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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 사이다' 사건: 딱 하나의 빈 퍼즐 조각

ⓒ연합뉴스

지난 14일 경북 상주에서 발생한 ‘농약 사이다 사건’의 경찰 수사가 막바지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경찰은 마을 주민 박아무개(82·여)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범행 동기와 농약 구입 과정 등을 아직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구속된 박씨는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상주경찰서는 늦어도 27일까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 농약이 들어 있었던 사이다

지난 14일 오후 2시께 경북 상주시 공성면 금계1리 마을회관 안에는 박아무개(82·용의자)·신아무개(65·회복)·이아무개(88·중태)·민아무개(83·중태)·한아무개(77·중태)·정아무개(86·사망)·라아무개(89·사망)씨 등 할머니 7명이 있었다. 이 마을회관에는 할머니 8명이 자주 모여 놀았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마을회관 안에 있던 할머니 7명 가운데 신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마을회관에서 자주 모여 놀던 할머니들이다. 용의자인 박씨는 이날 오후 1시9분께 마을회관에서 400m 떨어진 집에서 나섰다. 이 장면은 박씨의 집 앞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찍혔다.

이날 오후 2시43분께 박씨를 제외한 나머지 할머니들은 냉장고 안에 있던 사이다를 나눠 마셨다. 그러고나서 하나둘씩 쓰러졌다. 전날 저녁 주민들이 마을 잔치를 하며 마시고 남겨둔 사이다였다. 가장 나이가 적은 신아무개(65) 할머니만 비틀비틀 마을회관을 걸어나와 밖에 쓰러졌다. 오후 3시54분 마을회관 바로 왼쪽 집에 사는 주민 박아무개(63)씨가 119에 첫 신고를 했다. 신고를 한 박씨는 이장인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집으로 되돌아갔다. 박씨는 이후 경찰에 “신 할머니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걸어 나왔다. 마치 중풍에 걸린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첫 신고를 한 박씨가 집으로 간 사이 용의자인 박씨가 마을회관에서 신씨 할머니를 뒤따라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119구급차가 도착하자 아무 말도 없이 마을회관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3분 뒤 신씨를 태운 구급차가 출발할 때 박씨는 마을회관 앞 계단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회관 안에 다른 할머니 5명이 쓰러져 있는 것을 몰랐던 구급대원들은 마을회관 앞에 쓰러져 있는 신씨만 태워 상주적십자 병원으로 옮겼다. 마을회관 안에 쓰러져 있던 할머니 5명은 이후 이장에게 발견됐고, 병원에는 1시간가량 뒤늦게 옮겨졌다. 이날 밤 10시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이다 안에 든 농약은 살충제인 메소밀 성분이라고 경찰에 통보했다.

'농약 사이다' 살해사건 피의자 박모(82) 할머니의 사위가 20일 오후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에서 경찰 수사에 항의하며 기자들에게 박카스병 제조번호를 설명하고 있다.

■ 하루 만에 박씨가 용의자로

경찰은 처음부터 박씨 할머니를 의심했다. 마을회관에서 유일하게 농약이 든 사이다를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다른 할머니들이 쓰러졌지만 신고도 하지 않았고, 할머니들이 구급차에 실려갈 때도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은 외부인이나 다른 마을 사람의 범행일 가능성도 열어 놓고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마을 입구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분석하고 탐문 수사를 했지만, 수상한 외부인을 봤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의심을 받던 박씨가 용의자가 된 것은 지난 15일 오후 3시30분께 박씨의 집 앞마당에서 뚜껑이 없는 자양강장제 병이 발견되면서부터였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한 결과 이 자양강장제 병에서는 살충제인 메소밀 성분이 나왔다. 사건 당시 농약이 들어 있던 사이다 병은 이 자양강장제 뚜껑으로 닫혀 있었다. 경찰은 지난 17일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딸이 있는 대구에 가 있던 박씨를 체포했다. 이날 오후 2시께 박씨의 집 뒷마당에서는 살충제 메소밀이 들어 있는 검은 비닐봉지가 발견됐다.

경찰이 박씨의 옷과 전동스쿠터 등을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한 결과 모두 살충제인 메소밀 성분이 검출됐다. 박씨의 집 안에서 발견된 자양강장제와 메소밀 성분이 검출된 자양강장제 병은 제품과 유통기간이 모두 같았다. 경찰은 지난 18일 밤 11시께 살인 혐의로 박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20일 오후 5시께 “기록에 의할 때 범죄 사실에 대한 소명이 있고,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 박씨는 혐의 부인, 미스터리에 싸인 범행 동기

박씨는 아직까지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집에서 발견된 자양강장제 병과 살충제에 대해서는 “나는 모르는 일이며, 누군가가 몰래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박씨의 집 앞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달려 있는 점 등을 비춰보면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또 박씨는 “나는 집에서 음료수를 먹고 와서 마을회관에서는 먹지 않은 것이고, 피로회복제 병이나 살충제는 모르는 일이다. 옷과 전동스쿠터 손잡이에서 살충제 성분이 나온 것은 사건 당시 사이다를 마시고 입에서 거품이 나온 할머니를 닦아줬기 때문”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박씨의 변호를 맡았던 박아무개(54) 변호사는 지난 22일 박씨의 변호를 맡지 않겠다며 변호사 사임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농약 사이다' 살해사건 피의자 박모(82) 할머니의 딸이 20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마당에서 항의하고 있다.

경찰은 여러 증거와 정황들을 근거로 박씨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물증을 확보하지는 못하고 있다. 자양강장제나 살충제에서 박씨의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 또 ‘전날 박씨가 마을회관에서 화투를 치다가 다른 할머니 한 명과 다퉜다’는 등의 진술은 확보했지만, 결정적인 범행 동기로는 보기 어려운 상태다. 거의 70년을 이 마을에서 살아온 박씨가 사소한 다툼으로 친하게 지내던 할머니들을 상대로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살충제 구입 과정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공성면에 있는 농약가게 6곳을 조사했지만 박씨가 이 살충제를 구입한 것은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살충제는 2012년 판매가 금지됐지만 농민들 사이에서는 몰래 일부가 거래되기도 한다. 아직까지 박씨에게 이 살충제를 건네줬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박씨가 자녀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보고 박씨가 올해 자녀와 주고받은 문자와 통화내용 등을 확인하고 있다.

이규봉 상주경찰서 수사과장은 “이번 주말까지 범행 동기와 농약을 손에 넣게 된 과정 등을 밝혀내기 위해 집중적으로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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