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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은 작지 않다

  • 남현지
  • 입력 2015.08.01 15:33
  • 수정 2015.08.01 15:37

아파트·빌라 일색 도심에서 자투리땅 협소주택 짓는 이들 늘어…바닥 면적 작아도 상상력 발휘해 공간 창조

서울 후암동 협소주택. 62㎡(18평) 땅에 연면적 119㎡(36평)인 4층 집을 지었다.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건축가이자 건축평론가인 에드윈 헤스코트는 자신의 책 <집을 철학하다>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는 집을 자산 가치가 아닌 삶을 창조하는 공간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어떤 집인가?’는 결국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어떤 삶인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음을 그는 설파한다.

“기왕이면 신도시 40평대 새 아파트였으면 좋겠어요. 브랜드 아파트에, 역세권에다, 좋은 학교도 가까이 있으면 좋겠죠.” 어느 아파트 광고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이런 기준으로 집을 고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

여기 좀 다른 기준으로 집을 바라보자고 제안하는 이들이 있다. 아파트, 빌라 같은 공동주택 일색인 도심에서 다른 선택지를 늘리자는 것이다. 도심 속 ‘협소주택’을 짓는 시도가 최근 1~2년 사이 젊은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낡은 주택을 허문 자리에 아파트나 빌라를 지어 올리는 대신 작아도 나만의 가치를 지닌 집을 지어보자고 그들은 제안한다.

협소주택이란 말은 일본에서 넘어왔다. 1950년대 일본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50㎡(15평) 안팎의 땅에 3~4층 건물을 올리는 방식의 협소주택이 처음 소개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협소주택이 본격적으로 퍼진 건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이 빠지고 도심 밖으로 밀려났던 이들이 다시 돌아오면서부터다. 도심의 자투리땅을 활용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것이다.

1층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한 서울 이화동 '수작'.

한국에서도 최근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운데 큰돈 없이도 나만의 집을 갖고자 하는 열망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열망은 ‘땅콩집’ 열풍으로 이어졌다. 한 필지에 같은 모양의 집 두 채를 짓는 방식은 건축비를 낮출 뿐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바꿨다. 다만 땅콩집은 소유권 문제 등의 단점도 있다. 최근 지어지는 협소주택은 이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또다른 형태다. 소유권 문제 등이 없고, 도시 외곽이 아니라 도심의 자투리땅에 지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후암동 협소주택 내부.

에이에이피에이(AAPA) 건축사사무소의 문상배·심인희 공동대표는 획일적인 아파트나 빌라 말고 다른 주거형태는 없을까 고민하다 의기투합했다. 협소주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2012년 사무소를 열고 관련 공부를 시작했다. 2013년 서울 중랑구 묵동에 ‘임조의 오두막’이라는 집을 지었다. 건축주는 부모님이 살던 낡은 주택을 허물고 66㎡(20평)가 채 안 되는 땅에 3층 집을 올려 연면적 99㎡(30평) 집을 갖게 됐다. 건축주 부부는 부모님, 아이 둘과 함께 이 집에 산다.

“내 집을 마련하려면 아파트나 빌라 말고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어요. 단독주택은 너무 크거나 낡았거나 하는 식이죠. 그런데 협소주택이라면 도심에 새로 짓는 게 가능해요. 획일화되고 몰개성적인 아파트로는 채울 수 없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죠.” 문 대표의 말이다. 아파트에 흔히 있는 층간소음 문제가 없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도 문제없다.

협소주택이라 해서 무조건 돈이 적게 드는 게 아니다. 어디에 짓느냐에 따라 땅값이 달라지고, 건축비도 2억원 넘게 든다. 작은 면적에서 최대 공간을 만들어내려면 설계부터 시공까지 더 많은 품이 들 수밖에 없다. 서울이라면 땅값을 포함해 적어도 4억원 이상이 든다. 단순히 싸게 집을 구하려 한다면 협소주택이 정답은 아니라는 얘기다.

