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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계속 가라 | 김병지 인터뷰

그라운드에서 봤을 때 선수들이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감동하나? 잘할 때라기보다 열심히 할 때. 유럽에서는 그런 경기가 상당히 많다. 그게 프로페셔널이다. 종종 '즐기면서 축구하겠다'는 말을 듣는데 즐기면서 하는 축구는 이벤트 경기밖에 없다. 10경기에서 8~9경기쯤 이기는 극소수의 선수는 즐기는 축구를 할 수 있겠지. 경기는 절실하게 해야 감동이 팬들에게 전달된다. 져도 팬들이 박수를 쳐 주는 경기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

  • 박찬용
  • 입력 2015.07.27 05:59
  • 수정 2016.07.27 14:12
ⓒ연합뉴스

2014년 말에 남성잡지 <젠틀맨>에서 일하며 축구선수 김병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구단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에게 직접 연락이 왔다. 그는 내내 겸손하고 친절했다. 공을 남에게 돌렸고 자신의 지난 업적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본인의 성공을 표현할 때는 행운과 감사라는 말을 자주 썼다. <젠틀맨>에는 지면 분량으로 인해 편집된 부분을 넣어서 오늘 올린다. 이 원고를 적는 지금 그는 700번째 경기에 출전했다. 팀은 3:1로 승리했다.

인터뷰는 일상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꾸준한 천재의 일상이 궁금했다.

하루 일상이 어떻게 되나?

참 단순하다. 보통 7시에 알람을 맞춘다. 아이들이 그 시간에 학교를 가려면 다 일어나야 한다. 아내는 그 20분 전에 일어나고 내가 7시에 일어나서 아이들 학교 가는 거 보고, 식사는 보통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보통 10시~ 10시 30분 사이에.

아침은 구단에서 먹나?

경기에 참여하면 팀 스케줄에 따른다. 지금 이야기하는 건 일상적인 것이다.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면 아침을 먹고 나면 요즘은 드럼을 배운다. 아이들과 함께. 11시 30분에 준비를 해서 드럼 학원으로 간다. 약 1시~1시 30분까지 드럼을 배우고 숙소로 간다.

시즌이 아닐 때도 개인 훈련을 하나?

취미생활과 개인운동을 계속 한다.

하루에 운동은 몇 시간이나 하나?

보통 정해진 시간은 1시간 30분~2시간이다. (웨이트트레이닝?) 아니, 일반적인 훈련. 축구훈련. 단체훈련. 웨이트트레이닝은 필요하면 일주일에 2회 정도 하고 팀의 훈련 강도에 따라 조금 더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오후 한시까지 드럼 쳤고, 저녁때까지 훈련?

팀 훈련하고 숙소생활을 좀 한다. 그건 5~6시쯤 마친다. 계절별로 조금씩 달라서 지금은(인터뷰를 했을 때는 12월이었다. 김병지는 다운 재킷을 입고 왔다) 겨울이니까 조금 늦게 시작하고 일찍 끝낸다. 3시부터 운동하고 4시 30분에 마치고 씻으면 5시다. 그러면 이제 퇴근하는 거지. 그러고 식사 하고 시간 좀 보내면 요즘은 9시부터 아이들을 한 시간씩 뛰게 한다. 난 운동을 했으니까 자전거를 타고. 아주 추우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그러면 10시까지 운동을 하면 바로 자는 건가?

아니, 그러고 돌아와서 씻고 하면 이제 11시 반~12시 사이. 뉴스도 봐야 하고.

그렇게 23년을 쭉 지내 온 건가?

거의 그런 식이지.

생각이 평소에 많은 편인가 없는 편인가?

많은 편이다.

다음에 이어질 질문이 있었다. '23년 동안 똑같이 몸무게를 유지하고, K리그 최고령 출전자 기록을 세우고, 늘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679경기에 나갈 정도의 꾸준한 퍼포먼스를 내려면 평소에 생각이 많아야 할까 없어야 할까?'

