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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만화가 김수용, 다시 춤에 대해 말하다

"얼마 전 종이접기 하는 김영만 선생님이 재규어 타는 게 박탈감을 준다고 기사가 나오지 않았나. 그런 기사가 나왔다는 자체에 화가 났다. 그분은 종이접기 분야에서 최고이고, 탱크를 타고 다니셔도 할 말이 없는 거다. 이런 분들을 인정 못하는 사회가 답답했다. 1세대 댄서 형님들도 재규어 타고 다닐 만한 분들이다. 박남정, 현진영 형님 같은 최고의 가수들을 돋보이게 해준 장본인들이고, 한국 대중문화를 이끌어나갔던 분들이니까. 한 번은 형님들과 술 한 잔 했는데 "나 20년 만에 도는 건데, 될까?" 하면서 지하철 지하도에서 윈드밀을 꽂아버리더라."

소외된 사람들의 꿈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 | 『젊음의 행진』의 김수용

90년대의 문화를 흡수하며 자란 세대,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듀스의 세례를 받은 세대에게 김수용이라는 이름은 각별하다. 그의 대표작 『힙합』은 통 큰 바지 입고 장판을 들고 다니던 많은 십대들의 춤 입문서이자 교본이었으며, 춤꾼들이 '한심한 양아치'로 폄하되던 시대에 시원한 '빅엿'을 날려준 청춘의 바이블이었다. 단행본이 15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출판만화의 마지막 황금기를 장식한 밀리언셀러이기도 하다. 『힙합』 이후에도 춤을 소재로 한 만화를 일관되게 그려왔던 김수용 작가는, 현재 8월에 오픈하는 웹툰 플랫폼 코믹스퀘어(http://www.comixsquare.com)에서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80년대 백댄서 출신의 아버지와 2015년 최고의 비보이가 된 아들의 파란만장한 운명을 다룬 드라마 『젊음의 행진』이 그것이다. 연재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를 수유동의 작업실, 스튜디오 지하(ZEEHA)에서 만났다.

『힙합』의 주인공 성태하(좌)와 바비(우). 이들이 한국의 비보이들에게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특히 바비는 모든 비보이들의 라이벌이자 우상이었다.

올해가 '스튜디오 지하'가 생긴 지 20년째라고 들었다.

김준범, 김종한 선생님 문하로 들어가서 처음 만화에 입문한 곳이 여기다. 또 대한민국의 유명한 만화가들 상당수가 수유동을 거쳐 갔다. 사실 이번 작품이 처음으로 선생님들과 같은 매체인 코믹스퀘어에서 하는 연재라 의미가 있다. 다른 작가에게 폐가 되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아마 그분들도 제자한테 창피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웃음)

한 화실이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져 오는 것도 상징적이고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작가가 열 명 있었는데, 그동안 그들의 문하생, 스태프들도 전부 작가가 됐다. 내 밑에서도 두세 명 나왔고. 그들이 모여서 '스튜디오 지하 2'를 만들었는데, '스튜디오 지하'에 몸담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게 무척 고맙다. 나중에 때가 되면 그 친구들과 같이 3대가 연재하면 어떨까 싶다. 그전에 김준범, 김종한 선생님의 스승이신 허영만 선생님부터 모시고 와서 4대가 할 수 있다면 더 좋겠고.

웹툰 플랫폼 '코믹스퀘어'에서 새로운 작품『젊음의 행진』으로 연재를 시작한 김수용 작가.

오랜만에 『힙합』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당시 이 만화를 보고 춤을 배웠다는 사람이 정말 많다. 특히 에이스, 바비의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 비보이들은 다 『힙합』에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바비라는 캐릭터를 너무 무림 최강고수로 만들기도 했지만, 당시 춤추는 친구들이 넘어야 할 라이벌이 바비였던 거다. 그때 어떤 자료에서 영국 비보이가 의자에서 윈드밀을 하는 걸 접하고 이거다 싶어서 바비한테 적용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국 비보이들이 의자에서 완전히 서커스를 하더라.(웃음) 어쨌든 바비가 그 친구들보다 잘 추게 그려야 해서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도록 했는데, 그 친구들이 또 그걸 다 해내는 거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기술은 쓰지 않았고 '너희들도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걸?' 하는 식으로 그렸다. 어떻게 보면 나도 바비라는 캐릭터를 플로어에 내보내서 비보이들과 배틀을 한 거지.

