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정치혐오'를 원하는 사람들

우리는 정치혐오가 나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치인들에겐 매우 좋은 것이다. 정치혐오 덕분에 유력한 경쟁자의 수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에게 "정치는 절대 하지 마!"라는 말이 애정 어린 덕담으로 건네지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정치혐오는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주는 철벽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늘 명백한 의도를 갖고 그러는 건 아닐망정 정치혐오를 증폭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과거 과자가 귀하던 시절 어린애들이 과자에 침을 퉤퉤 뱉어놓음으로써 자기 소유권임을 분명히 해놓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 강준만
  • 입력 2015.07.27 09:53
  • 수정 2016.07.27 14:12
ⓒ한겨레

"50대 아줌마 둘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울었다. 그것도 여의도 한복판에서 정치 얘기를 하다가... 휴지를 찾아서 코를 풀며 멋쩍은 웃음으로 분위기를 수습했지만 안타까움과 서러움과 분노가 치받쳐 자꾸 목이 메어왔다. 요즘 정치는 눈물이 날 만큼 비통하다."

지난 18일치 '이진순의 열림'에서 임미애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 대변인 인터뷰 기사를 감명 깊게 읽었다. 맞다. 울어야 마땅하다.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서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조성주 후보는 낙선 인사에서 "진보정치는 세상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이고 위로여야 한다"며 "어떻게 정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말로 그 마땅함을 역설했다.

그러나 우리는 울지도 않거니와 정치를 사랑하지도 않는다. 이젠 정치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조차 드물다. 아예 고개를 돌려 버린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선 '학습된 무력감'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그 무력감의 근원 중 하나는 정치에 대한 우리의 당위적 접근에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봄직하다.

정치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이어야 한다는 정의를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정의는 현실과 들어맞지도 않거니와 영원히 들어맞을 수도 없게 돼 있다. 최선의 정의를 내리고 나서 정치를 보기 시작하면 정치에 대한 좌절과 환멸은 불가피하다. 반면 최악의 정의를 내려놓고 정치를 보면 정치인들에 대해 한결 너그러워질 뿐만 아니라 정치개혁은 '머리싸움'이며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정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정치'를 놓고 보자면, 정치는 행정과 더불어 '사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에 불과하다. 이른바 '공공선택이론'의 논지이지만, 이 이론의 이념성을 따질 필요는 없다. 보통사람들이 그냥 술자리에서 거칠게 내뱉을 법한 "세상은 다 도둑놈 천지"라는 말을 점잖게 이론화한 것이 바로 공공선택이론이라고 해도 좋겠다.

정치인들은 어떤 이념과 노선을 표방하건 우선적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정치인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선거에서 패배하면 남의 이익을 위해 일할 기회도 사라지니 그런 이타적 행위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승리와 이익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 점에선 이타적 정치인도 이기적 정치인과 다를 게 없다.

우리는 정치혐오가 나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치인들에겐 매우 좋은 것이다. 정치혐오 덕분에 유력한 경쟁자의 수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에게 "정치는 절대 하지 마!"라는 말이 애정 어린 덕담으로 건네지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정치혐오는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주는 철벽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늘 명백한 의도를 갖고 그러는 건 아닐망정 정치혐오를 증폭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과거 국회에서의 몸싸움이라든가 지금도 심심하면 터지곤 하는 '막말 파동'을 수반한 정치인들 사이의 이전투구 등은 정치혐오를 키움으로써 그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준다. 과거 과자가 귀하던 시절 어린애들이 과자에 침을 퉤퉤 뱉어놓음으로써 자기 소유권임을 분명히 해놓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진순의 열림'에서 잘 지적되었듯이, 새정치민주연합은 '온라인 입당'과 '전자 서명'도 허용하지 않거니와 매우 복잡한 결재라인을 유지하는 등 "여전히 고색창연한 구텐베르크 인쇄기 시대의 유물로 남아 있다." 고원 서울과기대 교수는 새정치민주연합이 "탈권위, 소통, 참여라는 청년세대의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정작 정치적 동력으로 유인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왜 그럴까? 유능한 유권자들이 대거 입당해 잠재적 경쟁자들이 크게 늘어나는 걸 두려워하는 정치인들의 의식 또는 무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그렇다면 정당개혁은 정당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시스템 개조를 통해 내부 '시장 기능'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기성 정치권의 무관심과 무능으로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청년들이 대거 정당에 쳐들어가 정치를 원 없이 사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정치혐오 #정치 #정치인 #강준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