협소주택은 삶의 방식을 바꾸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심 대표는 말한다. “건축주에게 원하는 집을 물으면 ‘30평이면 좋겠다’, ‘방 3개는 돼야죠’ 같은 대답이 돌아와요. 왜냐고 물으면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러면 이후 대화를 통해 생활방식, 취향 등을 알아가요. 그리고 그에 맞춰 집을 설계하죠. 내 집을 짓는다는 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과천 협소주택 내부

50㎡ 땅에 마당까지 둔 과천 협소주택.

윤병철 윤집 대표는 경기도 과천에 협소주택을 지어 지난해 입주했다. 실내건축 일을 하던 그는 단독주택과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다 ‘전셋값 정도로 집을 지어보자’는 생각에서 협소주택을 선택했다. 50㎡ 땅에 3층 주택을 올리고 마당도 두었다. 결과적으로 전셋값보다 돈이 더 들었지만, 충분히 만족하며 살고 있다. “갇힌 삶에서 벗어나 더 자유분방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계단에 걸터앉아 책도 보고요. 6살 아들도 자유롭게 뛰놀 수 있어 특히 좋아해요.” 그는 아예 협소주택 짓는 일을 시작했다. 요즘은 서울 사당동 대형 아파트단지 옆 42㎡ 자투리땅에 협소주택을 짓고 있다. 그는 “협소주택이라는 명칭이 일본에서 온 거라 ‘작은집’이라는 우리말로 바꾸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협소주택이나 작은집처럼 크기를 규정하는 이름을 반대하는 이도 있다. ‘크다/작다’는 생각하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개념인 만큼, 이를 넘어서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영한 아키텍츠 소장은 2013년부터 ‘최소의 집’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1년에 두 차례씩 해오고 있다. “집 얘기를 할 때 다들 공간의 규모와 재화, 즉 몇평이냐, 얼마냐 하는 부분에만 관심을 두고 시작합니다. 자신들의 생활 이야기에 맞는 적정공간을 찾는 것으로부터 ‘최소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 대중과 건축가의 거리를 좁히고자 장기 릴레이 전시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컨테이너박스로 아이 놀이방을 만들어 붙인 대전 해원이네.

그가 말하는 ‘최소’는 각자 정의하는 것이다. 공간의 크기일 수도, 건축 재료일 수도, 건축이 관여하는 정도일 수도 있다. 참여 건축가들이 각기 정의를 내리고 ‘최소의 집’을 설계한다. 지난 23일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오픈해 8월17일까지 여는 다섯번째 전시회에는 ‘삶의 최소주의’라는 부제가 붙었다. 시인이자 건축평론가·건축가인 함성호 작가는 “옛 선비들이 집은 세 칸(9평)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삼간지제’ 덕목을 만든 것처럼 우리도 건축의 최소주의를 통해 삶의 최소주의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부제에 담은 뜻을 설명했다.

명칭을 어떻게 부르든 간에 협소주택, 작은집, 최소의 집에 대한 요즘의 관심에는 꼭 경제적 요인만이 아니라 대안적 삶의 방식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다. 하지만 현실에는 장애물이 그득하다. 도심 주택가에서 적당한 자투리땅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협소주택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건축 인허가, 시공사 선정 등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제도적 뒷받침이 아쉽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협소주택을 지어 관심을 모은 이용의 공감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서울에서 사라져가는 단독주택 형태를 계속 보존하는 게 중요한데, 협소주택이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20평이나 2000평이나 똑같은 규제를 받기 때문에 제약이 많다”고 말했다. 예컨대 인접한 집과는 50㎝를 띄워야 한다든지, 인접 도로폭을 4m 이상으로 해야 한다든지, 건폐율 규정 등을 일일이 지키다 보면 원래 땅에서 협소주택 면적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젊은 건축가들의 도전정신으로 협소주택 열기가 지펴졌지만, 제도적 뒷받침이 따르지 않으면 언제 사그라들지 모른다”고 그는 걱정했다.

작은 공간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다란 상상력에 우리 모두 날개를 달아줄 순 없을까?

사진 공감도시건축·AAPA·윤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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