많이 해야지. 하지만 생각은 많은데 생활은 단순하게 한다. '단순하게'라고 하면 쉬워 보이지만 하루를 단순하게 산다면 얼마나 좋겠나. 막 놀고 휴식하고. 도심에 살면서 밤문화 같은 걸 안 즐기고 사는 것도 힘든 일이다. 축구선수면 더 그렇다. 나 같은 경우는 또 운이 좋게도 젊었을 때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내 생활은 축구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내가 경남에 4년 있었는데 내가 고등학교 2년 동안 마산공고를 다녔기 때문에 친구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4년 동안 마산 시내를 한 번도 안 나갔다. 그렇다고 축구가 내 인생의 다는 아니다. 가족과 내 인생을 위해 축구를 하는 거지. 주요한 건 맞지만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축구 말고 다른 직업이었어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렇지. 그런 거다.

술과 담배를 안 하면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고 남자끼리의 대인관계는 어떻게 하나?

참 힘들지. 술, 담배를 안 할 수는 있는데 당신이 이야기한 대로 남자들 대인관계, 술자리에 가서 술을 한 할 수가 있느냐, 이건 더 어려운 거다. 정말 어렵다. "아 나 술 안 먹어." "나 한잔, 너도 한잔 해야지." "임마 이게 무슨 분위기냐." 이런 걸.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주변 사람, 선후배 친구들까지 다 그런 것을 이해해주고 도와 줬다. 예를 들어 친구들이 술을 먹으면 넌 사이다 마시라는 식으로.

지금이야 괜찮을 거라 쳐도 후배일 때도 괜찮았나?

어릴 때는 오히려 선배님들에게 강짜를 놨다. 저 절대 술 못 마십니다. 안 마십니다. 이렇게(선배) 됐을 때는 "술 안 마시는 거 알지~?"라는 식으로 넘어갈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선배님들이 후배의 주장을 받아준 것도 고마운 일이다.

축구 말고 다른 직업을 했어도 술 담배를 안 했을까?

했겠지(웃음). 은퇴를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 술을 마실 일도 있겠지. 지금은 내가 직업적으로 지켜야 할 것에 대해 선을 그어뒀을 뿐, 만약 내가 회사 생활을 했으면 술 담배를 했을 것이다. 그게 비즈니스와 연결되어 있다면.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참 힘들지. 여타 포지션과는 다르다. 일단은 겨울 시즌에 가족과 여행을 많이 간다. 국내 국외 가리지 않는다. 자유여행을 더 선호한다.

당신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사진을 찾아보니까 머리 모양의 디테일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단골 미용실이 따로 있나?

서울에 있을 때 가는 단골 따로 있다. 이름 말해도 되나? 김청경 소피아 선생이라고. 지금은 광양에 있는 미용실 다닌다. 한달 반에서 두달에 한 번씩 간다. 빠르면 한달에 한 번 갈 때도 있고.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계속 유지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

내 캐릭터니까. 많은 팬들께서 알고 계시고.

26일 전남 광양시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2015 K리그 클래식 23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 전반전에서 700경기 출장한 전남 김병지 골키퍼가 프리킥을 막아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에게 인상 깊었던 부분이 그 프로페셔널 정신이다. 당신은 각종 인터뷰를 통해 "프로선수는 이래야 한다" 혹은 "축구선수라면 이래야 한다" 혹은 "본인에게 스스로 감동을 주고 경기장에서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나름의 규칙을 밝혔다. 스스로의 규율을 만든 셈인데 이렇게 생각한 계기나 롤 모델이 있나?

프로 선수가 생각해야 할 게 여러 가지가 있더라. 첫째는 경기력. 선수니까. 그리고 팬들과의 관계와 구단 프론트와의 관계, 그 다음 또 중요한 게 스폰서와의 관계다. 스폰서는 내게 직접적으로 해주는 것도 있는데 리그를 통해 진행되는 스폰서쉽도 있다. 그것도 우리 '판'의 일부다.

