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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을 뚫고 산양이 모습을 드러냈다(사진, 동영상)

[토요판] 생명

야생동물 탐사단의 울진 산양 흔적 조사

▶ 500여마리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 산양의 적은 ‘폭설’과 ‘인간’입니다. 지난 16일 환경부 조사 자료를 보면, 설악산 산양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오랫동안 폭설 속에 갇힌 산양을 구조·방사하면서 251마리까지 늘었지만, 울진·삼척(68마리), 월악산(61마리), 오대산(36마리) 등의 산양은 아직 자체 존속 가능 개체군인 100마리를 밑돕니다. 녹색연합 야생동물 탐사단의 산양 흔적 조사에 동행했습니다. 산양은 똥으로 지금 당신 옆에 웅크리고 있다고 증언합니다.

“야생 산양을 몇 번이나 봤어요?”

“음… 두 번이요.”

단 두 번을 봤다. 녹색연합의 한만형 활동가는 2012년부터 3년째 경북 울진에서 산양 보호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운전하는 차량의 뒷좌석에는 ‘녹색연합 야생동물 탐사단 6기’가 타고 있다. 김진영(33), 김수빈(24), 김효정(24), 송윤지(21), 이효정(21)씨. 산양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는 말을 이들도 들은 터였다. 2010년 울진에 내려와 보호활동을 벌인 배제선 활동가도 딱 네 번을 봤다고 했다.

지난 22일 ‘똥냄새나 실컷 맡고 오겠지’ 하고 기대를 않고 떠난 야생동물 탐사단의 흔적 조사가 끝나갈 무렵 산양이 나타났다. 이날 오후 경북 울진군 두천리 금강소나무 숲길에서 목격된 산양.

위성위치추적장치가 알려준 비밀

야생동물 탐사단은 지난 21일부터 29일까지 울진과 강원 삼척의 주요 산양 서식지를 돌며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기존에 설치한 무인카메라를 수거해 사진과 동영상을 확인하고, 산양의 똥자리와 뿔질 등 흔적 조사를 하는 활동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산양처럼 등산로 없는 산을 타는 것이다.

22일 아침, 첫 산양 탐사를 위해 울진 북면 두천리로 가는 길이었다. 산림청이 조성한 ‘금강소나무 숲길’ 임도를 따라 올라가 찬물내기 계곡에 도착했다. 산양은 절벽을 좋아하므로 절벽을 타고 올라갔다. 산양처럼 네발을 사용해 기어올라갔다. 내 코와 지면 사이의 간격이 1미터 아래로 떨어진 적이 많았다. 겨우 미끄러지지 않고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섰다. 녹색 산을 마주하고 졸졸 계곡물 소리가 밑에서 올라오는 곳. 거기 산양의 똥자리가 있었다. 절벽을 등지고 산양이 똥을 눈다. 기막힌 절경을 감상하며 똥알을 톡톡 내쏜다. 똥알을 만져봤다. 얼마 안 된 것은 물렁물렁하고, 오래된 것은 도토리처럼 딱딱하다. 똥알의 크기가 다르다. 굵은 똥알 더미 옆에 작은 똥알 더미가 쌓여 있다. 배제선 활동가가 나름의 추리를 내놓았다. “지난해 5월 새끼를 낳았을 거야. 이건 어미 똥이고 그 옆은 한 살짜리 똥이야.”

산양은 똥으로 말한다. 야생동물 탐사단은 똥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미국의 과학수사대(CSI)만큼은 안 되지만, 똥 조사에도 기본은 있다. 똥알의 크기를 재고, 똥알의 수를 세고, 똥자리의 위치와 면적을 기록한다. 탐사단의 맏언니 김진영씨가 줄자를 대고 소리친다.

“큰 거는 1.8(센티미터), 작은 거는 1.2!” “북위 37도0분50초, 고도는 602미터!” “음… 180개?”

광화문 집회 참여자 집계에도 논란이 있듯, 똥알의 수에서도 이견이 갈린다. 시위대의 인원수를 세는 것과 산양 똥을 세는 방식의 원리는 같다. “이만큼 면적이 100개라 치고, 총면적에 몇 개가 있나 계산해봐.”

