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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24일 12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7월 24일 17시 56분 KST

창조경제혁신센터가 강제로 완성됐습니다?

일찍이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가 모호하다’는 지적은 “창조경제의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언급한 바 있다.

청와대는 24일 이제는 창조경제의 개념이 명확해졌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과학기술과 ICT,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상상력과 창의성에 기반한 융합을 촉진하고

이를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과 시장,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박 대통령은 22일 “대한민국 전체가 창조경제로 거듭 깨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한 뒤, 후에 이어진 오찬 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인천 센터는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마지막으로 이날 문을 열었다.

24일 청와대에서는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장과 지원기업 대표단이 대거 참석한 오찬 간담회가 열렸다. 박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창조경제’의 중요성과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역할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는 개인의 창의성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과 산업이 창출되고 그것이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세계와의 경쟁에서 우리가 살아남고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창조경제로의 전환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먼저 혁신센터가 지역 주민들이 개개인의 능력과 끼를 발휘해 창업할 수 있도록 모든 정보와 서비스가 집적되는 지역 창업생태계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7월24일)

창조경제와 대기업이 강제로 만났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박근혜 정부의 역점사업 중 하나다. 이를 통해 ‘원스탑’으로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고 창업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박 대통령은 서울과 세종시를 제외하고 나머지 15곳에서 열린 출범식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러나 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바라보는 눈은 그다지 곱지 않다. 중복 투자라는 지적도 있고, 여전히 실체가 모호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전혀 ‘창조적’이지도, ‘혁신적’이지도 않은 사업 추진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정부가 대기업과 17개 시도를 ‘짝지어 주는’ 방식으로 세워졌다. 각 지역을 맡은 대기업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돈을 기금이나 펀드 형태로 출연하게 된다. 사실상 ‘강제 할당’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업 초기 박근혜 대통령은 “이곳을 통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벤처기업은 대기업으로부터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대기업 입장에서도 상생경제에 기여하는 윈윈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한국일보 최연진 기자는 이런 식의 사업 방식이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벤처육성업체 관계자는 “마치 프로야구의 프랜차이즈 할당하듯 대기업을 지역별로 할당해 경쟁시킨다고 해서 창업 및 벤처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탄생하고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아무래도 대기업들은 기존 사업과 연계된 분야에만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한국일보 2014년 9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단 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선일 대구센터장에게 '창조경제 배지'를 달아주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서울신문 오일만 논설위원은 올해 초 칼럼에서 “무엇보다 창조경제가 길을 잃고 있다는 신호는 본질을 외면하고 정치성 짙은 이벤트로 전락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선두에서 밀어붙이고 대기업이 따라가는, 개발 연대에나 가능한 모양새로 보인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은 체질과 작동원리가 분명히 다름에도 억지로 끼워 맞춘 그런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선 대기업들은 정권 차원에서 추진하는 핵심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창조센터를 맡았지만 능동적인 의지는 별로 없는 듯하다. (서울신문 2월25일)

파이낸셜뉴스의 지난 1월 보도를 보면, 한 고위 정부 관료도 ‘탁상 정책’에 대한 우려를 털어놨다.

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전국적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기업들의 실상을 세밀히 살피지 않고 탁상 위에서 만든 정책을 정부가 밀어붙이고, 기업이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관행이 창조경제를 창조적이지 않은 경제로 만들고 있는 것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안타까움을 털어놨다. (파이낸셜뉴스 1월20일)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벌어진 황당한 일들

일이 이렇게 진행되다 보니 웃지못할 일도 벌어지는 모양이다. 지난해 12월 매경이코노미에 소개된 대기업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자.

A그룹 임원은 “(정부의 압박에)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면서 “기업 생리상 투자를 하면 ‘리턴(회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 정치적 목적으로 기업을 희생시킨 꼴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영 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불만을 드러낸다. (매경이코노미 제1786호, 2014년 12월15일)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가 지난 5월 중앙선데이 칼럼에 소개했던 한 일화도 읽어보자.

얼마 전 한 대기업 임원이 하소연했다. 그 기업도 창조경제혁신센터 한 지역을 맡은 모양이다. 센터를 어떻게 만드느냐를 두고 당국자와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계속 설득하자 그 당국자는 “우선 이렇게 만들고 VIP(대통령)가 보고 가신 뒤에 마음대로 뜯어 고치라”고 하더란다. 창조경제를 하려는 건지,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중앙선데이 제428호 5월24일)

비교적 최근에 쓰인 중앙일보 칼럼에 등장하는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얼마 전 대기업에 있는 분을 만났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준비하느라 힘들었어요. 사공이 어찌나 많은지…. 어디에 투자할지는 물론이고 개소식 일정까지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막판엔 미래창조과학부가 직접 사업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해서 난처했어요. 우리 사업인데…. 대통령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니 미래부가 숟가락을 얹으려는 거죠. 지방자치단체도 우리 돈으로 생색내려고 안달입니다.” (중앙일보 7월13일)

