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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북한의 교육과정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 교육의 성격이 달라진다. 학급에서 공부나 조직생활을 잘하는 모범생들을 소년단에 입단시키는데, 입단식은 2월 16일 김정일 장군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선서와 함께 8살 꼬마들은 부모님의 말보다는 장군님의 말씀을 따르고, 당과 수령에 충실하겠다는 열의를 불태우게 된다. 이 시기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데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소년단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부에서 어린이들이 그러한 생각을 간직할 수 있도록 엄청난 광고를 하기 때문이다.

  • 이제선
  • 입력 2015.07.31 08:09
  • 수정 2016.07.31 14:12
ⓒASSOCIATED PRESS

북한의 교육제도는 11년제 의무/무료교육이다. 유치원 1년, 소학교(초등학교) 4년, 고등중학교(중학교 + 고등학교) 6년이다. 물론 현재는 이런 과정들이 조금 변경되었다고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에 내가 다니던 당시의 시스템을 그대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북한은 3~4살이 되면 탁아소에 갈 수 있는데 탁아소는 동마다 거의 하나씩 있다. 탁아소에서 여섯 살이 되면 유치원 낮은 반으로 간다. 7살이 되면 높은 반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높은 반부터는 11년제 의무교육에 포함되기 때문에 정규수업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해 이 시기부터 조직생활이 시작되며, 수령과 당에 충실한 사람으로 키우는 정규적인 과정이 시작되는 셈이다.

그러나 유치원생활을 우리(북한을 제외한 민주주의/자본주의 시각)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빡빡하지는 않다. 또한 유치원은 어린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 교육 수준을 따라 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곳이다. 따라서 유치원을 졸업한 어린이들은 대부분 셈하기(덜셈, 뺄셈), 우리말(한글), 노래와 춤(악보보기, 노래하기, 율동하기 등)을 어느 정도 마스터한 상태에서 초등학교에 간다. 물론 초등학교에서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기는 하지만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전제를 하기 때문에 유치원 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따라가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학부모들도 유치원 낮은 반 때은 잘 보내지 않지만 높은 반부터는 열심히 보내는 편이다.

어찌됐건 유치원을 졸업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기껏해야 7~8살이기 때문에 집중적인 사상교육을 시키지는 않는다. 집중적인 사상교육의 의미는 수령님과 장군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하는 것을 의무로 한다는 것 등을 말한다. 그렇다고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사상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탁아소에서 초등학교 1학년까지는 김일성이나 김정일 장군의 어린 시절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그들의 어린 시절을 따라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 교육의 성격이 달라진다. 초등학교 2학년(3학년이던가? 개인적인 기억으로는 2학년 같아서 그렇게 가기로 한다.)이 되면 학급에서 공부나 조직생활을 잘하는 모범생들을 소년단에 입단시키는데, 입단식은 2월16일 김정일 장군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이때 소년단가입 입단선서를 하게 되는데 지금도 조금은 기억이 난다.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세워주시고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 장군님께서 빛내어 주시는

영광스러운 조선소년단에 입단 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대원수님과 장군님의 가르침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소년단 조직 앞에서 굳게 맹세합니다.

물론 기억나는 데까지 쓰다 보니 확실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선서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놀랍다. 어쨌거나 선서와 함께 8살 꼬마들은 부모님의 말보다는 장군님의 말씀을 따르고, 당과 수령에 충실하겠다는 열의를 불태우게 된다. 이 시기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데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소년단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부에서 어린이들이 그러한 생각을 간직할 수 있도록 엄청난 광고를 하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붉은 넥타이와 소년단 배지는 교복에 상당히 잘 어울리기 때문에 입단하지 못한 학생들도 가끔 하고 다니기도 한다.

