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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할머니의 추억 | 서울의 집주인들을 생각하다

겨울 어느 날이었다. 하수도가 역류해서 넘치려고 했다. 내가 먼저 이야기하고 옆집이 올라가서 이야기하고, 사람을 불러서 고쳐달라고 해도 주인집 할머니는 듣지 않았다. 자기랑 거래하는 집수리 아저씨가 오늘은 오지 못한단다. 그래서 오늘은 안된단다. 물론 옆집에 사는 사람들과 전투력을 합세했다. 결론은 그럼 너희들이 불러라였다. 모두 씻고 나가야 했고 하수가 역류하는 상태로 집을 나갈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하수도 뚫음'이라고 쓰여 있는 찌라시를 보고 전화를 했다.

  • 윤현위
  • 입력 2015.07.29 07:45
  • 수정 2016.07.29 14:12
ⓒgettyimagesbank

난 원래 집이 인천이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우리집에 살았다. 세를 들어 살아본 기억이 없다. 세입자가 된건 복학한 뒤에 서울살이가 시작되면서부터다. 하숙집과 기숙사를 오가던 생활을 했던 나는 좀 더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필요했다. 집에다가 해달라고 할 수 있는 돈이 얼마 안됐다. 가능한 금액 중에서 구할 수 있는 월세방을 같이 사는 형과 찾았다. 400/25인 반지하방, 창문과 담장 사이의 간격이 넓어서 반지하임에도 불구하고 볕이 아주 잘 드는 집이었다.

우리는 이틀 전에 계약한 집에 계약금을 포기하면서까지 그 집에 들어갔다. 전에 살던 반지하는 반지하지만 한줄기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주인 할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여름에 따습고 겨울에 시원한 집이었다. 장마 때 내린 비가 방에 스며들어 머리맡을 적셨을 때, 이 집에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 구한 집은 대지도 높았고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첫 만남을 하고 바로 계약을 하기로 했다. 계약을 하고 보증금은 들어오는 날 드리겠노라했다. 그러자고 했다. 주인 할머니는 보증금을 가져오지 않으면 열쇠를 주지 않겠다고 했다. 이 말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삿짐을 싸서 집에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집에 일이 있어서 보증금을 부치기가 어려웠다. 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상황이 부치기가 좀 그랬다. 사정을 이야기하러 주인집 할머니가 사는 3층으로 올라갔고 후배들은 내 옷이랑 이불을 들고 눈을 맞고 서 있었다. 할머니는 냉정했다. 약속을 했으니 지키라는 거다. 그래 약속은 약속이지. 현금서비스를 여러 번 받아서 다시 집으로 왔다. 옷이며 이불들이 젖어간다. 돈을 드리니 옆에 있는 언니와 나누어 세고 다시 바꿔서 센다. 프로다. 참고로 방은 비어있는 상태였다.

집은 반지하에 네 집, 위에 두 집은 전세, 윗층은 주인집이다. 할머니 혼자 사셨는데 말을 하든 전화를 하든 주인집이란 표현을 썼다. 집은 정말이지 반지하 치고는 괜찮았다. 반지하의 관건은 아까 이야기한 담장과 창문과의 거리 그리고 환풍기다. 이 두 개가 궁합이 좋아야 곰팡이 폭탄을 면할 수 있다. 환풍기를 끄면 현관문을 타고 계속 물이 흘러나와서 환풍기를 계속 돌려야 했다. 주인집 할머니는 이것이 못마땅해서 틈이 날 때마다 전기를 아껴야 한다고 사람이 없을 땐 환풍기를 꺼야 한다고 말했다. 환풍기를 끄면 물이 흐른다고 이야기해도 그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 듣기 싫어하는 말은 듣지 않았다.

월세가 하루 이틀 밀린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땐 정말 큰 잘못을 한 것처럼 훈시를 들어야 했다. 벌어 시원찮았던 대학원생이니 진짜로 돈이 없을 때도 많았는데, 학교 근처의 하숙집 할머니들과 달리 이 주인집 할머니는 칼 같았다. 미리 사정을 이야기하면 당일에 9시에 와서 문이 부서질 것 같이 두들겼다. "아 이틀 전에 말씀 드렸는데 내올 모레....." 하고 말하면 "아니 오늘 날짜가 맞잖아? 아니야?"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준비가 안 되는 달이면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유리가 깨지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얼마나 두들기던지.

