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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모래시계' 20주년, 다시 보고 확인한 10가지

  • 강병진
  • 입력 2015.07.31 10:28
  • 수정 2015.07.31 10:47

고 김종학 감독이 연출하고, 송지나 작가가 쓴 '모래시계'는 1995년 1월 9일, 첫 방영됐다. 이 사실을 최근 기억했다. 2015년 8월을 맞이한 지금은 사실 20주년을 기념하기에도 어색한 시점이다. 하지만 벌써 20주년이나 됐다는 사실이 '모래시계'에 관한 흐릿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모래시계'를 추억하는 가장 흔한 방식은 남자 연예인들이 극중 태수의 명대사,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를 모사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이정재의 인터뷰에서 혜린을 목숨바쳐 지키던 백재희를 떠올리는 것이고, 또 그게 아니라면 정동진 역을 찾아가는 것이다. ('모래시계' 검사를 불리는 홍준표 도지사를 통해서도 떠올릴 수는 있지만...)

지난 20년동안 그런 방식으로 '모래시계'와 관련된 기억들이 조금씩 변해왔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흐릿했던 기억과 오해를 바로 잡아보고자, 24부작의 '모래시계'를 다시 보았다. 당시 '월화수목'이라는 파격적인 편성을 했던 SBS는 지금도 이 작품을 홈페이지를 통해 서비스하고 있다.(물론 유료다.) 그렇게 20년 만에 다시 본 '모래시계'는 꽤 반가웠고, 여전히 흥미로웠으며 어떤 부분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실망스러웠다.

다음은 '모래시계'를 다시 보면서 확인한 12가지다. 1995년 당시 '모래시계'를 보았던 당신의 기억도 함께 더해보면 좋겠다.

1. 지난 20년 동안 기억에 남아있던 몇몇 장면들 중 하나는 사람들이 모여 어느 동네 신문을 통해 뭔가를 폭로하는 시퀀스였다. 우석(박상원)과 태수(최민수)와 혜린(고현정)이 기자인 영선(이승연, 우석을 은근히 좋아했다)등과 함께 일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했다. 선영(조민수, 우석의 아내)이  윤전기를 돌리는 사람들에게 먹일 라면을 끓이는 평범한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이 시퀀스에서 태수는 빠져있다. 우석은 남산에 끌려간 상태였는데, 어느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는 이 사건을 대중에게 알리려는 사람들이 직접 신문을 만드는 장면이었다. 이 윤전기를 돌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쇄소에 불법으로 취업한 사람들이었다. 사회지배층의 음모를 가장 낮은 사람들이 협동해 드러낸다는 것에 꽤 큰 쾌감이 있었다. 

 

2. 기억속에서 선영은 '내조의 여왕'이었다. 자신의 속내는 전혀 내비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우석의 곁을 지키는 여자였다. 그런데 다시 보니 선영은 꽤 직접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여자다. 하숙생인 우석의 사법고시 합격사실을 제일 먼저 알고는 기뻐하고, 우석에게 할 말이 있으면 그의 방문 앞을 닦고, 어떤 여자가 우석을 찾아오면 불편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우석이 검사가 된 후에는 수사방법을 조언하기도 한다.

조민수가 연기한 선영

기억과 달랐던 건, 선영과 우석이 결혼을 하게 된 계기였다. 죽어가던 선영의 아버지가 우석에게 딸을 부탁했던 걸로 기억했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이 아버지는 이 드라마에서 대사 한마디 없다. 죽어갈 때도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 단, 그때 그의 우석이 이렇게 말한다. "어르신, 저에게 딸을 주십시요.". 그게 선영을 향한 우석의 청혼이었다. 

 

3. '모래시계'를 떠올릴 때, 기억에 남아있던 캐릭터 중 하나는 윤재영 회장(박근형)의 변호사였다. 극중에서 '민변호사'로 불리는 이 남자는 윤재영이 죽은 후에는 윤혜린의 곁을 지키는 데, 어떤 상황에서든 차분한 말투를 잊지 않았다. 이 배우의 이름은 김종결이다.

김종결이 연기한 '민변호사'(오른쪽)

다시 보니 그를 비롯해 중년남자배우들의 연기가 아름답다. 우석에게 조언을 해주는 조경환, 태수의 부하로 나온 손현주 등이다. 무엇보다 '모래시계' 속 갈등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장도식 선생을 연기한 고 남성훈이 압권이다. 등장할 때마다 사탕, 아이스크림등을 먹으면서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데, '도대체 이 남자가 원하는 게 뭘까?'란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남성훈이 연기한 '장도식'

 4. 장도식을 묘사할 때도 그렇지만, 모래시계는 지금 봐도 흥미로운 캐릭터가 많다. 인물들의 사연은 전형적일 수 있으나, 그들이 반응하는 태도들은 언제나 조금씩 예상을 깨버린다. 하다못해 잠깐씩 등장하는 조연들까지도 그렇다. 극중에서 백재희(이정재)가 혜린의 애인인줄 아는 혜린의 카지노 동료가 묻는다. "그 남자는 어떤 남자야? 어떻게 만났어?" 혜린이 말한다. "한쪽은 주기만 하고, 다른 한 쪽은 받기만하는 그런 거 알아요? 우리는 어렸을 때 부터 그렇게 누구는 주고, 누구는 받을 수 밖에 없는 관계였어요. 때로는 그게 너무 부담스러워요."

