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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농성 지지는 업무방해를 방조한 것"(고법)

법원이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을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형법상 업무방해 방조 혐의를 인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노동계는 전두환 정권 때 신설돼 노동·민주화 운동 탄압에 악용되다 2006년 사라진 ‘제3자 개입 금지’가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부산고법 형사2부(재판장 박영재)는 22일, 2010년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벌인 25일간의 공장 점거 농성 지지 집회를 열고 농성장에서 지지 발언을 한 혐의(업무방해 방조) 등으로 기소된 당시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직 사업국장 최병승(39)씨한테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최씨의 ‘업무방해 공동정범’ 혐의가 1심에서 인정되지 않자, 2심에서 ‘업무방해 방조’ 혐의를 공소사실에 추가했다. 부산고법은 최씨의 업무방해 방조 혐의를 인정해 최씨가 1심에서 선고받은 벌금 300만원(건조물 침입 등)에 100만원을 추가했다.

26일 <한겨레>가 입수한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최병승은 비정규직지회의 상징적 인물로서 조합원들에게 상당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며 “최병승이 현대차 정문 앞에서 점거농성에 참가한 조합원들을 지지하는 취지의 집회에 참여해 사회를 보거나 기자회견을 열었고 농성장에 들어가 농성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 범행을 용이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지난 2010년 11월24일 새벽,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1공장 3층 ‘도어탈착 라인’을 점거한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비닐과 신문지에 의지한 채 잠이 들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05년 해고된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 최씨는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현대차의 불법파견과 부당해고를 인정하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2012년에 받은 바 있다. 앞서 1심은 “최병승은 금속노조 미조직국장으로서 비정규직지회의 임원은 아니었고 위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점 등을 고려하면 상징적인 인물로서 떠올랐다는 사정만으로 구체적인 업무방해 행위까지 지시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계와 법조계에선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인정 모두 이례적일뿐더러, 이 판결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이 위축되고 파업에 대한 연대·지원이 광범위하게 처벌받을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김지형 전 대법관은 “법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검찰은 웬만하면 방조 혐의를 동원하지는 않는다”며 “제3자 개입 금지 조항을 적용하는 것과 큰 차이 없지 않냐는 관점에서 대법원에서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제3자 개입 금지는 전두환 정부가 1980년 노동조합법·노동쟁의조정법에 신설한 조항이다. ‘사업장 밖의 제3자’가 노조 설립에 대해 조언하거나 파업 등의 쟁의행위를 지지·지원하는 행위를 금지·처벌해,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혔다. 유엔과 국제노동기구(ILO) 등의 폐지 권고가 끊이지 않았고, 2006년 12월30일 관련 조항이 삭제됐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지발언·기자회견만으로 처벌이 가능했던 제3자 개입 금지 조항과 유사한 이번 판결로 노동 3권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 강문대 위원장(법률사무소 로그)은 “이런 식이라면 민주노총·산별노조 위원장, 민변 변호사 등한테도 업무방해 방조 혐의가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짚었다. 최씨가 상고 의사를 밝혀 업무방해 방조 혐의 인정 여부는 대법원에서 다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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