대기업은 뒤늦게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참여하게 됐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처음으로 계획을 발표했고, 3월과 4월 대전과 대구의 센터가 각각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해 추진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던 중 9월에 뒤늦게 대기업 참여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이미 운영중이던 센터들이 출범식을 다시 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대통령 방문에 맞춰 한바탕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포항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박 대통령 방문 일정에 맞추느라준비도 덜 된 상태에서 출범식부터 열었다. 강원, 전북 등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창조경제의 남은 유통기한, 2년?

청와대는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 완료에 맞춰 성과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기능을 바탕으로 일찌감치 구축이 완료된 일부 센터에서는 창업 성과가 눈에 띄게 나타났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대구 센터가 대표 공모전인 '1기 C-Lab'을 통해 올해 상반기 18개팀을 보육했고 이 가운데 16개 팀이 법인등록을 완료, 약 17억원의 투자유치 성과를 거뒀고, 대전 센터도 지난 10개월간 10개 유망 스타트업을 보육한 결과 6개 기업이 33억원의 투자유치 성과를 낸 것이 대표적이다. (연합뉴스 7월24일)

실제로 성과를 내는 곳이 있다는 소식이 없는 건 아니다. 과정이야 어쨌든 국내 벤처 창업 생태계 조성에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나름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금이 아니라 그 이후다.

동아일보는 23일 사설에서 “박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인 ‘창조경제’ 실체가 모호하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청와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군사작전하듯 톱다운 방식으로 밀어붙인 측면이 있다”며 “문제는 지속가능성 여부”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을 기억하는 사람은 있지만, 요즘도 그걸 진지하게 언급하는 사람은 없다. ‘창조경제’도 같은 운명에 처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음 정부에서 사라질 부처 1순위로 미래창조과학부가 공공연하게 언급되는 상황이다.

앞선 정권만 봐도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다음 정권 아래 해체 수순을 밟았고 녹색성장, 고졸 채용 등 전 정권의 역점 사업은 수명 연장에 실패했다. 재계가 한목소리로 ‘지속 가능성’을 센터의 제1 성공 요건으로 꼽는 이유다. (서울신문 7월24일)

박근혜 정부는 미래 성장 전략으로 창조경제를 내세우면서 17개 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세우고 있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전임 정부의 녹색성장 전략을 폐기 처분한 것처럼 다음 정부가 창조경제 전략을 온전히 이어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6월13일)

정부의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발을 들인 대기업들도 있다. 언젠가 아무도 창조경제를 언급하지 않게 되면, 수백억원 씩을 투입한 17개 센터는 어떻게 되는 걸까?

참고로 미래부에 따르면 올해 지역별 센터에 투입되는 예산은 197억원에 달하며, 여기에 참여한 대기업들은 5년간 2조원 규모의 ‘창조경제 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혁신은 이벤트가 아니다”

모두가 입을 모아 하는 얘기가 있다. 중요한 건 ‘생태계’라는 것. 생태계는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아일보가 24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지역별 센터장을 전수조사한 결과 17명 중 14명은 “3년 이내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울산대학교에 있는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 MARU180 원격 창업지원존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대기업들은 단기간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B그룹 관계자는 “수시로 성과 보고를 하다 보니 페이퍼(보고서) 작업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단기 성과를 재촉하다 보니) 센터도 결국 이번 정권에 끝날 단기 전시행정이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서울신문 7월24일)

그러다보니 이제는 정부가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적당히 관심을 꺼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정부가 더 넓은 차원에서 생태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17개 센터가 지자체와 함께 특색을 살리면서 자생하려면 대통령은 슬그머니 관심을 줄여주고, 센터들이 자기 색깔을 만들어가도록 해줘야 한다. 또 개소식을 마쳤으니 이제는 성과물을 내놓으라고 채근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파이낸셜뉴스 7월22일)

창조센터가 성공하려면 공정한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미국에선 대기업이 성공한 벤처를 제값 주고 인수한다. 그 벤처는 매각자금으로 또 다른 도전을 하는 선순환이 자리 잡았다. 이런 풍토에서 애플이나 구글·아마존 같은 거대 기업이 탄생했다. 정부가 할 일이 이런 여건을 만드는 거다. (중앙일보 칼럼 7월13일)

매일경제 손재권 기자는 “혁신센터는 비즈니스 모델이어야 한다”며 이렇게 조언했다.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지원을 하는 혁신센터가 자체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고 있을지 의문이다. 혁신은 이벤트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매일경제 4월7일)

정부도 이런 점을 알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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