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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의 상징, 사자 '세실'의 죽음이 남긴 것들

  • 박수진
  • 입력 2015.08.02 10:44
  • 수정 2015.08.02 10:45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지만 짐바브웨 '국민사자' 세실은 죽어서 '이름'을 남겼다.

세실이 야생동물 사냥을 즐기는 미국인 치과의사 손에 무참히 죽은 사실이 알려지자 전 세계는 공분했다. 사람들은 머리가 잘린 채 발견된 세실의 사체에 경악했고 사냥 방식의 잔혹함에 치를 떨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잔혹했던 만큼 '세실'이라는 이름은 과시용 박제 기념품을 남기려는 '트로피 (trophy) 사냥'에 경종을 울리는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잔인한 사냥꾼에게 사람들의 분노가 쏟아졌고 사냥을 도운 중개인들은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다.

국제 사회는 세실의 죽음을 계기로 야생동물 보호를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세실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 중에서

참수된 채 발견된 짐바브웨 국민사자 '세실'

세실은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사자였다. 그는 짐바브웨에서 가장 큰 황게국립공원의 마스코트로 검은 갈기가 특징적인 수사자였다. 13살짜리 세실은 짐바브웨 국민은 물론 사파리투어를 나온 전 세계 관광객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사자로서는 드물게 인간과의 교감을 좋아한 세실을 보고자 한해 수만 명의 관광객이 황게국립공원에 모여 들었다.

미국인 치과의사 월터 파머는 지난달 초 여느 관광객과는 다른 목적으로 짐바브웨를 찾았다. 야생동물 사냥이 취미인 그에게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사자인 세실은 한낱 사냥감에 불과했다. 파머는 세실을 유인해 사냥하려고 중개인들에게 5만 달러(약 5천800만원)를 냈다. 그는 미끼로 꾀어 공원 밖으로 유인한 세실을 석궁과 총으로 사냥했다.

6마리의 암사자와 24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라이언 킹'의 최후는 비참했다. 세실의 사체는 가죽이 벗겨지고 참수된 채 발견됐다. 월터 파머는 "전문적인 가이드를 고용했고 적절한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사냥은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세실 도륙'에 전 세계가 공분

세실을 죽인 범인이 취미로 야생동물 사냥을 즐겨온 미국인 치과의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에서 공분이 일었다. 사자를 죽인 것은 후회하지만 적법한 과정을 거쳤다던 파머의 해명에도 잔인한 사냥 방식을 두고 '괴물', '야만적이고 비도덕적인 취미'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파머의 치과병원과 자택 주소가 공개되자 시위자들은 직접 '살인마'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병원 앞으로 몰려들었다. 이 치과의사의 페이스북 계정에는 분노와 협박성 메시지가 가득했다. 파머가 밀려드는 항의에 페이스북 계정을 없애자 이를 패러디한 페이스북 페이지가 만들어져 파머를 비난하는 댓글이 잇따랐다.

파머의 집 앞에 모인 사람들과, 이들이 놓고 간 동물 인형과 메시지들

야생 동물 보호를 촉구하는 움직임도 잇따랐다. 야생동물의 사냥 중단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서에는 수십만 명이 서명했다.

야생 동물 관련 유명 영화 '더 코브'의 감독인 루이 시호요스와 미국 해양보존협회는 뉴욕 맨해튼의 상징인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전면에 멸종동물 보존을 위한 대형 동영상을 상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뉴욕타임스(NYT)는 "세실이 살해된 경위가 상세히 알려지면서 거액을 내고 야생동물 사냥에 나서는 사냥꾼에 대한 환경보호론자와 동물애호가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고 전했다.

짐바브웨 대통령에게 세실의 죽음을 철저히 조사할 것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에도 사람들이 몰렸다. 이에 짐바브웨 당국은 파머를 도와 세실 사냥에 나섰던 전문 사냥꾼 테오 브론코르스트와 농장주 어니스트 은들로부 등 현지인 2명을 세실의 죽음을 방조한 혐의로 정식 기소했다.

짐바브웨 정부는 또 사냥꾼 파머의 신병을 자국으로 인도하라고 미국에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미국 연방 정부기관도 짐바브웨 '국민사자'를 도륙한 파머를 직접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미국 야생동물보호청(USFWS)은 짐바브웨에서 파머가 자행한 사자 사냥의 사실 관계를 조사하겠다고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간) 공식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한편 1조 원대 자산가인 미국 기업인 톰 캐플런과 대프니 캐플런 부부는 세실의 이동 경로를 연구해 온 옥스퍼드대학 연구팀에 10만 달러(약 1억1천700만원)를 기부하기로 했다. 세실 연구팀에 9년간 몸담은 브렌트 스태플캠프 연구가는 "사자가 불법으로 살해된 것은 세실이 처음이 아니다"며 "최근 몇 년 간 수십 마리의 사자가 불법 사냥에 죽어가고 있지만 처벌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트로피 사냥을 중지하라'는 등의 내용을 담은 피켓을 든 시민들

'제2의 세실 막자' 야생동물 보호 강화 움직임

세계 각국은 잔인하게 최후를 맞은 세실의 죽음을 기억하기로 했다. 유엔 총회는 지난달 30일 독일, 가봉 등 70여 개국이 공동 발의한 '야생 동·식물의 불법 밀거래 차단 결의안'을 193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야생동물 관련 범죄에 관해 포괄적인 내용의 단독 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처음이다. 세실의 죽음이 일으킨 파장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말해준다. 결의안은 야생 동·식물의 불법거래를 예방하고 근절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확실한 조치에 나설 것을 회원국에 촉구했다. 또 보호 대상인 동·식물을 범죄조직이 밀매하는 것을 '중대범죄'로 규정하는 한편, 각국에도 예방·수사·기소 강화를 위한 관련법 개정을 주문했다. 아프리카코끼리의 상아, 코뿔소의 뿔의 불법거래가 막대한 이윤을 내며 테러조직의 자금원이 되고 있다는 우려도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하는데 한몫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긴 하지만 짐바브웨 정부도 사냥 관련 법규를 강화하고 나섰다. 짐바브웨 공원 및 야생동물 관리청 '짐파크(Zimparks)'의 에드슨 치드지야 청장은 1일 성명에서 "황게 국립공원 바깥 구역에서의 사자와 표범, 그리고 코끼리 사냥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고 AFP가 보도했다. 치드지야 청장은 자신의 허락이 없는 한 활과 화살을 이용한 어떠한 사냥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도 세실의 죽음을 계기로 야생동물 보호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로버트 메넨데스(민주·뉴저지) 상원의원은 지난달 31일 멸종위기종 보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는 1973년 도입된 멸종위기종 보호법의 수출입 제한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뿐만 아니라 멸종위기 목록에 올라야 한다고 제안된 동물들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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