이에 대한 동료의 대답. "그러니까 주기만 하는 쪽이 자긴 거야? 마음주고, 몸 주고?"   

 

5. '모래시계'를 다시 보면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 태수와 우석에게 80년 5월의 광주는 어떤 의미였을까? 강우석은 자신이 계엄군이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환기하지만, 태수도 그랬던가? 태수는 그저 혜린만 바라보고 살았던 거 아닌가? 드라마 속에서 태수는 우석과의 대화에서 "힘이 있어야 할 말을 다하고 살 수 있다"는 걸 광주와 삼청교육대를 통해 깨달았다고 말한다. 

 

6. '모래시계'에 나오는 광주 에피소드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시민군이 된 태수가 물을 마시는 장면, 그가 죽은 후배(이희성)를 업고 뛰는 장면 정도였다. 다시 보니 광주 장면의 연출방식은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다. 모래시계는 80년 5월 광주의 실제 기록영상을 삽입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자료화면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광주에 도착한 계엄군들이 바라보는 광주의 풍경에 기록영상을 넣으면서 인물들의 시선을 일치시켜, 그들이 실제 당시의 광주를 보는 것처럼 연출했다. 또한 기록영상 속 군인들의 총소리가 드라마에서 재현된 광주 시민들을 놀래키거나. 그 반대로 재현된 계엄군들의 총소리가 기록영상 속 광주시민들을 향해 있는 경우도 있다.

광주 시퀀스 중 한 장면의 연출이 신선했다. 태수는 서울로 돌아가려 하나 버스가 끊긴 상태다. 태수의 후배는 금남로에서 시위중아더. 그리고 한 임산부가 거리를 걷고 있다. 버스터미널에 계엄군이 들이닥치고, 금남로에서도 계엄군이 장전하고 있으며 거리에서도 계엄군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려 한다. 그때 임산부 앞에 있던 한 계엄군의 총이 오발로 발사된다. 단 한발의 총소리를 가지고 '모래시계'는 각기 다른 장소의 총소리로 확장시킨다. 이 총소리에 맞춰 버스정류장에서는 한 소년이 쓰러지고, 금남로의 사람들은 도망치기 시작하고, 거리의 임산부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스펙터클을 피하면서도 효과적인 장면이었다. 

 

7. 이 드라마에 쓰이는 또 다른 기록영상은 대통령이 된 노태우가 거리에서 시민들의 환호를 받는 장면. 그리고 취임식에서 전두환과 악수를 하는 장면이다. '모래시계'는 카지노와 슬롯머신 사업자인 윤재영회장으로 터 정치자금을 받던 정부고위관계자들 간의 거래와 암투를 갈등의 핵심으로 놓고, 그들의 잘못된 거래가 강우석, 박태수, 윤예린에게 어떤 상처와 비극을 안겨주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극중 검사실 벽에 걸린 전두환의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배경이 5공이다.

우석은 기어이 권력에 칼을 들이댄다. 하지만 핵심적인 배후세력에게는 다가서지 못한다. 윤재영과 직접적으로 거래를 했던 사람이 모든 걸 다 뒤집어 쓴다. 노태우의 기록영상은 이 과정에 삽입돼 있다. '우리'는 실패했고, 결국 노태우란 대통령이 등장한 것이다. '모래시계'가 방영된지 약 10개월 후인 95년 11월. 실제 두 대통령은 나란히 재판정에 섰다. 

 

8. "'모래시계'는 요즘 드라마와 달리 정말 완벽했어"라고 기억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드라마들이 결국 시간에 쫓기면서 '빈티'가 나는 경우가 많은데, '모래시계'는 안 그랬던 것 같았다. 그런데 '모래시계'도 마지막에 가면 시간이 쫓긴 흔적이 보인다. 태수가 종도(정성모)를 죽이는 장면은 이제 막 해가 진 시간대와 아예 해가 진 후의 시간대가 동시간으로 엮여있다. 게다가 24부작 드라마를 연속으로 보니, 같은 단역배우들이 옷만 갈아입고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도 보인다. 

 

9. '모래시계'는 음악을 정말 너무 많이 쓴다. 주제가 '백학'이 뇌리에서 지울 수 있는 도리가 없을 정도다. '백학'과 함께 음악감독 최경식이 작곡한 각종 테마곡들이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나온다.  

 

10. '모래시계' 속 정부와 검찰... 그리고 2015년 지금의 그들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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