 몸무게를 달고 땅따먹기를 한 뒤, 목욕탕에 들어서면 물속에 돌 던지기와 사우나에서 보물찾기 등 체험 관람이 이어진다.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먹으며 탕 속에 발을 담그고 나온 관객에게는 종이로 접은 자동차 모형을 선물로 준다.

계단을 타고 2층 남탕에 들어서면 9~78살 동네 주민 9명의 방을 직접 찍은 사진이 담긴 티셔츠가 전시돼 있다. 주민들이 지난 두 달 입었던 티셔츠이기도 하다. 도저 킴 작가는 “각자의 방을 이웃들에게 티셔츠로 보여주면서, 개인과 공동체가 만나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 전시된 티셔츠에는 주민들의 땀내와 몸내가 그대로 배어 있다”고 했다.

마을 구성원들이 이처럼 목욕탕 전시회를 준비한 건, 사라져가는 마을의 기억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결혼 이후 30년 넘게 목2동에서 살아온 영진목욕탕 주인 강의순(54)씨는 “마을 위하는 일이라 기분 좋게 가게 열쇠를 건넸다. 지하철 9호선도 들어서고 점점 옛날 마을 모습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젊은 친구들이 예술적인 공간으로 만들어본다니 재밌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한 플러스마이너스1도씨의 김지영(34)씨는 “주민들의 도움으로 만든 전시다. 한 해가 다르게 동네 모습이 변하고 있지만 이웃 사이의 끈끈한 관계를 오래 이어가고 싶은 주민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고 했다. 목욕탕 전시 입장료는 무료이며 매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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