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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의 영원한 멘토 | 알프레드 연대기

배트맨 시리즈를 읽다 보면 문득 생각나는 의문이 있다. 알프레드는 대체 언제 잠을 자는 것일까? 이 초로의 집사는 호출하면 언제 어느 때고 또렷한 목소리로 응답하며, 배트맨이 범죄와의 전쟁을 벌일 때 컴퓨터와 레이더 앞에 앉아 밤새도록 그를 지원하고, 위기에 빠지면 어느새 달려와 도와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걸레가 된 배트슈트를 수선하며, 침구를 정리하고, 배트맨이 밥을 먹든 안 먹든 꼬박꼬박 정시에 완벽한 식사를 대령한다(심지어 티타임까지!). 거대한 웨인 저택과 배트케이브, 그리고 배트맨의 모든 장비를 관리할 뿐만 아니라 배트맨이 활동 중에 겪는 온갖 부상을 치료할 정도의 의술까지 갖춘 신비의 사나이.

  • 이규원
  • 입력 2015.07.20 06:06
  • 수정 2016.07.20 14:12
ⓒthe dark knight rises

배트맨의 영원한 멘토

─알프레드 연대기

배트맨 시리즈를 읽다 보면 문득 생각나는 의문이 있다. 알프레드는 대체 언제 잠을 자는 것일까? 이 초로의 집사는 호출하면 언제 어느 때고 또렷한 목소리로 응답하며, 배트맨이 범죄와의 전쟁을 벌일 때 컴퓨터와 레이더 앞에 앉아 밤새도록 그를 지원하고, 위기에 빠지면 어느새 달려와 도와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걸레가 된 배트슈트를 수선하며, 침구를 정리하고, 배트맨이 밥을 먹든 안 먹든 꼬박꼬박 정시에 완벽한 식사를 대령한다(심지어 티타임까지!). 거대한 웨인 저택과 배트케이브, 그리고 배트맨의 모든 장비를 관리할 뿐만 아니라 배트맨이 활동 중에 겪는 온갖 부상을 치료할 정도의 의술까지 갖춘 신비의 사나이. 배트맨이 잠든 시간조차도 그를 위해 일하는, 배트맨을 능가하는 초인 집사 알프레드 페니워스. 배트맨의 탄생 이후 70여 년간 그의 이야기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돌아보자.

1) 알프레드 탄생기: 1943년 『배트맨』 16호

이제 막 고담에 도착한 한 신사가 있다. 퉁퉁한 몸집에 중산모를 쓴 그의 손에는 큰 짐가방이 들려 있다. 그 가방은 거리로 나오자마자 강도의 표적이 된다.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던 배트맨과 로빈이 그를 구하려는 찰나, 신사는 가방을 휘둘러 악당들을 물리친다. 신사는 자신을 '경험은 부족하지만 뛰어난 재능을 지닌 아마추어 탐정'이라고 소개하며 원한다면 시간이 날 때마다 배트맨과 로빈의 활동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한다.

신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돌아온 배트맨과 로빈이 집에서 쉬려고 하는 순간,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자 그 신사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안녕하세요. 쉬고 계신데 방해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군요. 괜찮으시다면 짐은 여기 놓겠습니다. 그 뒤에 제가 할 일에 대해서 대화를 하시죠." 거침없이 쳐들어온 신사는 곧바로 자신의 이름이 알프레드이며 웨인 가문의 집사가 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왔다고 소개한다.

브루스는 지금까지 집사를 두어본 적이 없다며 손을 젓지만, 알프레드는 자신의 부친인 '자비스'가 토머스 웨인의 집사로 수년간 일했었다고 털어놓는다. 자비스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잇기를 원했으나 알프레드는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배우를 지망했고, 낙심했던 자비스는 결국 임종의 자리에서 알프레드에게 집사가 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우격다짐으로 웨인가에 들어온 알프레드는 집안에 침입한 강도를 막다가 우연히 비밀문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두 사람이 배트맨과 로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배트맨과 로빈이 악당들에게 붙잡혀 위기에 빠졌을 때 그들을 구해낸 이후로 그는 다이내믹 듀오의 활동을 돕는 조력자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상이 배트맨이 탄생한 1939년에서 4년이나 지난 뒤에야 이루어진 알프레드의 첫 등장이었다.

알프레드 등장!(Here Comes Alfred). 만능 집사의 시작을 알린 『배트맨』 16호 표지.

