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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안의 명분 아닌 명분

정부와 여당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청년고용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여 인건비가 줄어들면 여분의 돈으로 청년고용을 더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중소기업의 경우 연공서열로 인한 임금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로 인한 인건비 절감효과는 크지 않다. 대기업의 경우에도 임금피크제로 인건비가 줄어든다 하여 그것이 청년고용에 활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대기업이 청년고용을 많이 늘리지 않는 이유는 인건비 때문이 아니다. 사내유보금이 많이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투자처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 홍헌호
  • 입력 2015.07.31 12:27
  • 수정 2016.07.31 14:12
ⓒ연합뉴스

정부와 여당이 노동계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재계의 이익을 대폭 반영한 노동개혁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심지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표를 잃을 각오로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말까지 하며 청와대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고 있다. 이들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은 명분이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된 쟁점을 몇가지 짚어보기로 한다.

정부·여당의 추진방안, 따져볼 필요 있다

정부·여당은 우리나라 정규직 근로자들이 과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정규직의 양보를 유도하는 노동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규직 과보호를 줄이고 그 대신 비정규직을 더 두껍게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더 보호하자는 주장은 옳으나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는 주장은 틀렸다.

OECD가 지난해 발표한 34개 회원국의 고용보호입법지수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발표된 고용보호입법지수 중 '정규직 개별해고'에 관한 보호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34개국 중 12위다. 중간보다는 높지만 과보호라 보기는 어렵다. 또 '정규직 집단해고'에 관한 보호지수를 보면 34개국 중 꼴찌에서 두번째다. 이 두가지 지수를 종합해보면 우리나라 정규직 보호지수는 OECD 중간 수준으로 과보호 상태라 단정할 수는 없다.

또 정부와 여당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청년고용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여 인건비가 줄어들면 여분의 돈으로 청년고용을 더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중소기업의 경우 연공서열로 인한 임금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로 인한 인건비 절감효과는 크지 않다. 대기업의 경우에도 임금피크제로 인건비가 줄어든다 하여 그것이 청년고용에 활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대기업이 청년고용을 많이 늘리지 않는 이유는 인건비 때문이 아니다. 사내유보금이 많이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투자처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피크제로 청년고용이 많이 늘어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한도를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기간제 근로자들 중 일부가 그것을 원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정규직 비중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출범한 박근혜정부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재계마저도 기간제 사용한도 연장이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진정으로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원하는 개혁을 해야 한다. 그것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책이 아니라 정규직 비중을 확대하는 정책이다.

그뿐 아니라 정부·여당은 근로자 해고 요건을 완화하려 하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정부가 법을 개정하여 실적이 좋지 못한 근로자를 기업이 손쉽게 해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 하는 것이다.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극도로 심해지는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기업의 이익을 늘려주기 위해 근로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은 용납되기 어렵다.

사내하청 근로자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32개 업종에 대해서만 사내하청 근로자를 허용하고 있는데, 55세 이상 근로자에 대해서는 모든 업종에서 사내하청을 제한 없이 허용하겠다는 것이 정부 생각이다. 이 또한 기업의 이익을 늘려주기 위해 근로자의 권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다.

기업의 이익만이 아닌 모두의 권익을 위해야

재계는 정부와 여당의 이같은 노동개혁안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독일이 2003년 노동의 유연성을 높이는 '하르츠(Hartz) 개혁'에 성공했다며 정부의 노동개혁을 독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하르트무트 자이페르트(Hartmut Seifert) 전 독일 한스뵈클러재단 경제사회연구소장은 재계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했다. 하르츠 개혁이 고용률 제고에 미친 영향은 미미한 반면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켰기 때문에 독일정부가 규제를 다시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공공복지지출 비율은 OECD 34개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이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와 여당이 기업의 이익을 늘려주기 위해 근로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은 경제성장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적절한 분배가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분배정책과 노동정책을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누리당 노동시장선진화특별위원장을 맡은 이인제 최고위원(오른쪽)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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