보통은 만화가 현실을 참조해서 약간 과장하기 마련인데, 참 독특한 케이스다.

지금 내 페이스북 친구의 절반은 만화 쪽이고 나머지 절반은 비보이들이다. 만화 그리다가 "헤드스핀 하이바 샘플이 필요해. 도와줘!" 하고 글 올리면 바로 날아온다. 모자나 티셔츠 같은 것도 "형님은 이런 거 받으실 자격이 있습니다" 하고 전국 각지에서 보내준다. 지금 입고 있는 것도 창원 비보이 팀이 보내준 10주년 기념 티셔츠다. 한번은 아주 유명한 친구 한 놈이 가정을 꾸린 다음 찾아왔는데, 비보이 되기까지 내 영향이 굉장히 컸다고 인사드리러 왔다더라. 세상에 나만큼 행복한 만화가가 있을까. 전국 비보이들이 다 내 편인 거니까. 이제 『젊음의 행진』으로 1세대 형님들까지 내 편으로 만들 거다.(웃음)

예전에 프로 댄서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그럼 만화와 병행했던 건가?

어머니가 한국무용학원 원장이셨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가가 꿈이어서 학원 한 귀퉁이에 앉아서 만화를 그렸다. 그런데 매일 보고 듣는 게 춤이었고 연습할 공간도 늘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으면서 춤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댄서들의 삶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SBS에서 개최한 경연대회에 나갔는데, 운 좋게 우승하면서 특채로 댄스 팀에 들어가게 됐다, 문하생 시절에. 만화 그리다가 "선생님, 저 방송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춤추러 가던 기억이 난다.(웃음)

신연재! 1세대 춤꾼 이야기 『젊음의 행진』

이제 『젊음의 행진』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오랜 기간 준비한 작품이라고 들었다.

모티브를 얻은 건 차기작에 대해 계획이 없었던 2004년이다. 그때 나는 한국에서 날고 기던 비보이들과 술 먹고 친하게 지내는 걸 내 인맥의 정점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미스터 칠드런(Mr.Children)이라는 일본 밴드의 『쿠루미(くるみ)』라는 뮤직비디오를 봤다. 음악을 그만두고 각자의 삶을 살던 밴드 멤버들이 중년이 되어 다시 뭉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걸 보고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도 그렇고 비보이 친구들도 나이를 먹을 텐데. 그리고 이 친구들 이전에 뭔가 액션을 취했던 선배들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우리 어머니도 한국무용을 하셨으니 어떻게 보면 선배님인 거니까.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보고 싶었다.

『젊음의 행진』의 주인공 마장식. 80년대에 백댄서로 활동했으나 오랜 세월 춤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인해 다시 춤을 추기로 결심한다.

그 시절의 선배님들을 많이 만나봤나?

80년대 1세대 형님들을 만나야겠다고 마음먹고 찾아보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지금은 다 은퇴하시고 딱 두 분만 밤무대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는데, 아직도 날아다니신다. 충분히 드라마가 나오겠구나 싶더라. UCDC(United College Dancing Club)라고 78년 대학 댄스연합의 초대 회장이었던 이성문 형님이라고 계신데, 이분이 요즘 다시 모임을 만들어서 그때의 전설을 계승, 발전시키려고 하신다. 그래서 나로서는 오히려 취재하기가 쉬워졌다.

은퇴한 분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

본인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하시는데, 후배 입장에서는 좀 안타깝다. 얼마 전 종이접기 하는 김영만 선생님이 재규어 타는 게 박탈감을 준다고 기사가 나오지 않았나. 그런 기사가 나왔다는 자체에 화가 났다. 그분은 종이접기 분야에서 최고이고, 탱크를 타고 다니셔도 할 말이 없는 거다. 이런 분들을 인정 못하는 사회가 답답했다. 1세대 댄서 형님들도 재규어 타고 다닐 만한 분들이다. 박남정, 현진영 형님 같은 최고의 가수들을 돋보이게 해준 장본인들이고, 한국 대중문화를 이끌어나갔던 분들이니까. 한 번은 형님들과 술 한 잔 했는데 "나 20년 만에 도는 건데, 될까?" 하면서 지하철 지하도에서 윈드밀을 꽂아버리더라.(웃음) 『젊음의 행진』 첫 화에 할아버지가 클럽에서 윈드밀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능하다는 검증을 거친 장면이라는 걸 기억해 주길 바란다! 몸은 기억을 하니까. 꼰대들이 클럽 왔다고 못마땅하게 보던 사람들이 그걸 보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런 걸 상상하면서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그 장면에서 윈드밀을 최대한 멋있게 묘사하려 했다. 열심히 춤 췄던 분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게다가 그때는 춤에 대한 모든 여건이 지금보다 열악하지 않았나?

