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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리만 왜 감정 성별이 뒤섞였나

이미 여러가지 가설이 있다.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라일리가 '젠더플루이드' 또는 '젠더퀴어'라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나 바이일 수도 있다. 원래 감정은 다들 혼성인 채로 태어나고 라일리 나이 무렵에 성변이를 겪어 모두 하나의 성으로 쏠리는데 라일리만이 조금 늦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라일리가 상상 속에 품고 있는 '캐나다 보이프렌드'는 어떻게 되는가? 이렇게 이야기를 계속 풀어가면 재미있을 텐데, 우주 바깥에 있는 진짜 정답이 자꾸 생각을 막는다. 피터 닥터의 대답 말고 다른 것. 한마디로 픽사가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앙상블을 내세우기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 듀나
  • 입력 2015.07.17 13:20
  • 수정 2016.07.17 14:12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듀나의 영화 불평 | 인사이드 아웃

픽사의 새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눈치챘다. 이 세계 사람들은 기쁨, 슬픔, 혐오, 분노, 공포의 다섯 감정에 의해 지배되는데 오로지 주인공 라일리의 감정만이 3:2로 혼성이다. 라일리를 제외한 모든 여자들은 감정이 다 여성이고, 라일리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까지 포함한 모든 남자들은 감정이 다 남성이다. 라일리는 왜 특별한가?

궁금해서 트위터에 질문을 던져봤다.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나?"로 운을 떼면서.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영어로 '인사이드 아웃 라일리 젠더'(inside out riley gender)로 검색해도 비슷한 질문들이 수없이 잡혔다. 심지어 형태도 비슷했다. "나 말고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모두가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들 자기 생각이 처음인 게 아닐까, 의심을 품는 그런 비밀인 것이다.

감독 피터 닥터는 이미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았다. "라일리 머릿속을 과장되게 묘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색감도 최대로 화려하게, 배우들의 목소리도 오버스럽게 했다. 높이와 깊이도 큰 차이가 나게 표현을 했다. 하지만 엄마, 아빠의 머릿속도 라일리처럼 복잡하게 표현하면 혼란스러울 것 같아서...."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완전하지는 않다. <인사이드 아웃>과 같은 판타지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자기만의 우주를 구축한다. 라일리의 감정만이 혼성인 것에 대한 이유의 설명으로는 '표현의 편리함'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하고 그 설명은 그 우주 안에서 나와야 한다. 이 영화는 속편이 제작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이는 다음 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이미 여러가지 가설이 있다.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라일리가 '젠더플루이드' 또는 '젠더퀴어'라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나 바이일 수도 있다. 원래 감정은 다들 혼성인 채로 태어나고 라일리 나이 무렵에 성변이를 겪어 모두 하나의 성으로 쏠리는데 라일리만이 조금 늦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라일리가 상상 속에 품고 있는 '캐나다 보이프렌드'는 어떻게 되는가? 이렇게 이야기를 계속 풀어가면 재미있을 텐데, 우주 바깥에 있는 진짜 정답이 자꾸 생각을 막는다. 피터 닥터의 대답 말고 다른 것. 한마디로 픽사가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앙상블을 내세우기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심하게 트집잡을 생각은 없다. 최근 들어 픽사에서는 의식적으로 기울어진 성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인사이드 아웃>은 그 결과물이다. 심지어 이 영화는 여성 버디 코미디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여성 앙상블을 내세우는 건 위험한 일이었던 것이다.

라일리의 감정이 혼성인 것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오히려 자연스럽다. (비슷한 설정의 시트콤 <허먼의 머리>에 사는 인격도 3:1로 혼성이었다.) 단지 여성 앙상블을 막고 이야기를 단순하게 하기 위해 만든 이 인위적 설정을 속편에서 어떻게 돌파할지 두고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라일리의 남성 감정들을 성전환시켜 우주에 일치시킬 것인가? 아니면 라일리가 혼성 감정 팀을 유지할 수 있는 핑계를 만들 것인가? 그렇다면 그 우주엔 라일리 말고도 혼성 감정 팀을 담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어느 쪽을 택해도 위태롭고 그 때문에 더 궁금해진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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