탐사단은 두천리 북쪽 능선(지도상 ‘아구지맥’)을 타고 걸어갔다. 산양은 안 보이는데 똥자리는 계속해서 나타난다. 능선은 ‘산양 고속도로’였다. 똥자리가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나타났다. 전망 좋은 곳일라치면 산양들은 똥을 누었다. 똥자리를 보면 잠시나마 쉴 수 있으므로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숨을 헐떡이고 있으면 탐사단원들은 줄자를 꺼내 똥자리의 너비를 재고 똥알을 셌다.

녹색연합 야생동물 탐사단원들이 지난 22일 울진군 두천리에서 산양 똥자리의 면적을 측정하고 있다.

산양은 똥을 일정한 장소에 눈다. 똥이 있다는 얘기는 주변에 산양이 있다는 얘기다. 2012년 초 산양 새끼 암수 한쌍이 눈밭에 파묻혀 오도 가도 못하다 구조되어 이듬해 6월 방사되었는데, 위성위치추적장치(GPS) 목걸이를 달고 나간 둘은 우리가 모르는 여러가지 ‘산양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첫째, 산양의 행동권역은 불과 1㎢ 남짓이라는 것. 즉, 장거리 여행을 좀체 하지 않는 ‘방콕족’으로, 게으르거나 소심한 녀석이라는 뜻이다. 더불어 야생동물 탐사단이 고속도로를 행군하고 있을 때, 분명 가로세로 1㎞ 안에 산양이 숨죽이고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사람의 눈에 띄진 않은 걸까? 이튿날 조재운 박사(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가 내놓은 설명은 이랬다.

“맞아요. 산양이 있었겠죠. 근데 평야와 달리 산의 1㎢는 주름이 있어서 좁지 않아요. 계곡이 들어가고 은신할 수 있는 바위도 들어가고….”

공간은 입체적일수록 넓어진다는 얘기다. 울진의 산은 주름이 많다. 사람 소리가 들리면 소심한 산양은 나무 뒤, 바위 밑, 계곡 속의 주름으로 숨는다. 산양이 보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둘째, 그럼에도 산양은 필요할 때엔 장거리 여행을 한다. 방사된 암컷은 울진에서 반년 동안 불규칙하게 어슬렁거리다가 2013년 12월 무려 11.6㎞를 걸어서 봉화군 석포면의 한 산에 이르렀다. 그때야 이놈은 자리를 잡고 1㎢ 남짓의 행동권역을 보여주었다. 조재운 박사가 말했다.

“보통 구조된 산양들을 원래 살던 곳에 방사하면 2~3일 내에 자리를 잡거든요. 그런데 얘네들은 너무 어려서 바로 돌려보내지 않고 1년 반이나 구조센터에서 돌봤어요. 암컷은 너무 어려서 구조됐기 때문에 나중에 돌아가서도 (고향을) 잘 몰랐던 거 같아요. 왔다갔다하다가 (새 서식지를 찾아) 봉화 쪽으로 넘어간 거죠.”

산양 때려잡기 성행하던 1960년대

소풍 온 사람들이 돗자리 깔기 좋게 생긴 빈터가 나왔다. 녹색연합은 2013년 이곳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했다. 한만형 활동가가 무인카메라에서 4기가바이트 메모리를 꺼내 노트북에 넣고 즉석에서 동영상을 확인했다. 동영상은 가히 이곳이 야생동물의 집합소임을 보여줬다. 가족모임을 하는 멧돼지 여섯 마리, 고고하게 한 바퀴 둘러보는 노루, 한 바퀴 둘러보다가 우아하게 앉아 포즈를 취한 산양, ‘썸’ 타는 산양 커플, 새순을 먹는 새끼 산양, 잰걸음으로 왔다가 잽싸게 사라진 너구리(혹은 오소리), 그리고 무슨 사연으로 깊은 산에 들어왔는지 모를 검은 염소가 ‘몰카’의 무대에 출연했다. “이러다가 호랑이 나오는 거 아니에요?” “에이, 호랑이 나오면 산양 안 하지.” 한만형 활동가가 가방 속에 무인카메라를 집어넣었다.

