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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생크 탈출' 뺨치는 탈옥왕들의 기상천외한 비법

ⓒ콜롬비아 픽처스

지난 11일(현지시각) 멕시코의 한 감옥에 수감돼 있던 이 나라 최대 마약 카르텔의 두목 호아킨 구스만 로에라가 탈출한 땅굴 현장을 수사관들이 살펴보고 있다.

지난 11일 밤(현지 시각)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인근의 알티플라노 감옥.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 로에라(58)가 또다시 철통 같은 경계망을 뚫고 사라졌다. 2001년 1월 탈옥했다가 13년 만인 지난해 2월에 붙잡힌 지 불과 17개월 만이다.

■ <쇼생크 탈출> 뺨친 멕시코 마약왕

구스만은 이날 저녁 8시52분께 신발을 갈아신고 감방 샤워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감시카메라에 포착된 것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멕시코 국가안보위원회는 샤워실 바닥으로 뚫린 땅굴이 교도소 바깥의 한 건축 공사장까지 높이 1.7m, 폭 80㎝의 크기로 1.5㎞나 이어져 있었다고 밝혔다. 더욱 놀라운 건, 컴컴한 터널 안에 전등이 설치됐고, 파낸 흙을 바깥으로 실어나른 것으로 보이는 오토바이까지 발견됐다는 점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을 무색하게 하는 그의 탈옥은 교도소 안팎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멕시코 군경의 검문·검색과 추격을 비웃기라도 하듯, 구스만의 행적은 아직까지 묘연하다. 구스만은 멕시코 최대 마약 조직인 시날로아 카르텔의 두목으로 악명이 높다. ‘엘 차포 구스만’(땅딸보 구스만)이란 스페인어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멕시코 당국은 그의 목에 6000만페소(약 43억원)라는 사상 최대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구스만의 탈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1993년 과테말라에서 처음 붙잡힌 뒤 멕시코로 이송돼, 살인·마약거래·무기소지 혐의 등으로 20년형을 선고받았다. 미국은 복역중이던 그를 돈세탁과 마약 밀반입 혐의로 기소하고 신병 인도를 요구했으나, 멕시코 당국이 거부하면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엄청난 돈과 폭력을 거머쥔 구스만에게 교도소는 수형시설이 아니었다. 2012년 1월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구스만이 수감중에도 마약왕으로 군림하면서, 감옥을 개인의 성채로 삼았다. 교도관들은 발빠른 시종처럼 움직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2001년 1월, 구스만은 세탁물 카트에 숨어 외부 용역업체 차량을 타고 교도소를 빠져나갔다. 이때 그의 탈옥에 연루돼 기소되거나 조사받은 사람만 78명이었다. 구스만은 그로부터 13년 동안이나 당국의 추격을 따돌리며 활개 치다가 지난해 2월에야 태평양 연안의 한 휴양지에서 미국 마약단속국(DEA)과 멕시코 해병대의 합동작전에 덜미를 잡혔다. 그런데 이번엔 훨씬 보안이 엄중한 알티플라노 감옥에 갇힌 지 불과 17개월 만에 다시 탈옥에 성공한 것이다.

구스만은 북미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로 마약을 공급하며 10억달러가 넘는 재산을 모아, 2010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세계의 억만장자’에 937위로 이름이 올랐다. 이뿐만 아니라 <포브스>는 2009년부터 3년 연속 구스만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40~60위)에 선정했을 정도다. 이번 탈옥에도 안팎의 협력이 있었을 것이란 의혹이 짙은 이유다. 멕시코 검찰은 지난 15일 “구스만의 탈옥과 관련해 22명의 공모 혐의자를 구속했다. 어떤 식이든 협력이 있었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각) 미국 경찰관들이 캐나다와의 접경지역에서 같은 달 6일 뉴욕 클린턴 교도소에서 탈옥한 수감자를 체포하고 있다. 다른 한명의 탈옥수는 그 이틀 전에 인근 지역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지거나

기상천외한 탈옥은 이전에도 많았다. 어떻게든 감옥을 탈출하려는 절박한 심정은 하늘과 땅, 바다를 가리지 않는다. 문헌 기록으로 전하는 최초의 탈옥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일 것이다. 크레타섬의 미궁에서 밀랍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른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잊고 너무 높이 오른 탓에 태양열에 날개가 녹아 바다로 추락하고 말았다.