나는 99년에 나이키 축구화와 장갑을 착용했다. 그런데 당시 케이리그 전체 스폰서가 아디다스였다. 유니폼도 아디다스 '츄리닝'도 아디다스 축구화도 아디다스를 신어야 했다. 아디다스 말고 다른 축구화를 신으려면 로고를 칠해야 했다. 그런데 축구화는 선수마다 선호하는 게 달라서 선수들이 각자 다른 브랜드를 신는다. 나는 전부터 나이키를 신었고 세계적으로도 축구화는 컨트롤을 하지 않는다. 그때 아디다스 말고 다른 축구화의 브랜드를 드러내면 경기당 30만원씩의 벌금이 부과됐다. 선수들은 난리가 났는데 나이키는 그때 벌금 예산이 편성되어 있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벌금을 내면서 끝까지 신었다. 그게 룰이니까. 벌금 제일 많이 낸 선수라고 기사까지 나왔다. 계속 벌금을 내니까 사유서를 내라고 했는데 그때도 다른 이야기 안 하고 "저는 이 축구화가 아니면 경기를 못합니다" 라고만 했다. 기존 스폰서와의 관계도 있으니까 벌금을 낼지언정 신는 게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때 연맹 분들도 "독한 놈" 이러지 않고 "네가 진짜 프로페셔널하다"라고 말해줬다. 그런 게 프로라고 생각한다.

팬들과의 관계도 그렇다. 물병 던지는 관객들이 종종 있다. 그걸 다시 던져서 벌금 냈던 선수도 있다. 나는 감사하게 물 먹는다. 그리고 나는 싸이월드부터 트위터, 페이스북까지 계정을 없앤 적이 한 번도 없다. 말실수 없이 소통을 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안티팬도 있지만 그런 분들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게 해준 것도 다른 팬 여러분들이었다.

SNS도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일상적이고 재미난 것들, 혹은 내가 21년 동안 술담배를 안하고 몸무게가 똑같다는 정도의 좋은 메시지가 될 수 있는 이야기만 올린다. 항상 그 범위를 지킨다.

그것도 프로페셔널의 일부인가?

그렇지. 만약 누가 내게 안 좋은 기사를 썼는데 그 기자에게 악감정을 담은 글을 쓰거나 인종이나 계층 등으로 차별하면 문제가 된다. 그런 건 확실히 중립적인 입장을 지킨다. 정치적인 이야기도 일절 하지 않는다.

평소에 내 행동 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인가?

고민만 한다고 해서 내 주관이 바뀌는 건 아니더라. 내가 가진 주관을 잘 정립하고 지혜롭게 판단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는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나? 그렇지 않아도 어록 중 멋진 말이 많다. '경남은 편견과 싸우고 있다'던지 '목표는 있어도 한계는 없다' 같은.

많이 읽으시는 분들께서 많이 계시겠지만 운동 선수 치고는 많이 읽는 편이다.

언제 읽나? 아까 일상 이야기 생각해보면 남는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그 남는 시간에 종종 책을 본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인가?

지금 <즐라탄> 읽고 있다. 작년에 지도자 교육을 받으면서 축구 감독들의 자서전을 좀 읽었는데 예전의 자서전과는 많이 다르다. 자서전은 맨날 최선을 다해라, 긍정적이어라 등 자기개발 책처럼 나오는데 요즘 자서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무링요, 과르디올라, 퍼거슨 등을 비롯해 자서전 같은 책은 거의 다 봤다. 최근 읽은 책 중에서는 <그래도 계속 가라>가 인상 깊었다. 조셉 앤 마샬이라는 사람이 썼는데, 젊은 청년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할아버지에게 가서 하는 이야기를 대화 형식으로 담은 책이다. 오, 감명 깊었다. 그래도 계속 가라.