2009년 겨울 어느 날이었다. 하수도가 역류해서 넘치려고 했다. 내가 먼저 이야기하고 옆집이 올라가서 이야기하고, 사람을 불러서 고쳐달라고 해도 주인집 할머니는 듣지 않았다. 자기랑 거래하는 집수리 아저씨가 오늘은 오지 못한단다. 그래서 오늘은 안된단다. 물론 옆집에 사는 사람들과 전투력을 합세했다. 결론은 그럼 너희들이 불러라였다. 모두 씻고 나가야 했고 하수가 역류하는 상태로 집을 나갈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하수도 뚫음'이라고 쓰여 있는 찌라시를 보고 전화를 했다.

아저씨가 한참 뚫고 있는데, 주인집 할머니가 내려왔다. 이게 막힐 리가 없는데 아마도 내가 담배꽁초를 버려서 막혔을 거라는 거다. 나는 흡연자다. 그렇다고 자기집 욕실 물 내려가는 데다가 꽁초를 버리는 흡연자가 얼마나 될까? 주인집 할머니는 꽁초가 하나라도 나오면 수리비를 모두 나에게 내라고 했다. 내가 꽁초가 한 개만 나오면 그건 꽁초 때문에 막힌 게 아니지 않냐고 맞서 따졌다. 하지만 아무튼 꽁초가 한 개라도 나오면 나는 돈 안 낼 거니까 그것만 알아라는 말만 반복적으로 되풀이했다.

꽁초는 나오지 않았다. 옆집에는 긴 머릿결의 여인들이 세 명이 살았다. 그게 쌓여서 막힌 거란다. 모두 씻으러 들어갔다. 밖에 나오는데 아저씨는 가지 않고 주인집 할머니와 계속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요는 가격이었는데 주인집 할머니는 원래 거래하던 아저씨는 5만원인데 왜 7만원이냐는 거다. 아저씨가 부른 가격은 7만원이었다. 그 둘은 몇 십분 동안 서로 물러서지 않고 계속 싸웠다. 주인집 할머니는 만원짜리 다섯장을 흔들면서 씩씩 거렸고 아저씨는 손사래를 쳤다. 내가 다가가서 2만원을 건냈다. 물론 돈이 아까웠지만 그럼 싸움이 끝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만원을 건내자. 주인집 할머니는 삼만원을 나에게 획주고 자기 집으로 올라가버린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남겨진 두 남자는 다소 벙벙해했다. 창조적인 플레이였다. 5만원을 든 사내는 차에 올라탄다. 내가 아니다 싶어서 2만원을 더 드리니 차에서 내려서 인사를 한다. 두 남자가 서로 인사를 한다. 씁쓸하다. 하수도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날 저녁에 다시 만난 주인집 할머니는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된다로 시작하려고 했다. 애써 무시하고 지나가자 방까지 따라온다. 아주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렇게 계속 사세요. 저는 이렇게 살게요"

어느덧 삼년이 흘렀다. 갱신한 계약서에 적혀 있는 날짜에 나가겠다고 두 달 전에 말했다. 두 달이 지나도록 방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없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사할 날짜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주인집 할머니는 원래 방이 나갈 때까지 보증금을 주지 않는 것이 맞는데, 내가 특별히 그 날짜에 맞춰서 주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올라간다. "네 그러세요"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주인집 할머니도 뭔가 표정이 좋지 않다. 고맙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였을까? 그 이후부터 이사하는 날까지 할머니는 자기가 계약종료일에 보증금을 주었다는 말을 계속 되풀이했다. 어차피 들어온 날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이사를 했다. 우린 이 집을 구의하우스 시즌 1이라고 한다. 구의2동 어딘가쯤이다.

저는 "서울의 집주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려고 합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가구들의 절반 이상이 임차가구죠. 여러 사연이 있겠지만 딱히 책이라는 매체로는 많이 접해보지 못 한 것 같아서 세입자가구를 위한 책을 한번 쓰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사연을 받습니다. 세들어 사는 서러움과 부당함 이런 내용들을 적어서 보내주십시오. 책에는 인적사항이 기재되지 않습니다. 사연을 보내실 때에도 개인정보는 나가지 않게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사연을 기다리겠습니다. 사연은 geo0322@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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