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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파시스트의 자아성찰

한 동료의 주동으로 연남동에 회식하러 가기로 했었다. 각개격파를 선호하는 사무실 분위기상 일 년에 몇 번 없는 회식자리. 주동한 동료가 메뉴를 정했다. 연남동에서 유명하다는 멕시코 식당에서 1차를 한 뒤 연남 공원에서 맥주 캔을 들고 산책을 한 후 노래방에 간다는 나름의 완벽한 계획이었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팔뚝만 한 서대구이와 생물 병어조림과 민어탕을 먹을 수 있는 곳을 근방에 놔두고 타코나 뜯는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 박세회
  • 입력 2015.07.18 11:00
  • 수정 2016.07.18 14:12
ⓒGettyimagesbank

지난 번 우리 사무실의 패션 파시스트를 고발하고 나서 많은 분이 보내 준 성원에 감격했다. 대부분은 '패션으로 흥한 자 패션으로 망하리니' 또는 'AC/DC 티셔츠가 뭐가 어떠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분들의 성원에 보답할 겨를도 없이 나는 또 다른 자아를 발견했다.

나는 문제 많은 파쇼였다

거울을 처음으로 봤을 때의 울버린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지난주, 나는 내 안에 감추어진 또 다른 '파쇼' 성향에 깜짝 놀랐다. 우리 뉴스룸의 식구들은 한 동료의 주동으로 연남동에 회식하러 가기로 했었다. 각개격파를 선호하는 사무실 분위기상 일 년에 몇 번 없는 회식자리. 주동한 동료가 메뉴를 정했다. 연남동에서 유명하다는 멕시코 식당에서 1차를 한 뒤 연남 공원에서 맥주 캔을 들고 산책을 한 후 노래방에 간다는 나름의 완벽한 계획이었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제철 해물을 파는 요릿집이었다. 팔뚝만 한 서대구이와 생물 병어조림과 민어탕을 먹을 수 있는 곳을 근방에 놔두고 타코나 뜯는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종아리만 한 서대구이의 살은 생물 병어만큼 부드럽고 고등어만큼 녹진했다.

조심스레 전체 카톡창에 심경을 토로했다. '오랜만의 회식인데 제철 생선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타코는 점심시간에도 먹을 수 있는데, 굳이 회식에서 먹어야 하나. 박찬일 셰프가 추천해준 곳인데 정말 죽인다더라'라며 나름의 논리를 펼쳤다. 선동.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여론을 움직이기 위한 선동이었다. 초안을 제시한 동료는 '그런데 거기는 망원동이라 연남동까지 택시를 타고 다시 와야 하고 맨날 아저씨들 가는 식당만 가니까 이번에는 좀 힙하게 놀아보자'며 저항했다. 걸렸다. 나는 곧바로 '우리를 아저씨로 매도한 당신은 나이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인가'라며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를 들이대 주적으로 몰았다. 삼십 대들이 들고 일어났다. '옳소 옳소!'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회식을 하던 중 동료들이 칭찬을 한다며 던진 말에 먼눈이 떠졌다. '어우 맛있네. 역시 맛집 파시스트 말을 들으니까 후회는 안 하는구먼'. 파시스트? 정말? 내가? 후배의 맛집 선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꺾었던 나는 정말 패션 파시스트와 마찬가지로 맛집 파시스트인가?

나는 왜 그랬을까? 라이프 스타일 에디터를 하면서 맛집 좀 찾아 돌아다녔다는 알량한 자만심 때문에? 집에 요리책이 수십 권쯤 있고 냉장고엔 엔초비와 훈제 청어가 있고 베란다에는 로즈메리와 애플 민트를 키우고 있다는 선민의식 때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게는 꽤 오래전부터 이런 경향이 생긴 것 같다. 서른이 넘고 나서는 가끔 여자 친구가 만들어 주는 도시락이 정말 싫었다. 가끔 누군가가 잘 튀긴 문어 모양 소시지를 내 입에 넣어줄 때마다 뱉어버리고 싶은 본능의 요구에 깜짝 놀라 겨우 참곤 한다. 소시지에 칼집을 넣고 네 개의 다리를 만들어 프라이팬에 튀긴 건 요리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문어는 다리가 여덟 개지 않는가? '초딩입맛 하고는. 문어라고 주장하려면 적어도 여덟 가닥으로 자르라'고 외치고 싶었다. 조미액이 들어 있는 유부초밥도 마찬가지다. 데운 햇반에 조미액과 플레이크를 섞은 뒤 식감을 찾아볼 수도 없이 너덜해진 유부에 넣은 걸 요리라고 한다면, 도둑놈 심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까의 사건에서는 의견을 관철한 방법도 정말이지 못됐다. 강력한 이익집단(아저씨)에 유리한 정책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말 중 꼬투리(아저씨라 말한 것)를 잡아 '주적'을 만들어 손쉽게 단결심을 모으는 책략 말이다. 이거야말로 예전부터 파시스트들이 즐겨 쓰던 방법이고 평소 그렇게도 욕하던 정치인들이 자주 하는 나쁜 짓 아닌가. 사안의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게 만드는 연막작전이 아니냔 말이다.

이제 문제가 적은 파쇼가 되어야겠다

이 일을 겪고 나자 정말이지 나 자신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싫었다. 이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정규 교육에 대학교육까지 마쳤건만 대학원이라도 가야 하나?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랜 고민 끝에 최종적으로 나는 내가 맛집 파시스트의 태도를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슬프지만 이미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늑대인간으로 변한 상태였고, 이렇게 된 이상 밥을 볶아주는 버섯 칼국수 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할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편이 편했다. 그렇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나에게 그런 성향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조심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파쇼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내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는 '음악 파쇼'다. 그는 팝과 록음악을 오랜 시간 동안 사랑한 탓에 한국어로 만든 노래 중에는 좋은 노래가 탄생할 확률이 적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내 다른 친구는 그와는 정반대로 '팝 음악만 좋아하는 스놉들'이라며 복면가왕의 음원만을 애청한다. '영화 파쇼'도 만만치 않게 많다. 이 영화 파쇼들은 '에이지 오브 울트론'같은 영화를 보는 건 술집에서 여자들과 어울리는 것 처럼 가볍다고 말하며 누벨 바그나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영화들을 봐야지만 진정한 영화와 연애를 하는 거로 생각한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국제시장을 감동적으로 본 사람에게는 나름의 논리가 있는 것이다. 순문학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장르문학은 개인의 욕망과 문학적 실패를 표현하기엔 너무 정형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성향과 논리는 소중하다. 그러니 나는 때 늦은 시점에 내 미각을 바꾸기보다는 여전히 맛집 파쇼인 채로 남아 그 사실을 효과적으로 희석하며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여기까지만 읽으면 마치 평론 따위는 필요 없다는 글로 오독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난 오히려 평론가들이 고맙다. '썰전'의 모토처럼 오천만 국민이 자신의 성향에 대해 빠삭해져서 모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서로 같은 사무실에서 카톡으로 싸우느라 일도 못 할 것이다. 평론가들이 대신 싸워주니 얼마나 편한가. 나랑 같은 성향을 가지고 나의 취향에 대해 나보다 좀 더 깊게 공부하고 나보다 훨씬 강력한 이론적 토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상대편에게 일침을 날려주는 걸 보는 것만큼 통쾌한 건 없다. 이렇게 싸워 줘야 우리끼리 안 싸우고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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