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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고개를 묻고 얻어먹는 밥: 용산역 노숙촌(하)

  • 김병철
  • 입력 2015.07.26 13:06
  • 수정 2015.07.26 13:08

[토요판] 르포

박유리의 서울, 공간 ③ 용산역 노숙인촌(하)

비가 오락가락한 지난 20일 꽁지머리 아저씨가 서울 용산역 뒤편 공원에 설치된 텐트에 앉아 있다. 지난 5년간 태풍이 와도 무너지지 않은 텐트라고 했다. 깊게 뿌리내린 공원의 소나무가 거센 바람을 막고 텐트 아래에 깔린 합판, 텐트 위를 덮은 비닐돗자리 등이 비를 막는다. 아저씨는 매일 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여기서 잠이 든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서울에 스며든 그림자를 바라봅니다. 서울의 얼굴이 되지 못한 뒤안길을 따라갑니다. 도시의 밤을 걸어봅니다. 이 도시에 깃든 고독과 꿈, 그리움과 우울, 따스함과 설움, 사랑과 고립을 그리려 합니다. 세번째로 서울 용산역 노숙촌을 찾았습니다. 남의 집 골목길에서 밥을 얻어먹었습니다. 식당 유리문 밖에서 밥을 먹으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을 훔쳐보았습니다. 언제나 문밖에서 살아내야 하는 자들의 시간은 떠도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 갇힌 삶일지도 모릅니다.

“밥을 그렇게 남기면 안 돼요. 먹을 만큼만 떠야 해요.”

서울 용산역에서 10분을 걸어 도착한 어느 주택가 좁은 골목길에서 한 손에 식판을 들고 다른 손으로 숟가락을 쥐고 밥을 먹었다. 젓가락은 들 수 없었다. 남의 집 앞에 두 발을 딛고 서서 왼손으로 식판을 들면 오른손으로는 숟가락만 잡을 수 있다. 장마가 온다고 했는데 마른하늘에서 내리는 햇빛은 길을 축이지 않았다.

16일 낮 열두시 십오분. 다세대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길에 자리한 ㅎ교회에서 밥을 나눠주는 시간은 점심 12시다. 철 지난 옷이나 한여름에 가을옷을 입은 노숙인이 땅바닥에 식판을 놓고 앉아 두부를 한 숟가락 뜬다. 어떤 사람은 골목 어귀에, 또 다른 사람은 골목 구석에, 누구는 길에 붙은 다세대주택에 딱 붙어 앉아 밥을 먹는다. 길에 놓인 두 개의 탁자를 차지한 사람은 거기에 식판을 올려놓고 서서 밥을 먹는다. 누구도 말을 하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고개를 묻고 얻어먹는 밥

식판에 고개를 묻고 한 숟가락 입에 넣어 주위를 둘러봐도 다들 먹는 데 집중할 뿐이다. 간혹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면 낯선 눈빛을 주고받다 어색해서 눈길을 돌렸다. 재빨리 먹고 식판을 돌려주고 이 골목을 떠야 한다. 밖에서 얻어먹는 밥은 그런 것이다. 대화도, 생각도, 느낌도, 상념도 들지 않는다. 혼자 먹는 밥이든, 누구와 먹는 밥이든 밥에는 느낌을 가진 내가 있다.

빡빡한 오후 일정을 걱정하며 허겁지겁 먹는 나도, 재미없는 사람과 대충 고개 끄덕이며 먹는 나도, 박장대소하며 웃느라 입에서 밥알이 튀어 나가는 나도, 혼자 앉아 고독하게 먹는 나도 그 안에 나름의 내가 있는 것이다. 길 위에서 한 손으로 밥을 먹으면, 나 자신이 사라진다.