팀의 김대호 선수(1986년생), 한유성 선수(1991년생)과는 각각 16살, 21살 차이가 난다. 이 둘을 제치고 주전 골키퍼가 된 게 경험 때문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본인만의 컨디션 조절 방법이나 체력 관리법이 있나?

경기를 뛰는 건 철저하게 경기력이다. 경쟁력은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젊을 때의 경쟁력이 힘과 스피드 같은 것이었다면 지금은 경험과 상황인식 면에서 우위에 있지 않나 싶다. 끊임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경쟁력을 이끌어내는 게 젊은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체력이나 회복력이 좋은 편인가?

타고난 건 없다. 인체의 어떤 면에서 딱히 벗어나지는 않는다. 단지 감사한 건 부모님께 건강한 몸을 물려받은 것이다. 그 다음은 관리다. 분명히 남들과는 다른 생활을 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생활이란 술담배를 안 하고 식단을 관리하는 것 같은?

꼭 하나라기보다는 운동에서부터 음식 먹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까지.

어느 인터뷰에서 좋은 골키퍼의 조건에 '위기관리 능력이 좋은 선수'라고 했다.

보통 한 경기에서 두 팀이 비슷한 수준으로 간다면 슈팅 약 10~15회, 유효슈팅 5개, 그 중 아예 결정적인 건 2~3개다. 이 2~3개를 막는 골키퍼가 잘 하는 키퍼다. 축구는 한 골 싸움일 때가 많다. 4:0일 때는 골키퍼가 할 일이 없지만 2:1 게임은 골키퍼가 뒤집을 수 있다.

수퍼세이브가 나오면.

그렇지. 그게 골키퍼의 매력이다. 당연히 키퍼라면 그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는 거고.

이 게임은 내가 뒤집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있지.

그때는 엄청 기분이 좋겠다.

좋지. 짜릿하다. 그거(골키퍼로 인해 게임 분위기가 뒤집혔다는 사실)는 그 경기장에 있는 모두가 확실히 안다. 비슷한 팀 사이에서 1:0 리드를 하면 수세에 몰리는 경우가 많다. 한쪽은 지키려 하고 한쪽은 지고 있으니까 막 몰아치고, 그러다 보면 이기는 쪽이 움츠리게 된다. 마음이 자꾸 움츠러든다. 지키면 이기니까. 그럴 때 결정적인 찬스가 온다. 이걸 막으면 이기는데 먹으면 비긴다. 여기서 골키퍼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2013년 K-리그 클래식 미디어데이에서는 후배들에게 조언으로 "꿈을 확실히 할 것, 훈련이나 경기에 열정을 쏟을 것, 무엇보다 본인에게 스스로 감동을 주고 경기장에서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선수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지금 당신의 의 꿈은 무엇인가?

구단주. 단순히 구단의 주인이 된다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이끌어가고 싶은 축구 팀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 팀은 어떤 축구를 하는 팀이 될까?

팬들에게 감동을 주고, 팬과 함께 할 수 있는 방향성을 가진 팀. 경기장 환경도 훌륭한 팀. 경기장은 내가 현장에서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50000명짜리 구장에 5000명 오는 것보다 4000명짜리 구장에 4500명이 오는 게 낫다. 지금은 각 구장이 다 너무 크다. 팬들이 꽉 차는 경기장이 좋다. 훨씬 더 재미있고 훨씬 더 낫다.

그라운드에서 봤을 때 선수들이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감동하나?

잘할 때라기보다 열심히 할 때. 유럽에서는 그런 경기가 상당히 많다. 그게 프로페셔널이다. 종종 '즐기면서 축구하겠다'는 말을 듣는데 즐기면서 하는 축구는 이벤트 경기밖에 없다. 10경기에서 8~9경기쯤 이기는 극소수의 선수는 즐기는 축구를 할 수 있겠지. 경기는 절실하게 해야 감동이 팬들에게 전달된다. 져도 팬들이 박수를 쳐 주는 경기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당신은 한국의 축구선수가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영광을 누렸다. 8개 구단 중 5개 구단이 외국인 골키퍼를 채용하던 시절도 겪었고 한국 스포츠 선수 중에서 가장 연봉이 높던 때도 있었고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입단 제의가 들어온 적도 있었고 국가대표로도 62경기 출전했고 K 리그 최고령 출장에 최다출장까지 기록했다. 그 중 가장 성취감이 큰 성공은 무엇이었나?