오늘날 이카로스의 후예들은 밀랍 날개 대신 헬리콥터를 이용한다. 2009년 2월 그리스 아테네 외곽 코리달로스 교도소 안뜰 상공에 헬리콥터가 접근했다. 은행강도와 살인죄 등으로 복역중이던 2명의 중범죄자는 헬기에서 한 여성이 던져준 줄사다리를 타고 탈출했다. 교도소 경비대가 헬기에 총격을 가했지만 헬기의 여성도 자동소총으로 반격하며 멀어져갔다. 마침 그날은 탈옥범 중 한명인 바실리스 팔레오코스타스가 꼭 3년 전인 2006년 똑같은 수법으로 탈옥했다가 2년 만에 붙잡힌 사건과 관련해 법정 출두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앞서 1986년 프랑스에선 젊은 여성이 헬기 조종술을 배운 뒤, 무장강도죄로 복역중인 남편을 탈옥시켰다가 붙잡혀 나란히 감방 신세를 졌다. 헬기 탈옥은 1971년 멕시코에서 처음 시도된 이래 지난해 캐나다 사례에 이르기까지 알려진 것만도 전세계에서 43건에 이른다.

상어 떼와 거친 파도로 둘러싸인 천혜의 감옥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앨커트래즈섬 교도소에서도 14차례나 탈옥 시도가 있었다. 가장 전설적인 탈옥은 1962년 12월 프랭크 모리스와 존·클래런스 앵글린 형제였다. 이들은 숟가락으로 감방 벽을 파서 환풍구를 통해 빠져나간 뒤, 수십벌의 비옷으로 구명정을 만들어 바다로 나갔다. 그 뒤로 이들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이들이 샌프란시스코만에서 익사했다고 발표하고 수사를 종결지었다.

우리나라에선 ‘미꾸라지 탈옥’도 있었다. 2012년 9월 대구의 한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던 최갑복은 온몸에 연고를 바른 뒤 가로 45㎝, 세로 15㎝ 크기의 좁은 배식구를 몸을 비틀어가며 단 34초 만에 빠져나갔다. 자잘한 범죄로 24년이나 감옥생활을 하면서 익힌 요가 실력이 미꾸라지 탈옥을 가능하게 했다. 엿새 뒤 붙잡힌 그는 배식구가 훨씬 작은 유치장에 재수감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감옥에선 많은 수감자들이 자유의 냄새를 그리며 탈옥을 꿈꾼다. 탈옥 시도는 생각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통제 불능의 폭동이나 전쟁 상태가 아닌 경우, 개별적인 탈옥이 성공할 확률은 극히 낮다. 첨단 보안기술과 더 촘촘해진 감시체계 덕분이다.

인구 대비 수감자 비율이 세계 최고인 미국에서도 탈옥 건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주 또는 연방 교도소 등 상급 교정기관일수록 더욱 그렇다. 미국 법무부 교정국의 최신 통계를 보면, 2013년에만 미국 전역에서 약 150만명의 수감자 중 2001건의 탈옥 사건이 있었다. 2012년 2500여건, 2011년 3100여건에 견주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20년 전인 1993년에는 78만357명의 수감자 중 1만4305명이 탈옥을 시도했다. 그러나 탈옥수들의 99%는 금세 붙잡히거나 경찰의 총에 최후를 맞았다.

2009년 2월 그리스 경찰관들이 아테네 인근 코리달로스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이 타고 탈옥한 뒤 아테네 북부 고속도로 근처에 버리고 달아난 헬리콥터를 수색하기 위해 접근하고 있다.

■ 마약, 돈, 사랑, 휴대전화…

지난 11일 마약왕 구스만의 재탈옥은 멕시코 정가와 미국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멕시코 정부는 해당 교도소 소장 등 교정당국 고위급 관리 3명을 즉각 해임했다. 그러나 정부의 치안·사법에 대한 신뢰는 큰 타격을 입었다.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 2012년 취임 이후 주요 마약 카르텔의 거물급들을 체포하거나 사살했다고 내세운 성과는 단숨에 빛이 바랬다. 멕시코 관료 집단의 고질적인 부패 사슬도 새삼 도마에 올랐다.

접경국 미국과의 관계도 더욱 껄끄러워졌다. 미국 법무부는 구스만 탈옥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성명을 내어 “미국은 멕시코 정부의 우려에 공감하며, 신속한 검거 작전을 지원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피터 벤싱어 미국 마약단속국 전 국장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마약조직 두목의 탈옥은 충격적”이라며 “구스만은 미국 감옥에 수감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 마약단속국은 지난해 초 구스만이 재수감된 직후부터 그의 탈옥 조짐을 감지하고 있었으나 멕시코 당국에 대한 불신 때문에 통보하지 않았다는 정황까지 드러났다.