입에 밥알을 집어넣고 삼킬 수 있을 때까지 수차례 잘게 씹어 식도로 넘기는 행위가 반복된다. 고행처럼 오래 길을 걸으면 자존심도, 욕심도, 계획도 사라지고 길 위에 두 발로 딛고 길을 걷는 존재로서의 나만 남게 된다. 길 위에서 숟가락을 뜨면 먹는 존재로서의 나만 남겨진다. 외로움도, 쓸쓸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골목길에 남긴 음식물을 버리는 고무대야가 있다. 허리를 숙여 식판에 남은 음식물을 숟가락으로 긁어 버릴 때 누군가 말했다. “이렇게 많이 남기면 안 돼요.” 고개를 들어 보니 밥을 주는 교회 사람이다. 맞는 말이다. 내가 남기지 않았으면 다른 노숙인이 먹을 소중한 밥이다. 돈을 내지 않고 먹는 밥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주는 밥이 아니다. 화폐를 지급하지 않는 대신 약속과 의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먹을 만큼만 떠야 하는 의무, 다 먹어야 하는 책임, 남의 골목길에 눈치 없이 오래도록 먹으면 안 된다는 암묵적 약속. 돈을 주고 샀다면 지지 않아도 될 책임과 의무다. 밥을 먹다 버리니 한 남자 노숙인이 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돈 표시를 하며 내게 말을 건넸다. “이거 주는데 다른 교회 예배 따라갈래?” 교회에서 노숙인에게 500원, 1000원씩 주는 ‘짤짤이 코스’를 따라가자는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골목을 떠났다.

밥을 먹고 식당이 즐비한 용산 아이파크몰로 올라갔다. 유리문으로 닫힌 식당 안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밥을 먹으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맞은편 좌석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고급 식당도 아니었는데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놓고 안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은 다가설 수 없을 세상처럼 저 멀리 있었다.

나는 바깥에 갇혀 버렸다. 어딘가에 갇히는 일은 공간의 내부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어디서나, 언제나, 유리문이나 철문, 대문 밖에 영원히 서 있어야 하는 시간.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밖에 남겨진 자들은 떠도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 갇힌 것이다. 어쩌면 삶의 균형과 안정감은 끊임없이 공간의 바깥과 안을 드나들고 문과 문 사이를 통과하며 느끼는 정서 아닐까.

용산역 뒤편 공원이자 고가도로 아래에 자리한 금테 안경 아저씨(오른쪽 뒷모습)와 사탕을 나눠 먹는 친구 노숙인(왼쪽 모자 쓴 이)이 지난 16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유리 기자

동정 또한 안에서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허름하고 누추한 공간일지언정 안이 아닌 밖에서는 동정을 받을 수 없다. 거리에서 술을 마시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소릴 듣는다. 담배를 피우면 담배 살 돈은 있으면서 공짜 밥을 먹느냐고들 한다. 안에 들어갈 수 없다면 보이지 않는 공간에 있기를 요구받는다.

빚으로, 도박으로, 가정불화로, 술 중독으로 거리에 나왔으니 동정을 바라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살아가고, 자기 입장에서 슬픔과 고통을 말하고, 자기 입장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해석하는데 밖에 사는 사람은 누굴 원망해서는 안 된다. 객관적이길 바라지만 누구도 객관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데, 객관적이길 요구받는다.

사탕 나눠 먹는 금테 안경 아저씨

오후에 용산역 뒤쪽 노숙인들의 텐트와 박스집이 있는 이름 없는 공원으로 돌아왔다. 내 텐트가 있는 곳이며 어제 도망쳤던 곳이다. 어느 노숙인은 술에 취해 내게 술을 사 달라고 요구했고, 거절하자 “요즘 유튜브에서 사람 죽이는 동영상을 보고 있다”고 했었다. “인생이 자포자기”라고도 말했다.

다시 찾은 노숙촌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금테 안경을 끼고 삭발에 가깝게 머리를 짧게 깎은 아저씨가 의자에 앉아 타블로이드 주간신문을 읽고 있다. 곁에 가서 말을 붙였다. “나, 인터뷰 안 해. 2년 전인가 기자가 찾아와서 응했는데 기사에 나오지도 않던걸.” 고개를 휙 돌렸던 금테 안경 아저씨는 할 일 없이 노숙촌을 뱅뱅 도는 내게 말을 붙여준다. “아까 봤어. 점심때 밥 나눠줄 때 먹는 거.”