산양은 멸종에 취약하다. 같은 초식동물인데도 고라니는 자연환경이 개선되면서 번성했는데, 산양의 개체수는 여전히 밑바닥을 긴다. 그 이유는 많아야 일년에 한 마리밖에 낳지 못하는 낮은 번식률 때문이다. 게다가 지리 교과서에 나오는 ‘푄 현상에 따른 영동지방 폭설’이 산양의 운명에 개입한다. 이른 봄 폭설은 산양의 최대 적이다. 짧은 다리 때문에 눈밭에 빠지면 빠져나오지 못하고 굶어죽기 때문이다. 두번째 적은 인간이다. 하얀 눈은 산의 주름을 평평하게 덮어 버린다. 주름 속에 웅크리고 있던 산양은 벌레가 물위로 떠오르듯 강제로 노출되고, 인간은 허우적대는 산양을 작대기로 때려잡아 보양식으로 팔았다. 1960년대에는 영동 산간 지방에서 산양 때려잡기가 성행했다. 1964년 3월 대폭설 때 강원도 포획 개체수가 3000마리에 이르렀고, 이듬해 2월 대폭설 때에는 설악산, 대관령, 오대산, 태백산 계곡에서 주민들이 지게 작대기로 때려잡은 것이 3000마리에 이르렀다는 얘기도 있다.(원병휘 저술, 문교부 편찬, 1967년 <한국동식물도감>) 급기야 산양은 196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다.

아침을 여는 야생.avi(산양과 멧돼지)이 영상은 야생동물 탐사단이 울진에서 확인한 무인센서카메라 영상입니다!

Posted by 녹색연합 on 2015년 7월 23일 목요일

기후변화로 폭설의 강도는 더 세졌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울진의 산양은 멸종을 향해 달리는 폭주기관차 비슷했다. 2010년 봄 폭설로 산양 25마리가 폐사했다. 녹색연합은 이때부터 산양구조치료센터 설립 등 국가의 지원을 본격적으로 요구하는 활동을 벌였다. 산림청과 협의해 산양 서식지를 통과하는 금강소나무 숲길도 산양을 보호하기 위해 탐방예약제로 운영하도록 했다. 사람들은 ‘일정한 시간’에만 ‘산양의 땅’을 지나갈 수 있다. 주민과 한국산양보호협회 등도 겨울철 먹이주기와 구조, 치료에 나섰다. 2012년에는 9마리가 폐사했다. 하지만 2마리는 구조 뒤 이듬해 방사될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9마리가 발견됐다. 7마리는 폐사했고 2마리는 구조돼 치료받고 있다.

문화재청과 울진군은 지난해 산양구조치료센터를 설립하기로 합의하고 건립 기본계획을 세웠다. 산양을 구조하고 무리를 보살피며 연구하기 위해서다. 울진군 두천리 1만1490㎡에 국비 및 지방비 35억원으로 센터를 세워 2016년 초 운영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올해 터를 매입할 계획이었으나, 군의회에서 예산 승인이 나지 않았다. 울진군 관계자는 23일 “한 해 운영·관리비 5억~6억원이 군 예산에 부담이 된다면서 군의회가 부지매입비 예산 승인을 해주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모니터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털털거리며 가는 갤로퍼 앞에 낯선 동물이 뛰쳐나왔다. 아니, 낯설지 않았다. 똥만 보여주고 산의 주름 속으로 숨었던 바로 그 산양이었다. 약 1.3미터의 키, 하얀 꼬리를 지닌 산양이 도롯가 둔덕으로 올라가 낯선 출현에 당황하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하얀 꼬리를 소처럼 탈탈 두 번 털었다. 그리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배제선 활동가가 말했다. “산양이 제집처럼 당당하네요. 일정한 시간에만 사람들이 지나가니까 산양의 마음도 편할 거예요.”

이 산양은 겁먹은 동물이 아니다. 아니, 거듭된 경험으로 어떤 지식을 깨달았을지 모른다. 오후의 어느 때 사람들이 숲길을 지나간다는 걸 안다.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주름 속에 숨은 겁쟁이가 당당하게 등장했다. 접혔던 산의 주름이 ‘평화적으로’ 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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