공격하는 골키퍼로 팬들에게 각인되었을 때. 내 이름 김병지와 내 별명 꽁지머리 중 팬들에게 더 크게 각인된 메시지는 꽁지머리다. 그게 폭발했던 때가 1998년에 헤딩 골을 넣었던 때고. 공격하는 골키퍼, 꽁지머리, 이건 축구 선수로의 내 스토리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700경기 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난 다음 목표도 생각해본 적이 있나?

하 글쎄. 그 이야기를 하는 순간 경쟁자들이 긴장할 것 같다.

그런데 어차피 700경기까지 도전할 만한 경쟁자는 없지 않나?

사실 700이라는 숫자를 채우기는 힘들거든. 한 번씩은 후배들과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 기록 깨질까? 안 깨진다고 한다. 그러면 내가 말한다. "야, 나는 했는데 왜 안 깨져. 나처럼 하는 선수가 나오면 깨지는 거지" 라면서 계산을 해 본다. 20세부터 경기를 뛰어서 700경기를 뛰려면 43~44세까지 평균 30경기를 계속 뛰어야 한다. 그런데 20세에 프로팀 와서 30경기 뛰는 실력을 갖추기 쉽지 않다. 그것도 힘든데 36세쯤 되면 30경기 뛰는 게 엄청 힘들다. 그게 더 힘들다. 그러다 보면 현실적으로 힘든데 나는 했잖아. 그게 딜레마다. 된다 안 된다.

당신이 워낙 보통 선수가 아니어서 그랬던 것 아닐까?

그런 선수가 또 나올 수 있지.

사실 축구선수가 아니라 일반 회사원도 23년 동안 현업에서 일하면서 자기 컨디션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함께 사회생활을 하는 40대에게 건네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

나도 사실은 은퇴했을 나이다. 직장인들은 보통 40대쯤부터 명퇴다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운동선수들은 그걸 조금 더 빨리 겪는다. 그 사이에서 남으려면 젊은 세대 앞에서 저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 저력이라는 게 나이에서만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분명 자기개발을 끊임없이 해야 하고, 각각의 위치에서 자기가 가진 경쟁력을 끊임없이 끄집어내야 하는 것 같다. 경쟁력은 단지 내가 보낸 시간이나 내 나이가 아니다. 정말 젊은 세대가 못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그걸 끄집어내야만 그 자리를 지키고 또 자기 역할에서 충실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는 겸손하면서도 자아가 크고 곧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직전에는 이런 말이 녹음되어 있었다.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녹취록을 그대로 옮긴다.

"(축구)거기에 대한 포커스는 사실 제가 하는 일이니까 맞춰진 거거든요. 사실 그거(축구)는 별개의 문제에요. 제 인생 스토리인 거지. 그 다음에 자기관리도 제 인생을 위한 준비인 거지 꼭 축구기 때문에 되는 거는, 축구 선수이기 때문에(뭔가를 했던 건 아니에요). 제가 만약에 야구를 했다면 야구에 대한 스토리 내 인생에 대한 스토리를 쓰는 거지. 지금 뭐 기록을 깼다고 해도, 제가 뭐 K리그의 역사를 깨기 위해서 인생을 살아온 건 아니거든요. 제 인생의 역사를 써나가다 보니까 말씀하신 대로 (몸)관리를 계속하는 거, 오래 선수생활 하는 거고. 이런 게 다 포괄적으로 다 K-리그의 역사도 되고 국가대표의 역사도 되고 또 제 인생의 역사가 되는 것 아닐까요."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김병지의 말처럼 '그의 인생의 역사'에 축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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