금테 안경을 낀 아저씨는 인생사를 쭉 이야기해줬다. 결혼하려던 여자친구가 사채를 쓰다가 자살을 했고, 따라 죽으려 다량의 수면제랑 술을 먹었는데 술을 전혀 못 마시는 체질이라 다 게워내는 바람에 살아났고, 그 뒤에는 대충 막살았고, 아이엠에프(IMF) 때 보증 잘못 서서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막노동을 하다 허리를 다쳤으며, 쪽방을 전전하다 거리에 나앉았다는 이야기였다.

나이는 마흔아홉, 우씨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금은 이 삶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했다. 아저씨는 주운 고물을 팔아 담배를 피운다. 밥은 배급소에서 먹고 잠은 박스 안에서 자고 빨래는 노숙인을 도와주는 각종 단체 건물에서 한다. 어딜 가고 싶으면 걸어다닌다.

“익숙해지는 거, 그게 문제지. 독하게 마음먹었으면, 어떻게라도 했으면 이 생활을 벗어났겠지요. 그런데 노력해서 뭘 해. 더 나갈 수 있는 곳이 뻔한걸. 쪽방촌이나 고시원. 거기서 또 이리로 오게 돼 있어. 그거 알아요? 그래도 내 집이 있다는 게 참 좋아요. 어딜 다니다가도 여기 박스로 돌아와 쉬어. 돌아갈 곳이 있잖아요.”

노숙촌에서도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만 말을 주고받는다. 내 텐트 옆집에는 소설가 이외수처럼 긴 머리를 가지런하게 묶은 꽁지머리 아저씨가, 그 옆집은 밤마다 판타지 소설을 읽는 아저씨가 살지만 두 사람은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판타지 소설 아저씨는 역사나 족보 이야기만 하는데, 꽁지머리 아저씨와는 성향이 맞지 않는다. 술을 먹지 않는 금테 아저씨는 술·담배를 하지 않는 옆집 아저씨와 사탕을 나눠 먹는 사이다. 두 사람은 술을 마시고 주정을 부리는 노숙인들이 마땅찮다.

“지독하게 술 마시는 사람은 서울역에 가야 해요. 서울역이 딱 맞아. 용산역은 영등포나 서울역과 달라요. 비교적 조용하잖아. 그리고 그 사람들 불쌍하다고 생각해선 안 돼요. 저 사람들에게도 기회는 있었다고. 놓친 거지요.” 아저씨는 노숙인들도 역마다 성향이 있다고 했다. 노숙인이면서도 노숙인을 동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내 운이야 바닥까지 갔는데 더 나빠질 게 없잖아.”

아저씨에게 질문을 했다.

“아저씨는 돈이 뭐라고 생각해요?”

“옛날 같았으면 뭐든 해주는 만능이라고 생각했겠지요. 기를 쓰고 돈 벌려는 사람 보면 우스워. 돈 벌면 뭐해.”

“지금도 자살할 생각 해요?”

“지금은 아니. 여자 죽었을 때부터 십년 동안 생각이 났었지. 이 생활 하면서 한 놈 알게 됐는데 정신이 오락가락해. 걔는 지방에 와이프하고 자식새끼하고 같이 운전하고 가다가 사고나서 지만 살아남았대. 어떨 땐 멀쩡한데 어떨 땐 이상해. 그런 거 보면 위안을 삼아요. 쟤는 나보다 더 힘들구나.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

“아저씨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행복? 잘 모르겠네. 행복이 뭐지? 생각해본 적 없는데. 생각이 없어져. 이 생활을 하면 생각을 할 수가 없지.”

“생각이 없어져요?”

“바깥에서는 늘 긴장하고 살잖아. 그럼 생각을 할 수가 없어.”

전선 피복을 잘라내 실가닥 같은 동만 따로 수거하고 있던, 금테 안경 아저씨의 친구가 옆에서 끼어든다. 금테 안경 아저씨의 친구도 고물 수집을 한다. “사람이 제일 무섭잖아요. 누가 나한테 어떻게 할지 모르고.”

어제 나는 술을 사달라고 하고 사람 죽이는 영상을 본다고 말하던 어느 노숙인에게 두려움을 느끼며 도망쳤었다. 오늘 만난 노숙인도 거리에서의 삶이 무섭고 긴장된다고 했다.