이러저러한 영향 때문에 어린이들 속에서 소년단 입단은 상당한 관심사다. 또한 소년단에 입단한 이후부터는 서열이 나뉘기 시작하는데, 간단히 계급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보통 한 학급의 재적은 40~50명 정도가 된다. 여기서 계급순위는 분단위원장(내, 외부적으로 학급을 대표하는) 1명, 학급반장(학급 대표긴 하지만 내부에서만 활동하도록 영역이 제한됨) 1명, 단위원(분단위원장과 함께 단 회의에 참석해 보조 역할을 수행하는) 2~3명, 위원(학급 학생들의 공부, 위생사업 등.. 각자의 책임을 맡은) 4~5명, 분 조장(한 분조는 보통 7~8명씩 나뉘어 학급의 전체 학생들이 누구나 분조에 가입되게 됨) 7~8명이 있다. 여기서부터 서열과 계급이 나눠지기 시작하는데 각자의 책임에 따라 행동해야 하며, 학급에서 당과 수령의 사상과 말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학생이 있으면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이때부터는 사실상 사회조직망에 투입되는 것이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12살에 고등중학교를 입학하게 되는데, 고등중학교 4학년까지는 수업이 조금 늘어나는 것 빼고는 초등학교 시스템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러나 5학년에 들어서부터는 청년동맹에 가입하게 되는데 이때는 넥타이를 벗고 김일성, 김성일 초상화를 왼쪽 가슴에 달아야 한다. 이때도 가입선서가 있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 청년동맹원의 의무 제10조 청년동맹원은 맹비를 제때에 바쳐야 한다는 내용만 기억이 난다. 이는 선생님들이 청년동맹원의 의무 중에 가장 잘 지켜야 하고, 그것만 알면 가입할 수 있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던 내용이라 지금도 기억하는 듯싶다. 어쨌거나 그렇게 청년동맹에 가입하게 되면 이때부터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다. 실제로도 고등중학교 5~6학년이 되면 정부에서 민증을 발급해 주기도 한다.

따라서 이때부터는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으로 매사에 신중해야 하며, 당과 수령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몸 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5~6학년이 되면 과목도 더 많아진다. 원래는 국어, 수학, 영어, 화학, 물리, 한문, 김일성 혁명역사, 김일성 혁명역사, 김정숙 혁명역사, 음악, 미술 등이었다면 5학년에서부터는 한문, 미술, 음악 등이 빠지고 대신에 군사정치학 수업이 첨부되는 등 다양한 과목들이 생긴다. 군사정치학 시간에는 산에서 고립되었을 때, 지도 없이 방향 찾는 법, 지도 보는 법, 아무런 도구 없이 밥하는 법, 사격 하는 법, 싸우는 법(유격전) 등 다양한 방법들을 가르친다. 개인적으로는 참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말이 그렇지 실제로는 거의 재미로 해보는데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면 남자들은 대부분 군대를 가거나 대학교로 진학하고, 학생들 대부분은 각자의 길을 간다. 군대 가는 친구, 전문대 가는 친구, 대학교로 진학하는 친구, 직장으로 출근하는 친구, 무직으로 집에 있는 친구 등 그들이 가는 길은 정해졌거나 혹은 선택한다. 정해져 있는 길을 가거나 선택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재능, 경제적인 능력에 정비례한다. 사실 이제까지 한 이야기들은 북한이 주장하고 실시하는 제도적인 것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너무 딱딱하고 기계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북한도 사람이 사는 세상인지라 그 속에서도 각자의 삶의 재미는 있다. 또한 인간이란 본디 하지 말라는 짓을 하기를 즐기는 동물이라 너무 자유가 있는 곳에서 재미를 찾기보다는 제한된 곳에서 자유를 찾는 것에 대해 더 많은 희열을 느낀다. 아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갇혀있는 곳에서 자유를 만났을 때 그 환희에 대해서 말이다. 따라서 다음 편에서는 잘 설계된 도미노 같이 연결된 북한의 조직망에서 우리(남녀노소)가 어떻게 자유를 만끽했는지를 여러분에게 저의 경험을 토대로 실감나게 들려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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