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나는 23년간 일한 '동양시멘트' 앞에서 피켓을 들 수밖에 없었다"

  • 원성윤
  • 입력 2015.07.17 12:09
  • 수정 2015.07.17 12:18
다섯달째 동양시멘트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 안상영씨가 10일 공장을 가리키며 일하던 때를 설명하고 있다. 하청업체 입사 당시 정규직은 새 장비를 쓰고 자신은 에어컨과 히터도 안 나오는 장비를 받았다고 안씨는 말했다.
다섯달째 동양시멘트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 안상영씨가 10일 공장을 가리키며 일하던 때를 설명하고 있다. 하청업체 입사 당시 정규직은 새 장비를 쓰고 자신은 에어컨과 히터도 안 나오는 장비를 받았다고 안씨는 말했다. ⓒ한겨레

회사가 보내주는 동남아시아 4박5일 여행을 가을에 부인과 함께 가려던 쉿다섯살 안상영씨의 푸른 꿈이 삼척 앞바다에 밀려오는 파도마냥 하얀 물거품이 된 때는 2월17일이다. 23년 동안 몸담은 주식회사 동일한테서 설 전날 해고예고통지서를 받았다. 동남아 여행은 동양시멘트 사내하청 업체인 회사가 올해 안씨처럼 정년을 맞은 노동자한테 베풀던 호의다.

“이젠 다 텄다.” 10일 오전 7시 강원 삼척시 동양시멘트 정문 앞에서 40여명의 다른 해고자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선전물을 나눠주는 등 아침 선전전을 하던 안씨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손엔 “회사 실체조차 없는 회사가 해고? 소가 웃을 일이다”라고 적힌 손팻말이 들렸다.

안씨는 동양시멘트 공장 바로 뒤 사직동에서 나고 자랐다. 1993년 동양시멘트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처음엔 35t짜리 덤프트럭을 몰다 2001년부터 30t·40t짜리 대형 불도저를 운행했다.

그는 23년 동안 매일 아침 동양시멘트 공장으로 출근해 동양시멘트 정규직 작업반장의 지시를 받아 일을 했다. 똑같은 불도저를 모는 동양시멘트 정규직과 동시에 일을 하거나 맞교대로 바꿔가며 했다. 하지만 한 달에 백수십시간씩 연장근로를 해도 급여는 정규직의 40%뿐이었다. 쉰다섯살 하청노동자의 해고 전 시급은 8400원으로, 올해 최저임금 5580원보다 2820원 많았다.

입사년차가 어린 동양시멘트 하청 노동자들의 급여는 그야말로 최저임금 수준이다. 다른 하청업체인 두성의 4년차 전아무개(40대)씨의 시급은 5630원, 5년차 김아무개(30대)씨의 시급은 5640원이다. 기본급이 훨씬 많은 정규직이 800% 받는 상여금도 사내하청 노동자는 400%를 받았다.

차별은 월급명세서에서 그치지 않았다. 안씨와 같은날 해고된 이명하(46)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보다 나이가 어린 정규직이 반말을 했다. 구내식당에 하청 노동자가 먼저 줄 서 있으면 ‘왜 밥을 먼저 먹느냐’고 욕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규직은 정년맞이 국외 여행도 오스트레일리아나 유럽으로 보내준다.

동일 소속 노동자 80여명이 지난해 5월 난생처음 노조란 걸 만든 까닭이다. 노조에 잇따라 가입한 동일과 두성 두 회사 노동자들은 곧바로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냈다.

동양시멘트 해고 노동자들이 10일 오전 7시께 공장에 출근하는 노동자들과 회사 관계자들을 향해 복직을 요구하는 아침 선전전을 하고 있다. 근무교대조가 출근하는 오후 4시에도 공장 밖 노동자들은 공장 노동자들한테 연대를 요청하나, 돌아오는 반응은 차갑다.

올해 2월13일 고용부 태백지청은 두 하청업체 노동자 250명과 동양시멘트 사이에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한다고 판정했다. 하청업체의 실체가 없어, 하청업체에 처음 출근한 날부터 노동자들은 이미 원청인 동양시멘트 소속이라는 얘기다.

두 회사 사장이 모두 동양시멘트에서 일하다 퇴직한 이들이고, 사무실도 동양시멘트 사업장 안에 있는데다 하청 노동자 채용이나 해고, 업무지시, 노동시간 결정, 장비에 대한 책임권 행사를 모두 동양시멘트가 했다는 게 고용부 판단이다. 고용부가 불법파견 판정보다 구속력이 강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회사는 고용부 통보를 받고 1시간 만에 동일에 도급계약 해지 통보를 했다. 동일은 그 나흘 뒤인 2월17일 노동자들한테 해고예고를 하고 2월28일 해고를 단행했다.

이런 해고가 부당하다는 노동자들의 주장에 대해 강원지방노동위원회(강원지노위)는 6월5일 “동양시멘트의 노무대행 기관에 불과한 동일 주식회사가 근로계약이 종료됨을 통보한 것은 동양시멘트의 해고 통지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동양시멘트는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상의 상벌위원회 개최 없이 근로자들을 해고했으므로 이는 부당한 해고”라고 판정했다.

그럼에도 동양시멘트는 고용부와 지노위 결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2013년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올해 초 졸업한 뒤 기업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이 핑곗거리다.

이 회사의 홍석태 대외협력팀장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오면 그때는 정규직화를 하겠다는 게 회사 방침”이라며 “채권단에 향후 운용 인력과 매출액 등의 내용을 담은 회생계획안을 이미 보고한 마당에 하청 노동자를 받아주면 현재 경영진이 배임죄에 걸린다”고 말했다.

정규직 노조도 이들 사내하청 노동자한테 우호적이지 않다. 한국노총 삼척지역지부 의장인 박재봉 동양시멘트노조 위원장은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에는 동의하지만 정규직화 주장에는 부정적”이라며 “새 하청업체에 가도 되는데 안 가고 원청인 동양시멘트에 들어와 민주노총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상황에서, 정규직 노조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삼척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인 동양시멘트에 대한 지역 여론이 썩 좋은 건 아니다. 삼척시내에서 만난 60대 후반의 남성은 “일은 똑같이 시키고 정규직 봉급 반도 안 줘 놓고 자르면 저 사람들이 저렇게 데모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동양시멘트의 행태를 비판했다.

정부나 노동계가 원칙으로 내세우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니 ‘상시지속업무의 정규직화’라는 미사여구는 이대로 삼척 앞바다의 하얀 물거품으로 끝나는 걸까? 동양시멘트 매각 관련 우선협상 대상자는 24일에 결정된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사회 #동양시멘트 #해고 #복직 #뉴스