서성거리다 발길을 돌리다

내 텐트 설치를 도와준 꽁지머리 아저씨는 성공회가 노숙인들의 재활을 돕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공공근로를 한다. 일주일에 세 번씩 그곳에서 12시간 동안 노숙인을 안내하고, 구조를 요청하는 노숙인을 돕는다. 노숙인에게 일자리를 주는 공공근로를 하면 세금을 떼고 한달에 94만원을 받는다. 최장 10개월까지 일자리가 주어진다. 신청하는 노숙인이 모두 공공근로를 할 수는 없다.

도박 빚을 지고 사채에 시달리던 꽁지머리 아저씨가 용산역에 온 2010년 5월부터 많은 일이 있었다. 말소된 주민등록을 살리고, 파산신청을 통해 빚을 탕감받고, 용산역 국숫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시서기센터에서 공공근로를 했다. 꽁지머리 아저씨는 내년에 용산역을 떠나 월셋집을 얻으려고 준비중이다. “노력하는데도 워낙 기본이, 밑바탕이 없으니까 위로 올라가려면 힘들죠. 또 몇 개월 놀면 홀라당 까먹게 되고.”

만약 그가 내년에 월셋집을 얻는다면 밖에서 안으로의 삶으로 돌아가기까지 6년이 걸린 셈이다. 이곳을 떠나면 다시 올 것이냐고 물었다. “한두 번 오겠지만 그 뒤로는 안 오는 게 맞겠죠. 여기 살다가 방이라도 얻어 나가는 사람들 몇 번 온 적 있었는데 사람들이 원하지 않더라고. 함께 있을 때, 같이 이 생활 할 때 어울려도 흠이 없잖아. 떠난 사람에게 이렇게 생활하는 거 보여주고 싶지 않다더라고.”

꽁지머리 아저씨는 한 텐트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 참 특이해. 술 인심, 담배 인심은 좋지. 술 몇 잔 먹으면 금방 친해져. 그래도 자기 속에 있는 이야긴 안 해요. 왜 여기 왔는지도. 누가 돈이 좀 생기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얻어먹으려고. 돈 떨어지면 언제 봤냐는 듯 사람들이 흩어지고. 나만 교회에서 주는 밥 안 먹고 여기서 음식 해 먹잖아요. 시장에서 뭘 사서 비닐봉지에 담아 걸어오면 다들 눈동자가 봉지에만 꽂혀. 그럼 눈을 안 마주치고 직진해서 내 텐트로 온다고. 여기 20명이 넘게 사는데 어떻게 다 먹여요. 일종의 충격요법도 있지. ‘너희들도 일을 해서 먹어라.’”

가난을 넘어선 무산자들의 관계는 주머니처럼 빈곤했다. 2년을 보장받는 전세 같은 관계가 아니다. 8000원을 내고 하룻밤을 자도 그다음날 나오게 되는 일세방, 오늘 여기 땅을 점해도 내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지 모르는 노숙처럼 불안정한 관계 위에 살아간다. 이미 가족들에게 한 번 외면당한 사람들이다. 그날 밤 서울역으로 꽁지머리 아저씨의 공공근로를 따라나섰다.

나흘 뒤인 20일 다시 노숙촌을 찾았다. 주말에 잔뜩 비를 맞은 내 텐트는 물이 한강이다. 아저씨와 텐트를 철거해 그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용산역 국숫집에 맡겨 놓았다. 용산역 마트로 나가 물건을 사는데 꽁지머리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노숙촌에서 거의 유일하게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 “국숫집에 텐트 그대로 있데. 아직 안 갔어?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다시 오지 마. 그리고 잘 지내.” 내가 그를 귀찮게 해서일 수도 있고, 안에서 사는 내가 그곳에 있을수록 밖에서의 삶이 더 강렬하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나는 그에게 왜냐고 묻지 않았다. 사탕을 좋아하는 금테 안경 아저씨와 나눠 먹으려고 봉지사탕을 사고 있었는데 선반에 다시 올려놓았다. 마트를 나와 택시를 타고 회사로 들어갔다. 내게 집이 아니었던 물에 젖은 텐트는 회사에 놓아두었다. 해가 지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왔다. 누군가의 삶으로 다가가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고 바깥에서 서성이기만 했다. 나에 대한 한심함과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안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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