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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 줄이자" 거꾸로 가는 선거제도 개편

  • 김병철
  • 입력 2015.07.30 06:08
  • 수정 2015.07.30 06:09
ⓒ연합뉴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축소하는 쪽으로 진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야 모두 의원 정수 확대에는 소극적이면서 지역구 의석을 늘리는 데 암묵적 공감대를 형성한 탓이다.

문제는 한국처럼 소선거구제를 기본으로 비례대표제를 부분 도입한 선거 시스템에서는 지역구 의석을 늘릴 경우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이라는 대의민주주의 선거제도의 근본 취지가 흔들리게 된다는 점이다.

한 선거구에서 최다득표자 한명만 뽑는 승자독식 소선거구 체제에서는 2위 이하를 찍은 표는 모두 사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게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인데, 그나마 있는 비례 의석마저 축소하겠다는 게 정치권의 태도다.

지난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현행 18%에서 33.3%까지 확대하는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정당의 권역별 득표율과 의석수를 최대한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논의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선관위의 의견을 반대하는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에서는 야권에만 일방적 이익이 돌아간다는 것과, 현행 비례대표제가 당권파의 권력 강화를 위한 ‘줄세우기 수단’으로 전락해 비례 의석수를 늘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선관위 안대로 선거제도를 설계하면 야권의 의석 점유율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역으로 새누리당이 그동안 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해왔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총선의 경우 새누리당은 정당투표를 기준으로 국민 42.8%의 지지를 받았지만 의석수는 과반(50.7%)인 152석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새누리당만큼은 아니지만 정당득표율(36.5%)보다 많은 127석(42.3%)을 얻은 현행 선거제도의 수혜자였다. 반면 정당득표율이 10.3%였던 진보정당(당시 통합진보당)의 의석점유율은 4.3%(13석), 득표율 3.2%의 자유선진당은 1.7%(5석)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당시 소수정당을 찍은 유권자 표의 절반 이상이 양대 정당에 고스란히 ‘무상 이전’된 셈이다.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정책보고서(‘그들은 왜 독일식 선거법 도입을 주창하는가’)를 보면,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의 일치를 통해 투표가치의 평등을 실현하고, 정당 중심의 선거운동과 투표를 통해 정당정치를 제도화하며,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을 활성화시켜 이념과 정책의 다양성을 높이고, 국민들의 정당 선택 폭을 확대한다”는 긍정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확대에 반대한다. 기득권 지키기 차원으로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현행 비례대표의 선출·운용 과정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선출 과정이 투명하지 못해 계파공천의 온상이 되거나, 이로 인해 선출된 뒤에는 계파정치의 전위부대로 활약하는 경우가 잦다. 비례대표 의원들이 ‘차기’를 보장받기 위해 본업은 뒷전인 채 지역구 찾기에만 골몰하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은 운용의 잘못을 개선해야 할 사항이지, 제도 자체를 축소할 근거는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비례대표 후보를 결정할 때 외국처럼 전국집행위원회 등의 추인을 밟아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새정치연합 혁신위원이기도 한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는 “당원 비밀투표나 다단계 검증 시스템, 배심원제 등 선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은 충분하다”고 했다. 일각에선 유권자들이 직접 정당이 내놓은 개방형 비례명부에서 선호하는 인물을 뽑도록 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문제는 현행 의원 정수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수를 늘리려면, 그만큼 지역구 의석수를 줄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지역구 감축의 주요 타깃이 되는 곳은 수도권보다는 비수도권, 도시보다는 농촌 지역으로, ‘정치적 대표성의 지역간 불균형’이라는 또다른 문제를 파생시킨다. 비례 의석을 늘리려면 의원 정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그래서 나온다.

이와 관련해 강원택 교수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의원 정수 확대 반대론이 50% 초반에 그친 것에 놀랐다. 몇년 전만 해도 70% 이상이었다”고 말해 여론이 바뀔 가능성에 주목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장은 “국민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가운데 여야 합의만큼 강력한 게 없다”며 정치권의 적극적인 설득 노력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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