(사진 출처: http://img2.wikia.nocookie.net/__cb20081128134341/marvel_dc/images/f/f9/Batman_16.jpg / TM &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2) 알프레드의 다이어트와 알프레드의 모험

알프레드의 데뷔 연도와 같은 해에 배트맨 시리얼(serial: TV시대 이전 유행한 방식으로, 짧은 분량의 영화를 드라마처럼 한 주에 한 편식 상영하는 것)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윌리엄 오스틴이라는 배우가 알프레드를 맡았다. 그런데 오스틴은 만화의 알프레드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외모부터가 달랐다. 만화의 퉁퉁한 알프레드 대신 마른 몸매에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기품 있는 영국 억양을 구사하였다. 이것은 곧장 만화에도 반영이 되는데, 이듬해인 1944년 『디텍티브 코믹스』 83호에서 알프레드는 배트맨과 로빈의 활동을 제대로 지원하려면 몸을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체중 감량에 돌입한다. 배트맨과 로빈은 지겨운 잔소리에서 벗어날 기회라면서 알프레드에게 휴가를 주는데, 이 기간 동안 엄청난 노력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그는 영화배우 오스틴과 똑같은 마른 몸에 콧수염을 길러 나타난다.

영화를 따라가려는 만화 캐릭터의 눈물겨운 노력? 『디텍티브 코믹스』 83호 본문에서.

(사진 제공: 세미콜론)

또한 같은 해인 1944년 『배트맨』 22호부터 약 15이슈 동안 배트맨 만화책에는 알프레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4페이지짜리 코너 『알프레드의 모험』이 연재되었다. 이 만화에서 알프레드는 아마추어 탐정답게 여러 범죄들을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1945년 『디텍티브 코믹스』 96호에서는 그가 알프레드 비글이라는 이름으로 사립 탐정 사무소를 차려서 활동하는 모습도 등장하는데, 이때 알프레드는 '비글'이라는 성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1956년 『배트맨』 104호에서는 알프레드의 중간 이름이 '새디어스 크레인'이라고 밝혀졌으며 한참 뒤인 1969년 『배트맨』 216호에서는 페니워스라는 성을 사용하면서 그에게 윌프레드라는 형과 다프네라는 조카가 있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3) 재구성된 알프레드와 배트맨의 만남

1957년 『배트맨』 110호에서는 알프레드와 배트맨의 만남을 새롭게 재구성한다. 브루스 웨인이 집사를 구한다는 소식에 이력서를 들고 지원한 알프레드는 자신이 영국 신사 집안 출신이라고 소개한다. 집사에 합격한 알프레드는 어느날 밤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로빈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는 큰 시계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고, 비밀 계단을 발견하고 내려가 보니 배트맨 복장을 입은 브루스 웨인이 머리에 큰 부상을 입고 로빈의 부축을 받으며 올라오고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배트맨과 로빈의 정체를 알게 된 알프레드는 이후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배트맨과 로빈의 옷을 세탁하고 거대한 배트케이브 곳곳을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청소하는 일을 전담한다. 이후 알프레드는 배트맨과 로빈의 코스튬 디자인을 개선하거나 기능을 추가하면서 때로는 배트맨과 로빈을 꽤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원래 배트맨은 일반적인 옷걸이에 배트슈트를 걸어 두었는데, 알프레드가 의상 담당이 되면서 옷걸이 대신 마네킹을 사용하게 했고, 이것은 오늘날 배트케이브를 대표하는 명물로 발전한다.

집사의 비밀이 밝혀지다. 알프레드의 탄생기가 새롭게 재구성된『배트맨』 110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Batman_Vol_1_110?file=Batman_110.jpg / TM &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4) 알프레드의 죽음

그러나 1964년 『디텍티브 코믹스』 328호에서 알프레드는 죽음을 맞는다. 배트맨과 로빈이 악당들과 싸우는 중 떨어진 큰 돌덩이를 둘을 밀쳐내며 대신 깔려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후 웨인은 그를 기려 '알프레드 재단'을 설립하고, 알프레드를 대신해 로빈의 숙모인 해리엇 여사가 웨인가의 가사를 돌보게 된다. 사실 이것은 1950년대부터 배트맨에게 제기되었던 동성애자 의심을 벗고 배트 패밀리에 여성을 두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1966년부터 방영된 배트맨 TV 시리즈가 큰 인기를 거두면서 부활하였다.

5) 영국 특수요원 알프레드와 알프레드 패밀리

1980년 『언톨드 레전드 오브 배트맨』 2호에서는 회상 장면을 통하여 알프레드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에 침투하여 포로들을 탈출시키는 특수 요원이었음이 밝혀진다. 종전 이후 그는 전장을 뒤로 하고 진정한 꿈을 찾아 무대로 돌아갔지만, 죽어가는 아버지로부터 웨인가로 가라는 유언을 받는다.