교도관들과 수감자의 은밀한 거래가 멕시코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달 6일엔 미국 뉴욕의 클린턴 교도소에서 살인범 2명이 탈출해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이들은 감방 벽에 구멍을 뚫고 전동 공구로 쇠창살 문의 파이프를 자른 뒤 맨홀을 통해 달아났다. 그중 한명은 탈출 20일 만에 캐나다 국경 근처에서 사살됐고, 다른 한명은 그 이틀 뒤 체포되면서 탈주극은 막이 내렸다.

그러나 살인범 2명의 탈옥 사건은 만만찮은 후폭풍을 불러왔다. 현지 경찰은 탈주범들에게 쇠톱날을 몰래 넣어준 혐의로 남녀 교도관 2명을 구속했다. 특히 현지 언론들은 클린턴 교도소 출소자 등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한 여성 교도관이 2명의 탈주범 모두와 성관계까지 가져왔다고 보도했다.

탈옥자들은 어떻게 삼엄한 감시와 겹겹의 보안시설을 뚫을 수 있었을까? 교도소 안팎의 협력과 교도관의 묵인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 3월 미국에선 전직 교도관이 수감자들과의 검은 유착의 실태를 생생히 털어놓은 책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뉴욕 리커스섬 교도소의 교도관이었던 게리 헤이워드가 쓴 <부패 관리: 리커스섬의 교도관에서 범죄 하수인으로>라는 체험기다.

헤이워드는 1996년 교도관이 되기 전의 빚을 갚으려다 치명적인 덫에 빠졌다. “담배 한갑에 300달러를 주겠다”는 한 수감자의 제안에 솔깃하면서 일탈이 시작됐다. 그다음은 코카인 2분의 1온스에 1500달러였다. 교도소 암시장의 수익은 쏠쏠했다. 나중엔 휴대폰을 비롯해 웬만한 물품을 다 취급했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수감자들에게 그는 “고투 가드”(Go-to Guard, 믿을 만한 간수)로 불렸다. 달콤한 밀거래는 교도소 감시카메라에 발각되면서 끝났다. 헤이워드는 ‘간수’에서 ‘죄수’가 됐다. 그는 지난달 <시엔엔>(CNN) 방송에 출연해 “거래가 늘면서 점차 탐욕으로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 교도관과 남성 재소자 사이에 싹트는 ‘특별한 감정’이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시엔엔>이 인터넷 누리집에 올린 관련 보도의 제목은 ‘마약, 돈, 사랑, 그리고 휴대폰: 교도관은 어떻게 망가지는가’였다.

■ 구속과 자유의 길항

폭넓은 지식과 화려한 사교술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훔쳤던 18세기 베네치아의 작가 카사노바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견고하다는 감옥에서 탈출해 더 유명세를 치렀다. 그는 한때 귀족 부인들과의 애정관계가 복잡하게 꼬이면서 종교재판소의 눈 밖에 났고, 결국 ‘이단의 마술 시행’, ‘금서 탐독’ 등의 혐의로 감방에 갇혔다. 그러나 감옥은 자유로운 영혼에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카사노바는 어느날 밤 옆방에 갇힌 수도사와 공모해 벽에 구멍을 뚫고 나온 뒤, 총독 관저 정문으로 연결된 계단을 걸어내려와 수상 곤돌라를 타고 유유히 베네치아의 수로를 빠져나갔다. 카사노바는 뒷날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나는 미치도록 여자들을 사랑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자유를 더 사랑했다.”

구속의 압박감이 클수록 자유의 갈망도 커진다. 그러나 현실에서 탈옥은 결코 짜릿한 영웅담 또는 흥미진진한 모험극이 아니다. 더 비참한 지경에 빠지는 지름길, 위험천만한 자해 행위이기 십상이다.

비극적인 탈옥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많다. 1988년 호송차에서 탈출한 지강헌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절규하며 인질극을 벌이다 자살에 실패하고 경찰의 총에 맞아 삶을 마쳤다. 1997년엔 무기수 신창원이 2년 넘게 신출귀몰한 도피극을 벌이다 붙잡혀 22년6개월 형이 추가됐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도 장 발장이 단지 빵 한조각을 훔쳤다는 이유만으로 19년이나 감옥살이를 한 건 아니었다. 그는 애초 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부양하던 조카들의 생계를 걱정해 수차례 탈옥을 시도하다 형량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근대 국가의 형벌은 끔찍한 ‘신체형’ 대신 ‘자유형’을 선택했다. 미셸 푸코는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규율권력이 개인의 신체와 정신을 훈육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그는 “감옥은 다른 규율의 장치들에서 발견되는 모든 절차를 매우 강도가 높은 단계로 올려놓은 것”이라고 갈파했다. “감옥은 타락한 개인에게 새로운 모습을 강요하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여야 하며, 따라서 감옥의 작용 방식은 완전한 교육의 강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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