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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시게미쓰 家門의 전쟁

  • 김도훈
  • 입력 2015.08.01 09:29
  • 수정 2015.08.01 10:09

롯데 회장 신격호 가계도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롯데그룹 신격호(93)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61) 전 일본 롯데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공개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친족들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후계 구도 결정에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진 신격호 총괄회장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에 흩어져 지내고 있는 친족들은 31일 신 총괄회장의 아버지(신진수) 제사를 계기로 서울에 모였지만, 신동빈 회장은 일본에서 귀국하지 않았다. 이에 이날 제사가 ‘반 신동빈 동맹’의 모임이 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가장 주목을 끄는 인물은 신격호 회장의 일본인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88)씨다. 1941년 고향인 경남 울주군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간 신 총괄회장은 1952년 결혼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시게미쓰 하쓰코씨가 일본 A급 전범 시게미쓰 마모루의 조카라고 보도했다. 시게미쓰 마모루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외무대신이었고, 1932년 중국 공사로 있을 때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로 한쪽 다리를 잃은 인물이다.

하지만 롯데그룹은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시게미쓰 하쓰코씨의 결혼 전 성은 ‘다케모리’이고, 결혼 후 신 총괄회장이 창씨개명을 하면서 선택한 성 시게미쓰를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시게미쓰 하쓰코

시게미쓰 하쓰코씨는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거의 없었다. 시게미쓰 하쓰코씨는 2005년 서울 롯데백화점에 도넛 전문점 ‘크리스피크림’ 개점식에 참석했는데, 당시 언론은 시게미쓰 하쓰코씨가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15년 만이라고 소개했다.

그런 그가 지난 30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남편인 신 총괄회장이 갑작스런 일본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지 이틀,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에 들어온 지 하루 뒤였다. 주로 한국에서 생활해온 차남 신동빈 회장보다는 일본에서 가까이 지낸 장남과 더 가깝지 않겠냐는 추측이 많지만 시게미쓰 하쓰코씨가 롯데홀딩스나 광윤사 지분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는 공개된 적이 없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첫째 부인 노순화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 신영자(73)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은 이미 장남 쪽에 섰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신 이사장은 지난 27일 아버지의 일본행에 함께했고, 신 이사장의 딸 장선윤 롯데호텔 상무도 함께였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30일 <한국방송> 인터뷰에서 “신영자 이사장은 현재 누구 편도 아니다. 중립이다. 아버지인 회장님이 걱정돼 (일본에) 따라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롯데그룹 쪽은 “신 이사장이 단지 아버지를 수행하기 위해서 일본에 다녀왔겠느냐. 장남과 뜻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 이사장은 1970년대부터 아버지를 도와 한국 롯데의 주력인 롯데쇼핑을 키우는 데 힘을 썼다. 하지만 2006년 상장을 앞두고 등기이사에서 빠졌다. 이후에도 롯데쇼핑 사장으로 직접 경영을 맡아왔지만, 2012년 경영에서 물러나 복지재단 이사장직만 맡고 있다. 딸 장선윤씨 역시 어머니를 도와 롯데쇼핑 이사로 일하다 2008년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지난해 롯데호텔 상무로 복귀했다. 30년 넘게 롯데쇼핑에 몸담아온 신 이사장이 밀려난 것이 동생 신동빈 회장 때문이라면, 신 이사장 모녀가 이번 ‘장남의 난’에 가담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신 이사장은 롯데 계열사들의 지분도 적지 않게 보유하고 있고, 계모인 시게미쓰 하쓰코씨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 총괄회장의 형제 9명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신선호(82) 일본 산사스 사장도 31일 오후 한국에 들어왔다. 그도 지난 27일 신 총괄회장의 일본행에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사장은 김포국제공항에서 마주친 기자들이 신 총괄회장이 신동빈 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임원에서 해임하도록 지시한 것이 정상적인 판단이었냐고 묻자 “그럼요”라고 답했다. 신 총괄회장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신 사장이 운영하는 일본 산사스는 주로 국수 등을 제조하는 식품기업이다. 신 사장의 딸 신유나씨는 이호진 전 태광산업 회장과 결혼했는데, 이 전 회장은 2007년 우리홈쇼핑 인수전에서 롯데 신동빈 회장에게 패한 인연이 있다. 사위가 조카에게 패한 셈이다. 신 총괄회장의 또다른 동생들로는 신춘호(85) 농심 회장, 신준호(74) 푸르밀 회장, 신정희(69) 동화면세점 사장 등이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일본행에는 신동인(69)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도 함께했다. 신동인 대행은 신 총괄회장의 사촌 신병호(2005년 작고) 전 롯데칠성음료 고문의 아들이다. 신 총괄회장의 5촌 조카이고, 신동빈 회장과는 6촌 사이다. 1968년 롯데제과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뒤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호텔 사장까지 올랐다. 신 대행은 2004년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 연루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당시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은 미리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됐다. 이후 신 대행은 롯데자이언츠 구단으로 밀려나 10년째 머물고 있다.

신동주, 동빈 형제의 배우자들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얼굴을 알리게 됐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부인 조은주씨는 지난 29일 남편과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1992년 서울 롯데월드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조씨는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동포의 딸이라고만 알려졌다.

반면 신동빈 회장은 1985년 일본 대형 건설사 다이세이건설 부회장의 딸과 결혼했다. 일본에서 열린 결혼식은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주례를 맡고,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정·재계 최고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일본 내 인맥에서도 형보다는 동생이 훨씬 우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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