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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조선시대인가? 한국재벌의 '부끄러운 민낯'

  • 허완
  • 입력 2015.07.30 10:30
  • 수정 2015.07.30 11:19

재계 5위인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 승계를 둘러싼 한국 재벌의 고질적인 ‘골육상쟁’이 또다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올해 초 일본롯데의 경영에서 물러난 신 전 부회장이 지난 27일 부친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앞세워 경영권을 되찾으려고 시도했으나, 동생인 신동빈 회장이 하루 만에 신 총괄회장을 지주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일선에서 퇴진시킴으로써, 분쟁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신동빈 회장은 29일 그룹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불안감과 혼란을 드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며 “롯데가 오랫동안 지켜온 기업가치가 단순히 개인의 가족 문제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롯데 안팎에서는 롯데홀딩스 대주주인 광윤사에 대한 두 형제의 보유 지분이 비슷해, 역시 광윤사의 주요 주주이자 창업자로서 상징성도 있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의중에 따라 언제든 분쟁이 재연될 소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처럼 한국 재벌이 창업자에서 2·3세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총수 가족 간에 경영권 승계나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골육상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재벌의 후진적 승계방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총수가 있는 10대 그룹의 경우 삼성 이건희-이맹희 회장 형제간 상속재산 소송(2012년), 현대 정몽구-정몽헌 회장 형제간 ‘왕자의 난’(2000년), 한진 조양호 회장 형제간 상속 갈등, 한화 김승연 회장 형제간 갈등(1990년대 초), 두산 박용오 회장과 나머지 형제간 분쟁(2005년) 등이 잇달았다. 롯데를 포함하면 10대 그룹 중 6곳에서 골육상쟁이 벌어졌다. 10위권 밖에서도 금호그룹 형제의 난(2009년), 씨제이 이재현 회장과 삼성 이건희 회장의 조카-삼촌 간 분쟁(1990년대 초),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과 케이씨씨 등 범현대그룹 간 경영권 분쟁(2003년), 태광 이호진 회장 오누이 간 상속 분쟁(2012년) 등이 잇달았다.

재벌 승계 분쟁은 총수 일가가 세습경영을 고수하면서도, 정작 2·3세에 대한 철저한 경영수업과 경영역량 검증을 통해 후계자를 선정하는 ‘합리적 승계 프로그램’을 등한시하기 때문이라는 데 분석이 모인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김기식 의원은 “재벌 창업세대는 과감한 투자와 뛰어난 리더십으로 기업과 경제 발전에 기여했으나 2·3세 이후에는 부모를 잘 만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능력에 대한 검증 없이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기업은 물론 경제 전체에 큰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독일 경제가 글로벌 위기 속에서도 강점을 보이는 원동력 중 하나로 꼽히는 1400여개 ‘히든 챔피언’(강소기업)의 상당수가 100년 이상씩 가족경영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로 합리적 승계 프로그램이 꼽히는 것과 대조된다. 세계 프리미엄 가전 1위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밀레는 두 창업가문별로 후손 수십명이 경합해 후보를 선정하고, 후보자는 다른 기업에 취업해 4년 정도 근무 과정을 거친다. 그 뒤 밀레에 들어와서도 1년 정도 일하면서 두 가문의 공동심사위원회의 최종 검증을 받는다. 공동 창업자인 칭칸 가문의 4대손인 라인하르트 칭칸 공동회장은 6월말 방한 기자회견에서 “창업자 자손이라고 경영능력까지 자동으로 타고나는 건 아니다. 자손이라도 후계자가 되려면 경영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벌 총수가 생전에 건강할 때 유능한 후계자를 선정하지 않고 사망하거나, 이미 건강이 크게 악화돼 정상적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태에서 뒤늦게 후계자 선정을 하는 관행도 골육상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2000년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 당시 85살의 정주영 명예회장은 판단이 오락가락했고,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도 올해 나이가 93살로 직접 경영을 하기에는 매우 고령이다.

재벌 총수가 절대권한을 행사하는 ‘황제경영’을 하면서, 전문경영인들이 후계자 문제와 관련해 합리적인 의견 제시를 하기 어려운 경영문화도 문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연구원의 윤승영 연구위원은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상속자들이 경영권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내부갈등을 벌여왔다”며 “이제 우리 기업도 독일 밀레처럼 합리적 승계 절차를 마련해 능력을 갖춘 후계자가 경영권을 이어가거나 이사회를 통한 간접지배를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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