『젊음의 행진』에도 나오는데, 길에서 두 명 이상 모여 있으면 데모꾼이라고 경찰서 끌려가서 두들겨 맞던 시절이었다. 댄서들의 주요 수입원은 밤무대밖에 없었다. 돈은 많이 벌긴 했지만 엄청난 중노동이었다고 하더라. 지금은 댄스스쿨도 많이 생기고 외국 유학도 가는데, 당시에는 춤을 배울 만한 곳도 없었다. 유일하게 배울 수 있는 통로가 비디오였고, 그것도 AFKN의 ≪소울 트레인≫ 같은 프로그램 기다렸다가 녹화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서 형님들이 "우리는 춤을 '뽀루꾸'로 배웠다"고 많이 얘기한다.(웃음) 그걸 많이 느끼는 부분이 팝핀(Poppin)이다. 우리 때는 팝핀을 할 때 하나같이 관절을 사용했다. 그게 화려하고 멋있어 보였으니까. 그런데 미국 가면 관절 대신 근육을 쓰라고 한다. 관절 쓰면 늙어서 고생한다고.

『젊음의 행진』 프롤로그에서 마이클 잭슨 차림으로 바비가 춤을 춘다. 십대 때 『힙합』을 보고 자란 세대로서 그 장면을 보고 살짝 전율을 느꼈다.

바비는 나에게 이현세 선생님의 까치 같은 존재다. 물론 작품에 바비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가 마이클 잭슨 옷을 입었다는 것 자체가 김수용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가늠해보라는 뜻이 되겠다. 그리고 선수들은 알아볼 수 있을 텐데, 거기서 바비가 모자를 던진 곳이 이태원에 있던 '문나이트'다. 일반인들은 출입 못하고 주한미군을 상대로 하는 클럽이었는데, 한마디로 춤꾼들의 성지였다. 나도 그곳 출신이다. 거기 가면 당대의 춤꾼들이 다 모여서 "쟤 좀 늘었네?" 하는 식으로 알게 모르게 서로 견제를 하곤 했다. 당시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형님, 현진형 형님, R.ef와 DJ DOC 등이다. 위로 올라가면 박남정 형님이 계셨고, 폐업하기 전의 마지막 세대가 피플크루다. 1986년으로 시대배경을 잡은 이유가 그때가 한국 댄스계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 해에 한국에서 남성무용단이 처음으로 등장했고, 이것저것 접목해서 만들어가던 시기였다. 그때는 댄스 팀이 아니라 무용단이라고 했다.(웃음) 이런 역사를 쭉 거슬러서 1986년부터 2015년까지 올라가보려고 한다.

춤추는 '사람'이야기, 『젊음의 행진』

여전히 김수용 작가에게 춤이란 여전히 제일 매혹적인 언어인 것인가?

춤은 내가 제일 좋아하고, 또 자신 있는 부분이다. 내가 가진 제일 강한 무기인 거지. 대한민국에 많은 작가 분들이 계시지만 춤 만화만큼은 빼앗기고 싶지 않다. 춤의 매력이라면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비슷한 것 같다. 춤이라는 단어 하나에 모든 희열과 서러움이 다 들어 있는데, 그걸 물려주고 가신 분이 어머니니까. 그렇지만 『젊음의 행진』은 춤 만화는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말하자면 춤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역사나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1세대 형님들이 주인공이지만 비단 그분들뿐 아니라 모든 중년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의 꿈 이야기다.

그렇다면 『젊음의 행진』은 일종의 판타지가 될지, 아니면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만화가 될지 궁금하다.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나도 40대 중반으로 접어든 지금까지 만화를 그리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꿈을 이룬 셈이다. 그렇지만 본의 아니게 만화계를 떠난 친구들도 주변에 있고, 피플크루에 있던 후배 녀석 하나는 세계적으로도 손색 없는 실력이었는데 지금 전혀 연관 없는 요식사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꿈을 갖고 있다가 놓아버리고 멀어진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가장으로서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들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청춘이라는 건 아버지 세대든 우리 세대든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만화를 보면서 그분들 마음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게 된다면, 나는 성공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글_최승우/매거진 <페이퍼> 기자

* 이 글은 에이코믹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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