이 1980년대 버전의 탄생기는 『배트맨』 16호에서 집사가 되기 위해 찾아온 알프레드와 『배트맨』 110호에서 부상당한 배트맨을 만나며 정체를 알게 되는 알프레드를 한데 녹여내며 스토리를 정리했다는 의의가 있다. 1981년 『디텍티브 코믹스』 501~502호에서는 설정이 더 정교해져서, 1944년에 그가 영국 정보부 특수 요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와 함께 싸우면서 마리라는 여전사와 사랑에 빠졌고, 줄리아라는 딸을 낳았다고 한다. 이후 마리가 살해되고 줄리아는 마리의 동료인 자크 라마크의 가정에 입양되어 자랐다. 이 설정은 1986년까지 꾸준히 발전하여서 줄리아가 웨인 저택에서 살다가 비키 베일의 언론사에 취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1989년의 『배트맨 애뉴얼』 13호에서는 웨인가와 페니워스가의 인연이 더 깊게 그려졌다. 알프레드의 부친인 자비스 페니워스가 웨인의 조부 패트릭 웨인과 부친인 토머스 웨인을 섬겼던 집사였고, 자비스의 부친 역시 웨인가의 하인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1990년대를 거치며 그가 배우 생활 중에 만났던 애인 이야기, 특수요원으로 훈련받으면며 의무병 훈련을 받는 내용들도 추가되면서 알프레드의 배경은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 국내 출판된 작품 중에서는 『배트맨: 올빼미 도시』에 수록된 자비스의 편지, 『배트맨 앤솔로지』에 수록된 『배트맨과 로빈』 1호의 내용 등을 통하여 가정사와 연애사 등이 소개되고 있다.

아들에게 탈론의 존재를 경고하고 있는 자비스 페니워스. 『배트맨: 올빼미 도시』 분문에서.

(사진 제공: 세미콜론)

6) 카리스마 있는 멘토: 제프 존스의 알프레드

2016년 3월 개봉될 영화 『배트맨 VS 슈퍼맨: 돈 오브 저스티스』에서 알프레드를 맡은 사람은 영국 출신의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이다. 그의 알프레드는 이전 영화에서 알프레드 역할을 했던 마이클 고나 마이클 케인과는 확연히 다른 인물이라고 전해진다. 아이언스의 인터뷰에 따르면 알프레드는 '흥미로운 과거가 있고, 굉장히 유능하며, 전구 교환부터 다리 폭파까지 가능한 남자'로 만화 원작으로는 제프 존스가 쓴 그래픽노블 『배트맨: 어스 원』과 유사할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제프 존스가 벤 에플렉과 함께 향후 배트맨 단독 영화의 각본을 작업 중이라는 소식까지 전해져, 『어스 원』 버전의 카리스마 넘치는 알프레드의 등장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어스 원』의 알프레드는 어린 브루스 웨인이 눈앞에서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는 그 순간부터 등장을 한다. 그는 토머스 웨인의 친구이며 만일의 때를 대비해 브루스의 법정 후견인으로까지 지목된 인물이었다. 그는 영국 해병대 출신으로 서울에서 보안 관련 일을 했던 적이 있는 전문가다. 한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만, 그 정도로 걸을 수 있게 된 것도 토머스 웨인 덕분이라 한다. 여기서의 알프레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집사복 대신 청바지에 점퍼 차림을 입고 등장한다.

『어스 원』에서 그의 카리스마를 집약한 유명한 장면으로 그가 엽총을 들고 있는 신이 있다. 국내 출판된 그래픽 노블 중에 『슈퍼맨 배트맨 : 공공의 적』 앞부분에서도 엽총을 들고 배트케이브를 지키는 알프레드의 모습이 등장한다. 언제나 부드러운 신사로 등장했던 그에게 엽총을 든 모습은 하나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오래도록 이용되었던 것으로, 1997년 『배트맨 시크릿 파일』에서는 아버지 자비스 페니워스와 어린 시절에 종종 같이 사냥을 하면서 익힌 실력이라고 설명한다.

능숙한 히어로 배트맨을 보조하던 이전의 알프레드와 달리, 어스 원의 알프레드는 갓 배트맨이 된 초보 영웅 브루스 웨인을 다듬고 준비시키기 위해 그를 몰아붙이고 뺨을 때리는 등 카리스마 넘치는 스승 역할과 함께 복수심에 가득찬 어린 브루스가 엇나가지 않도록 따뜻하게 다독여 주는 아버지로서의 자상함까지 겸비하고 있다. 헌신적인 신부(『미션』)에서 무시무시한 테러리스트(『다이하드3』)까지 넘나들었던 제레미 아이언스라면 새로운 모습의 알프레드를 훌륭하게 그려낼 것으로 기대된다.

알프레드의 변신?! 제레미 아이언스가 만능 집사를 연기할 『배트맨 VS 슈퍼맨: 돈 오브 저스티스』예고편.

(영상 출처: http://tvcast.naver.com/v/451446)

* 이 연재는 세미콜론과 공동으로 기획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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